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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감사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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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862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감사의 계절에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자신이 이루고 있는 가정에 감사하고, 다른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태양이 뜨는 것에, 좋은 날씨에, 머무를 수 있는 집에 감사합니다. 맛있는 음식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녔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가을이 되면 추수감사절을 지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한 세상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날마다 주시는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단순히 농사를 지어 거두어들인 수확물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결실을 맺은 모든 것, 다시 말하자면 우리 안에서 스스로 자라난 열매에 대해서도 헤아려 봅니다. 우리에게는 ‘추수감사절’이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 영성의 핵심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인 성체성사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거듭해서 상기하려고 우리는 성체성사를 거행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꿰뚫고 계시는 성령은 다함없는 힘의 원천으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독일어 ‘감사하다’(danken)는 ‘생각하다’(denken)에서 왔습니다. 자신의 삶을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감사할 줄 압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 감사해야 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그런 까닭에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감사할 줄 모르는 원인을 망각’으로 표현했습니다. 키케로는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미덕이며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감사함은 조화(concordia), 일치, 협동, 화합, 공감의 바탕이 됩니다. 로마 철학자들에게 감사함을 모른다는 것은 인간성(humanitas)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인간은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실존에서 빗나가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친교를 맺을 수 있고, 공동체에서 서로서로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편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그런 사람과 일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곁에 있으면 불쾌해집니다.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점점 그에게서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그에게서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분위기가 감도니까요. 감사할 줄 모르는 태도는 마음의 울림을 파괴합니다. 그는 기쁨을 나누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노년에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자기 삶의 비망록에서 감사함을 읽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에서 감사할 거리를 찾는다면 우리는 내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이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과거를 떠올리면 전부 고통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기억은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감사할 수 있는 기억만이 당신에게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베네딕도회 수사인 데이비드 스타인들라스트는 감사함을 그의 영성 중심에 놓습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감사함은 인간에게 내적 자유와 행복을 안겨 줍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감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태도는 슬픔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기쁨과 내적 평화로 채웁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법을 연습해 익히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 저녁, 그날 있었던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나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기를 주져합니다.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서 주는 기쁨을 앗아갑니다. 내가 상대방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는 늘 비난만 합니다. 그런데 선물도 거부합니다. 필요가 없는 것이거나 그의 기분을 나쁘게 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선물을 탐탁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관계를 어렵게 만듭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그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는 내가 그에게 주거나 말한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만 고착되어 있습니다. 종국에는 자신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행동 뒤에 자주 숨기도 합니다. 감사함을 받아들이는 대신 모든 것을 걷어차 버립니다. 선물이 죄다 너무 작다고 느끼기에 그는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침에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자신이 이루고 있는 가정에 감사하고, 다른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태양이 뜨는 것에, 좋은 날씨에, 머무를 수 있는 집에 감사합니다. 맛있는 음식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녔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에게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주어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창조된 모든 것에, 그리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감사할줄 아는 피조물입니다.

 

이따금 우리 인생에 주어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는 우리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칭송하거나 지나치게 높여서는 안되겠지요. 감사함을 떠올릴 때 내가 겪었던 상처에 매여 있지도 않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준 것들을 되돌아 봅니다. 어느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녀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삶을 선사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헌신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그분들이 나의 뿌리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지금의 나’가 된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돌아보면 많은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놀았던 일, 볕 좋은 날 아버지와 산책했던 일, 성탄절이나 부활절의 축제, 사람들의 애정을 듬뿍 느꼈던 생일이나 축일. 그러나 감사하기 힘든 일에도 감사하는 데 감사의 묘미가 있습니다. 요즘에 저는 어린 시절 겪었던 결핍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서 헤쳐 온 위기에도 감사합니다. 내가 나를 의심하던 그 어려운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알면 내적 자유를 경험합니다. 저는 많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압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그들의 고통은 은총으로 변화합니다. 자신들이 견디어 낸 고통에 대해서도 그들은 감사합니다. 고통을 통해 성숙했음을 깨닫습니다. 고통을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든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합니다.

 

초기 수도승들은 조금 특별한 충고를 줍니다. “까다로운 형제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말은 좀 괴상하게 들립니다. 나에게 계속해서 상처만 주는 형제에게 어떻게 감사하란 말입니까? 그러나 수도승들은 상대방을 감사하게 여기는 태도가 그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그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조건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느끼면 그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자신의 삶을 위해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방법으로써 감사는 종종 그 자체로 평화에 이르게 합니다. 나와 친교를 이루며 그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감사의 눈길로 한 번 바라보십시오. 이 감사함을 간직한 채 미사에 나가십시오.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든 것에 감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 일상, 가족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가을호(Vol. 35), 안셀름 그륀 신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번역 김혜진 클라라(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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