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24,37-44 마지막 날 (2016. 11. 27. 대림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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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6-11-25 ㅣ No.2151

그런데 아무도 그날과 그 시간을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은 노아 때와 같을 것입니다. 홍수가 오기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가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와서 그들을 쓸어가 버릴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날은 앞의 맥락과 연결하여 사람의 아들이 오는 때 = 하늘나라가 나타나는 때이다. 아들이 오는 때를 아들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고 한 다음에 아버지만 아신다.’ 라고 말한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주도권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임을 강조하는 수사기법(rhetoric)이다. 간단히 설명하겠다.

 

하늘나라는 아들의 영적인 깨달음을 통하여 아들 자신에게 드러나며, 아들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므로 하늘나라를 알지 못한다. 아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영적 깨달음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 , 아들은 하늘나라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의 변화를 미리 알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아들이 오는 날을 아들 자신이 모른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노아의 이야기는 하늘나라에 대한 상징적 설화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은 물론 아니다. 예수의 제자들 곧 하늘나라 백성도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를 간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하고 있다. , 아버지를 사랑하고(먹음, 망덕), 성령을 받아들이고(마심, 신덕), 아들과 일치한다.(결혼, 애덕)

 

 

그때에 두 남자가 함께 밭에 있는데 한 남자는 데려가고 한 남자는 남겨질 것입니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돌리고 있는데 한 여자는 데려가고 한 여자는 남겨질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으시오. 여러분은 주인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도둑이 언제 올지 집주인이 안다면 그는 깨어 있으면서 집이 뚫리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입니다.”

 

앞서 장가들고 시집가고라고 한 것에 호흡을 맞추어 남자와 여자의 경우로 나누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밭에 있는 두 남자는 각각 명예와 신덕, ‘맷돌을 돌리는 두 여자는 각각 재물과 망덕을 가리킨다. 하늘나라 백성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며,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증언하는 일에 전념한다. 두 종류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한 종류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사랑하되, 다른 한 종류는 쾌락, 재물, 명예, 권력 등을 추구하면서 보이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 뒤섞여 있으면서도 이 세상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이 또한 하늘나라를 모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다.

 

주인은 영적자아를 완성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이며 집주인은 영적인 깨달음의 여정에 있는 현실적인 이다. 하늘나라는 영적인 깨달음의 운동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와 있으며 오는 중이며 앞으로 완성될 것이다. ‘깨어 있음은 망덕이며, ‘준비는 신덕이다. 망덕은 욕망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며, 신덕은 사람의 지혜보다 성령의 활동을 신뢰하는 일이다. 각각 맷돌과 밭의 상징에 대응한다.

 

생각지도 않은 때는 사람의 지혜로는 영적 깨달음을 알 수는 없음을 말한다. 바로 앞의 무화과나무의 교훈에서 말한 내적 체험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깨달음은 주체의 활동이므로 깨달음의 당사자가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로 하늘나라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와 어긋나고 있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맛난 요리에 관하여 아무리 많은 생각을 굴리고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결코 요리의 맛을 알 수는 없다. 요리를 직접 먹어보아야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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