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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힐링 노트: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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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352

[하쌤의 힐링 노트]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마음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문득 수십 년 전의 안 좋은 일이 떠올라, 불현듯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합니다. 낮에 있었던 모임에서 친구가 툭 던진 말이 기분 나빠 ‘그 사람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지?’라고 곱씹으며 씹으며 잠을 못 자는 분도 있습니다. 자식 걱정, 돈 걱정, 친구 걱정, 내 몸 걱정 등 미래에 대한 갖가지 걱정을 하느라 실제로 내 앞에 닥친 일은 제대로 하지 않기도 합니다. 머리가 생각으로 꽉 차 있을 때,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죠?”라든가,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할 방법을 구합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안 좋은 기억을 잊어버리게 해 주는 약도 없고, 생각을 덜 할 수 있게 해주는 치료도 없기 때문에 저는 참 난처합니다. 물론, 노력을 해서 잊을 수 있거나 “생각하지 말자” 해서 되는 일이면 그보다 좋은 것도 없지만 그러기에는 마음속 상처가 깊고 삶이 참 무겁습니다.

 

뇌과학과 정신건강을 공부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생각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첫째로 두뇌의 활성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원래 생각과 그에 따르는 몸의 반응은 자율신경, 즉 자기 마음대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식은땀을 나게 하고,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신경을 통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비우는 것은 수도하는 분들만 할 수 있는 고난도의 기술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안 좋은 생각에서 허덕여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양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평소 100만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10만큼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100만큼 생각하는 사람은 남을 더 배려하고, 일을 할 때도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등 섬세한 면이 있겠지만, 평소 걱정이 많고 예민해서 같은 난관에 부딪쳐도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하고, 지나간 기억까지 꺼내 보며 힘들어 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이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타고난 기질을 버리고 10만큼만 생각하는 상태로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방법은 90만큼을 다른 것으로 채워서 겨우 10만큼만 생각하는 상태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우리 뇌는 100 전부를 생각하는 데 씁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서 걷다 보면 생각만 100을 하던 우리 뇌는 80을 생각하는 데 쓰고, 15를 걷는 데 쓰고 5를 주위를 둘러보는 데 쓸 것입니다. 즉, 몸이 힘들면 앉거나 누워서 쉬는 것과 반대로, 뇌가 힘들면 걷고 음악을 듣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등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당연히 몸도 처지고 안 좋은 기억이 많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저는 평신도라 기도하는 법을 가르칠 입장은 아니지만,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 “우리 애 이번에는 시험 붙게 해 주세요”, 또는 “남편이 술 안 마시고 일찍 들어오게 해 주세요”와 같이 내 고민이 묻어 있는 바람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되새김질과 걱정을 더 부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묵주기도나 성경 읽기 등을 통해 그 내용에 대해 묵상하거나 친구와 대화하듯이 하느님과 대화하는 게 마음 건강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내 욕심을 버리고 그 자리를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도, 결국은 가만히 앉아 매번 결심만 한다고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말씀을 찾고, 그 의미를 이웃들과 나누는 행동이, 즉 뇌를 세상 시름에서 쉬게 해 주는 매일매일이 쌓여서 이룰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생각은 억누를수록 더욱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눈을 감고, 분홍색 코끼리에 대해서 1분만 생각하지 말아 보세요. 아마도 평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던 분홍색 코끼리가 계속 떠오를 것입니다. 내 삶에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본 적도 없는 분홍색 코끼리조차 ‘생각하지 말자’고 결심하기 시작하면 자꾸 떠오르는데, 내가 상처받은 일이나 눈앞에 닥친 걱정이 어떻게 억누른다고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생각을 줄이려는 시도가 잘 안 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생각, 말씀, 기도, 잠시라도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활동,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통해 나쁜 생각이 있던 자리를 채워 버리자는 것입니다. 힘들 때는 왜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한숨이 나오겠지만, 삶 전체를 돌아보면 생각이 많은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뭘 못했다거나 앞으로도 잘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버리고 오늘에 충실하면서 우리 뇌, 우리 마음을 조금만 쉬게 해 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4년 겨울호(Vol. 28), 하주원 마리아 박사(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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