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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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사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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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21 ㅣ No.71

[밀알 하나] 우리는 BYD(비산동유스데이)를 합니다

 

 

청소년신앙생활 활성화는 온 교회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비산동본당)는 BYD를 합니다. 도대체 BYD가 뭘까요? 1991년 시작된 WYD(World Youth Day), 1999년 시작된 AYD(Asia Youth Day), 2007년 시작된 KYD(Korea Youth Day)에 이어 교구에서, 이젠 본당에서 시작합니다. BYD는 비산동유스데이(Bisandong Youth Day)의 약자입니다.

 

BYD를 왜 하세요?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모든 여정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듯이 BYD를 하는 목적은 교회-교구 비전에 일치하기 위해서 입니다. BYD는 ‘새 복음화’를 향해 교구의 사목비전인 ‘쇄신·소통·참여’를 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입니다. 

 

목표는 교회-교구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BYD는 본당의 사목비전에 따라 ‘행복’한 우리의 신앙생활을 향해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둘러보고’ 앞으로를 ‘내다보기’ 위한 일종의 재·건·축 프로젝트입니다.

 

재·건·축이란 ‘재미있게’, ‘건강하게’, ‘축복 속에서’ 살기 위한 공동체의 의지입니다. BYD는 청소년들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들로 하여금 새복음화의 은총 속으로 초대하고자 하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BYD는 메말라가고 초토화돼가는 영성의 사막화(복음의 기쁨 86항)를 직시하고 그 안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새로운 역사입니다. BYD는 이 시대의 사회적 환경에 응답하고 적응하면서, 청소년은 물론 모든 공동체가 새복음화를 향하여 대화할 수 있는 마당-판(pan)을 형성하는 새로운 정책적 브랜드입니다.

 

BYD는 창조-융합-유연적 사고를 통해 기쁨의 날-소공동체의 날-청소년의 날-새복음화의 날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갖습니다. BYD는 토착화 차원에서 우리 문화를 함께 나누기 위해 아시아 젊은이들을 초대하고 홈스테이를 하면서 우리의 신앙 감각을 더욱 깊게 자라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복음화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고 그들을 위한 공동체의 사랑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는 BYD를 합니다. 2014년 BYD의 주제성구는 ‘와서 보아라’(요한 1,38-39) 입니다.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잔치상에 함께 응답해봅시다. 2014 BYD소식은 이제 SNS를 통해서 전파됩니다. 기대하세요.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0월 26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들어보셨나요? 청사희망!

 

 

‘청사희망’ 들어보셨나요? 청사희망은 ‘청소년사목, 희망을 말하다!!!’의 줄임말입니다. 이름 멋지지 않습니까? 요즘 제가 디자인 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입니다. 청사희망은 한국교회 청소년사목의 비전을 위해 도전하게 된 설렘의 여정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청사희망을 시작 했냐고요? 간단합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살리고 싶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그 설렘으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는 사랑. 그 맘을 간직하면서 살고 싶었고, 그 진실함으로 교회 공동체와 청소년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청사희망은 청소년들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들에 대한 신앙적 ‘놀이터’이고 영적 ‘쉼터’입니다. 청소년들과 교회의 가슴을 설렘으로 두드릴 수 있는 놀이터와 쉼터의 마당-판(pan)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청사희망은 그러한 역동적인 놀이터와 쉼터입니다.

 

청사희망은 궁극적으로 새 복음화를 지향하면서, 쇄신-봉사-양성하고자 하는 세 가지 비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바라봄이 우리를 살리고 생명으로 초대하기를 청합니다. 함께 그 설렘으로 기도해주세요. 

 

청사희망은 새로운 가치의 도전입니다. 단순한 공연, 연출의 결과물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융합적이고 유연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해 지성적-감성적-영성적인 놀이터와 쉼터-마당과 판(pan)을 만들고자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가톨릭 청소년사목 브랜드입니다.

 

유튜브를 하시는 분들은 주제어로 ‘청사희망’이라고 찾아보세요. 그동안의 여정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페이스북을 하시는 분들께서는 그룹 ‘청사희망’의 친구가 되어 주세요. 앞으로 함께 해주세요. 청사희망을 신청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와서보라 닷컴(www.waseobora.com)으로 오세요.

 

청사희망의 주제 성구는 두 개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이고 두 번째는 ‘와서 보아라’(요한 1,38-39)입니다. 한번 보고 싶지 않으세요? 청사희망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와서 봐주세요. 그래야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청소년사목, 희망을 말하다. 이제 희망을 말하죠. 해묵은 논쟁거리들을 넘어서서, 절망의 터널을 넘어서서 희망의 돌파구를 만들어 봐요. 기대해주세요.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1월 2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청소년사목의 필살기

 

 

청소년사목에 마음을 두고 사제생활을 이어 온지 15년째 입니다. 짧지도… 그리고 길지도 않은 시간이건만, 그 안에 새겨진 나의 가슴은 이제 청소년사목에 대한 3無와 3有를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3無는 청소년사목이 실패하는 지름길(:하류지향)이요, 3有는 청소년사목이 성공하는 지름길(:길목) 입니다. 한 눈으로 쉽게 다가서기 위해 표로 그려보겠습니다. 

 

3無 : 하류지향 - 무기력, 무감각, 무책임

3有 : 길목 - 열정, 비전, 브랜드 

 

청소년사목에 관심을 두고 있으면서 청소년사목 성공에 대한 아주 단순한 Key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청소년사목 성공의 Key가 바로 ‘청소년들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아주 단순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은 ‘열정’이 있는 곳에 반응을 하였고, ‘비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으며, ‘브랜드’가 있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사목, 아주 단순하죠?

 

여기저기에서 청소년사목의 성공에 대하여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간단하게, 확신을 갖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청소년사목 성공의 Key는 ‘청소년들 안에 있다는 것’, 그래서 ‘열정’을 갖고 ‘비전’ 제시하면서 ‘브랜드’를 창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5년차 사제의 청소년사목 필살기입니다.

 

무엇보다 브랜드는 스토리(story)를 통하여 아이덴티티(identity)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청소년사목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스토리가 없는 청소년사목의 브랜드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씨앗이 뿌려져, 그 진실함이 삶의 자리 안에서 자라나는 그 신비로움을 구슬 보석처럼 엮어 내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사목의 필살기. 어떠셨나요? 참 쉽죠? 이제 청소년사목에 희망을 두고 함께 해봐요. 청소년사목에 대한 ‘열정’과 ‘비전’과 ‘브랜드’!!! 이제 필살기를 알았으니, 치열한 청소년사목의 현장으로 함께 갑시다. 청소년들이 지나가는 길목을 찾아내어 지키는 것. 이 필살기만 안다면 우린 무림(청소년사목의 현장)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덫을 놓고 싶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으로 빠져 들도록….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1월 9일, 현정수 신부(안산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청소년사목의 여정 : 사서고생 vs 직무유기

 

 

한 때 마음이 지쳐 몸서리 칠 때가 있었습니다. 무엇도 하기 싫고(무기력), 내가 누구인지 느낌마저 없을 때(무감각)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직무유기(무책임)라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바로 그때, 저는 벗들을 만났습니다. 

 

청소년사목의 마당에 목숨을 걸고 헌신하고자 하는 벗들의 공동체, 이름하여 ‘사서고생’팀입니다. 저희끼리는 가끔 술 한 잔 기울이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우리를 보고 ‘사서고생’이라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직무유기’라고.

 

사서고생 vs 직무유기. 어찌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는 말이면서, 어찌 보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러나 우리 눈에는 모호하지만 하느님의 선하심과 진실함 안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는 날카로운 삶의 두 자리.

 

무엇을 보고 사서고생이라 할까요? 굳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내어 달리고 뛰는 모습들이 사람들 눈에는 그리 보이는가 봅니다. 반대로 무엇을 보고 직무유기라 할까요? 자신의 몫을 벗어날 때, 의도적이거나 무의식적이든 그 몫을 외면할 때는 사람들 눈에는 그리 보이는가 봅니다.

 

사서고생 팀 사제들은 하나같이 웃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면 참 웃긴 생활들을 하고, 피곤하게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난 그렇게 못살아.”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서로가 다름은 풍요로움이요 서로의 삶은 당연지사 걷고 있는 또 다른 나입니다.

 

사서고생 팀 사제들을 바라보면서, 청소년사목에 몸을 담고 있는 거시기 그룹의 거시기 형제님이 신부님들이 ‘사서고생’이면, 우리는 ‘맨땅에 헤딩’입니다. 참으로 웃기지만, 말할 나위 없이 공감이 된다는 싸인(Sign)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묘하게 그 역사를 펼쳐주십니다. 도망가고 싶을 때는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찾았다 싶을 때는 헤메게 만드십니다. 멈추고 있을 때는 움직이게 하시고, 교만에 빠져 있을 때는 여지없이 후려쳐 주십니다.

 

서로가 다름으로, 같은 채찍질이라도 거북이는 멈추게 하지만 말은 뛰게 합니다. 서로 다른 사제들이 만나 같음을 향해 나아가는 투박한 공동체 ‘사서고생’. 현재 한 달에 한번, 48차 모임을 갖고 있는 우리는, 올해 11월 24~25일 ‘청소년강학회’라는 이름으로 그 사랑과 열정, 그 진실함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합니다. 기대하십시오. 사서고생의 원조, 예수님의 길을 걷는 사제들의 향기를!!!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1월 16일, 현정수 신부(안산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너무나 강했던 원투펀치

 

 

청소년들은 스스로 방어하고 제어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모든 문제는 부모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듯이, 문제를 가진 청소년들이라 하더라도 그 청소년들의 존재 자체에서 시작된 문제라기보다는 외부의 영향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 역시 큰 부분이긴 합니다. 청소년들은 믿어주면 믿어줄수록 크는 나무와 같았습니다. 

 

청소년들로부터 오는 방어기제의 모습에 안쓰러움도 있지만, 때론 당혹합니다. 그리고 자주 인내의 한계를 만나게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반응이 오지? 어떻게 내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청소년사목의 현장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이러한 모습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15년차 사제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방어기제 속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숨어 있고, 그 안에서 그 소리를 찾아내는 것은 우리 사목자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청소년들은 저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한없이 자신감 넘치고,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 청소년들로부터 날라 온 방어기제, ‘원투펀치’는 너무나 강력했습니다. 권투선수가 강력한 원투펀치를 맞고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처럼, 저에게도 청소년들의 원투펀치에 5년 정도의 공황상태가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 때, 청소년들에게 다가서는 나름대로의 노력에 취해 만족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던 그 때, 그 누구보다도 청소년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내심 자만하고 있었던 그 때, 너희들이 뛰면 나는 날아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넘어서 은근히 무시를 하고 있었던 그 때, 청소년들은 원투펀치를 날렸습니다. 그 원투펀치는 바로 “애쓴다~!!!”와 “좋댄다~!!!”였습니다.

 

아주 멋지고 이쁜 청소년들로부터 무시무시하고 시크한 청소년들까지 다양하게 만나다 보니, 설레임과 동시에 맷집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날리는 펀치는 늘 예상할 수 없었고, 반응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리면 여지없이 카운터 펀치를 날렸습니다. “애쓴다~!!!”에 “그래 애쓴다”, “좋댄다~!!!”에 “그래 좋다”하고 말하기엔 아직 마지막 자존심이란 놈이 허락하지는 않나 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애쓰셨던 분이셨습니다. 우리의 몸짓 하나에 참으로 좋아하던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시거늘 그놈의 자존심이 뭐길래. 오늘도 참 많이 배웁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1월 23일, 현정수 신부(안산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청소년사목 강학회

 

 

청소년사목, 강학회! 이름이 참으로 거창합니다. 11월 24~25일. 청소년사목의 입장에서 한국교회에서는 아주 역사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200년 전 한국교회 안에서 ‘강학회’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고 천주학의 뿌리를 내렸던 것처럼 전국적 단위의 교구와 수도회 청소년사목 일꾼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판’(마당, pan)을 열게 됐으니 말입니다.

 

매년 주제를 선정해 강학회를 열고 모든 이들을 초대할 것입니다. 올해는 ‘청소년사목과 주일학교’라는 대주제 아래 주제발표는 대전교구 오종진 신부님(주제:‘하느님의 사람’을 양성하는 교회의 공식적 교육기관 주일학교), 여기에 따르는 나눔의 마당은 청주교구 양윤성 신부님(주제:주일학교 교리교육 과정에서 사회교리의 필요성), 광주대교구 김관수 신부님(주제:주일학교와 신앙학교), 대전교구 박진홍 신부님(주제:대전교구 청소년 신앙교육 시스템에 대한 소개), 살레시오 김상윤 신부님(주제:학교교육과 종교교육 그리고 부모교육), 전주교구 백승운 신부님(주제:주일학교와 봉사자)이셨습니다.

 

어떠한 멋진 결론과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그 진실한 사랑으로 선조들께서 뿌리셨던 그 열정과 사랑, 진리에 대한 열망과 탐구와 실천의 씨앗을 가슴에 품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판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거나 무엇을 꼭 얻어가야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장터의 난장같이 신명나게 놀다가 힘을 얻어서 돌아가는 그런 ‘판’입니다.

 

청소년사목의 현장에 서면서 옛 선조들의 사랑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어와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 천주공경가의 이 대목과 그 진실한 사랑이 우리 청소년들의 가슴과 영혼 속에 뿌려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역사는 오르고 내리며 이렇게 만나나 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로 던져진 쇄신과 복음화와 토착화의 씨앗들. 200년 전 우리 교회 역사 안에서 존재하였던 강학회의 불씨가 이제 한국교회 청소년사목 현장에서 움트고 있습니다. 저는 강학회가 교회 쇄신의 첫 단초요, 복음화를 위한 불씨요, 토착화의 문을 여는 순간이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여정은 하느님 사랑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 모두를 초대하겠습니다.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아멘.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1월 30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만남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한국천주교회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저는 주교회의 일을 하게 되는 그 마당에서 추기경님을 만나 뵈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추기경님과의 짧은 만남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잔잔하게 제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주교회의 자리의 식당은 소위 줄을 서서 스스로 음식을 마련해 먹게 되는 아주 소박하고 아담한 곳입니다. 추기경님과의 만남은 바로 식당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기나긴 줄을 서 있는 통에 좀 지루하기도 하였지만, 앞서 계신 분들이 워낙 큰 어른들이시기에 군소리 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줄을 서지 않고, 앞으로 쭉 나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늘같이 높으신 분들께서 고개를 숙이며 모두 앞으로 가시라 안내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민주국가에서, 그것도 공동선과 평등의 가톨릭교회에서 누구이길래 새치기를 하나? 내가 줄서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면서! 새치기 하지 마시라 한소리 하려고 하는 순간, 그분이 김수환 추기경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추기경님은 처음 보는 젊은 신부가 식당에 있으니, 누구시냐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블라블라~ 현정수 신부입니다” 인사하였더니, 추기경님의 말씀은 아주 강하였습니다. “블라블라~. 신부님은 과거도 잡으셔야 하고 미래도 잡으셔야 하겠네요!”

 

추기경님과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그 잔향은 아주 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과거도 잡아야 하고, 미래도 잡아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쇄신은 절박한 현실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모든 것이 그분의 섭리하심이겠지만, 인간지사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쇄신의 역사에 있는 우리들….

 

사목의 최전선에서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환경과 대화해야 할 청소년사목, 첫눈이 오는 바로 오늘, 다시금 가슴속에 되새깁니다. ‘과거도 잡고, 미래도 잡아야 한다는 것!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키고 수호해야 하며, 변해야 할 것은 빨리 쇄신의 길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제 청소년사목의 기도 제목 중 하나입니다.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립습니다. 아멘.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2월 7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설렘으로… 공통선 찾기

 

 

이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신학생 시절, 트리 장식을 위해 공통선(여러 개의 선중 공통으로 사용하는 선)을 찾고 불을 켜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그 공통선을 잘못 찾으면 트리장식용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거나, 끔찍할 만큼은 아니지만 짜릿할 만큼의 전기 맛을 먹어야 했습니다. - 그때마다 아기 예수님이 신학생 잡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 그러다 공통선을 찾아 전기를 연결했을 때, 불이 들어오면 그 느낌이 말로… 최고!!!

 

때가 때인지라 성탄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년 같지 않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경제·사회적 분위기가 그리 심상치 않은 탓일까요? 그래도 옛 추억이 강해서인지, 장식된 트리 불빛을 보면 ‘분명 저 복잡한 선에는 공통선이 있을텐데…’ 하고 찾아보려고 나름 전문가인척 해봅니다. 예전 그 설렘을 찾고 싶은가 봅니다.

 

얼마 전 스페인 산티아고에 다녀왔습니다. 여느 여정처럼 순례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고, 잠시 시간을 내어 잠시 머물렀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요? 이 사람들의 가슴속을 관통하는 공통선은 무엇일까요? 그 먼 길을 걷게 하면서도, 가슴 설레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 공통의 선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청소년사목의 현장에서, 아이들이 많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들이 없는 게 아니라 오지 않는 것이 않을까 합니다. 그 무엇인가를 찾아다니는 현대판 유목민인 청소년들, 매트릭스의 복잡한 조합처럼 좀처럼 해석하기 힘든 존재, 청소년들. 그러나 이들은 분명 하느님의 사람들로서 그 가슴속에 흐르는 공통의 선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선을 찾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그 선을 영혼이라고, 양심이라고, 본성이라고도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리워한다며, 청소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울리게 하는 그 공통선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공통선을 찾아 성탄 트리의 불을 켜는 것처럼 청소년들의 가슴과 영혼에 불을 밝혀 주고 싶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 시간, 새 생명의 기쁨으로 준비해봅니다. 이 시대 청소년들과 그 사랑의 벗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불 밝혀주소서. 아멘.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2월 14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청소년사목 디자인 하기

 

 

성탄절이 가까이 옵니다. 아마 이 시즌이 되면 각 성당과 공동체 안에서는 성탄 선물도 준비하고, 산타클로스를 등장시켜 아이들에게 설렘을 주려고 준비를 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대가 가면서 성탄, 산타클로스의 존재가 우리 삶에서 조금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왜 일까요?

 

제가 있는 이곳, 비산동본당에는 성당 소속 유치원이 있습니다. 아가들이 너무 예쁩니다. 병아리들(유치원 아가들)이 돌아다니는 그 모습이 아주 귀엽습니다.

 

“얘들아, 성탄절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서 오실 거야. 착한 일을 해야 한단다.” 

 

그리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펼칩니다. 양말, 굴뚝….

 

아이들은 언제나 제 예상을 뛰어 넘습니다. 한 아이가 제 가슴에 또 한 번의 펀치를 던집니다. “뻥까시네!!!” 아…. 정말 세다. 어찌 이런 일이!!! 

 

실재 존재로서의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냉철한 이야기라 하지만, 동화적 감성과 순수함이 마른 것 같아 멍합니다. ‘이 정도는 좀 속아줬으면 좋겠는데’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요즘 제게 청소년사목 안에서의 화두는 말라버린 이 영혼들, 삭막해진 이 가슴 속에 어떻게 설렘과 촉촉한 생명의 씨앗을 심는가 입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작동되기 힘든 새로운 무엇인가가 있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년사목은 ‘디자인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청소년사목의 방식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 행동주의적 입장 : 자극과 반응으로서 인간의 본성적 측면에 의지하여 접근해 나아가는 입장입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기초적인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인지주의적 입장 : 이성적 과정으로서 인간의 지성적 측면에 의지하여 접근해 나아가는 입장입니다. 교육과정에서 나타나는 스타일로 볼 수 있습니다. 

 

▲ 인본주의적 입장 :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적 본성에 의지하여 접근해 나아가는 입장입니다. 신앙적 신뢰와 믿음에서 나타나는 스타일로 볼 수 있습니다. 

 

▲ 정신분석적 입장 : 개인의 전이해를 통한 삶의 역사를 배경으로 접근해 나아가는 입장입니다. 사목적 배려에서 나타나는 스타일로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사목의 현장에서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희망적 신호탄을 쏘기 위하여 수많은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은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성탄을 앞두고 있는 이 시간, 이 기쁜 시간. “뻥까시네” 한 방에 또 정신 혼미하지만, 그래도 계속 디자인해 나가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우리 모두 함께 그려나가요.

 

메리 크리크리스마스!!! 아멘.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4년 12월 25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밀알 하나] 청소년사목 퍼즐 맞추기

 

 

청소년사목의 현장에서 가슴속 깊이 맴도는 두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단연코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년차 사제의 삶의 여정 안에서, 경험한 하느님의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청소년사목에 헌신하고자 했던 이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경험치가 있으니,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은총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만큼 강한 체험들이 제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늘 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두 번째 질문이 바로 ‘청소년사목 잘된다는 개념이 과연 무엇일까?’입니다.

 

제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너만 할 줄 아는 것 하지 마라. 너 없어도 되는 것을 해라. 너 떠난 다음을 생각해라. 어쩌려고 그러는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지? 저렇게 할까?’ 청소년사목의 퍼즐 맞추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큰 그림이 그려지리라 생각하면서 네 가지의 고민을 새겨 봅니다.

 

리자인(re-sign)은 리사이클과 디자인의 합성어로서, 기존의 가치에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창조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재탄생시기키는 것을 말합니다. 앞으로 청소년사목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통찰로서, 새로운 가치를 재탄생해야 할 것입니다.

 

플랫폼은 정거장이란 의미로 서로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동이 허락된 친교와 소통의 공간입니다. 동시에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는 기반이 되는 시스템을 말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청소년사목은 온·오프라인, 인트라·엑스트라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조화돼야 할 것입니다.

 

블루오션은 레드오션의 반대 개념으로서, 서로 공존하며 상생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가치 중심의 질서를 창출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하여 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우는 구성적 개념입니다. 앞으로 청소년사목의 현장은 레드오션과 블루오션의 경계선에서 심각한 갈등이 이어질 것입니다.

 

브랜드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이름과 기호, 도안 따위를 통틀어 말하는 말로서, 사목적 정체성을 통하여 형성한 가치와 콘텐츠를 말합니다. 앞으로 청소년사목의 돌파구는 교회적 브랜드의 형성에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사목의 퍼즐을 맞추고자 합니다. 밀알하나 땅에 떨어져 씨앗이 맺어, 열매를 맺듯,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퍼즐 매니아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그곳으로 순례하도록 이끌어주는 그 진실한 고민의 자리. 퍼즐 맞추듯 하루하루 정진하겠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5년 1월 1일, 현정수 신부(안양대리구 비산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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