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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수도원의 회랑, 구원의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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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302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수도원의 회랑, 구원의 성채

 

 

솔즈베리 대성당 회랑.

 

 

사전에서 ‘cloister’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1. (보통 성당 · 수도원 등의 지붕이 덮인) 회랑. 2. 수도원 생활.”이라고 나온다. 같은 단어인데 하나는 건물의 요소를, 다른 하나는 그 건물 요소에서 일어나는 생활을 나타낸다. 회랑은 영어로 클로이스터(cloister), 프랑스어로 클로아트르(cloitre)다. 이것은 라틴어 클라우스트룸(claustrum) 곧 ‘닫혀있다’는 말에서 나왔다. ‘cloistered life’라는 말도 있다. 회랑 안에서 살아가는 수도자의 은둔생활에 대한 다른 말이다.

 

회랑이란 건물의 벽을 따라 기둥이 길게 늘어서 있고 위는 지붕이 덮여있지만, 안쪽 옆으로는 열려있으면서 사각형의 안뜰을 만드는 요소를 말한다. 기본적으로는 통로로 쓰이지만 안뜰을 향해 머물 수 있다. 회랑은 건물과 안뜰 사이를 이어주며 안과 밖을 다시 구분해 준다는 점에서 건축적으로 강한 장벽이다. 그래서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회랑과 그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전형적인 시토수도회의 수도원 배치를 보면 성당이 있고 남쪽 옆으로는 사각형의 중정과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동쪽에는 수도자실과 담화실, 공동침실 등의 주거 공간, 남쪽 복도에는 부엌과 식당, 서쪽 복도에는 사무실과 창고 등이 회랑과 이어진다.

 

회랑이 남쪽에 있는지 아니면 북쪽에 있는지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햇볕이 잘 드는지, 그러면서도 기둥과 지붕이 햇빛을 막아주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받아들일 수 있는지였다.

 

 9세기에 지어진 장크트 갈렌 수도원의 오래된 평면을 보면 성당의 남쪽에 회랑을 두르고 동쪽에는 2층으로 수도자들의 공동침실을 두었는데 그 밑에 채난실이 있었다. 남쪽에는 공동 대식당과 부엌을, 서쪽에는 저장고와 창고가 배치되었다. 회랑은 성당에서 식당으로, 식당에서 공동침실로 이동하는 데 매우 편리한 통로가 되었다.

 

수도원을 세울 때 회랑을 가장 먼저 짓지는 않는다. 먼저 가장 높은 곳에 성당을 세우고, 그다음에 집회실과 침실, 식당, 창고 등 필요한 여러 방을 갖춘다. 회랑의 모양은 이미 지어진 건물의 위치와 크기에 좌우되므로 건설을 시작할 때부터 엄밀하게 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회랑은 마지막에 수도원의 건축형식과 공간을 완결해 주었다.

 

 

회랑은 수도자에게 거실과 같은 곳

 

회랑의 하루는 독서, 기도, 묵상을 위한 침묵의 시간대와 여러 가지 작업과 활동이 행해지며 대화가 허락되는 일상의 시간대로 구분되었다.

 

집에 비유하자면 회랑은 수도자에게 거실과 같은 곳이었다. 그 옛날에는 전기가 없었으므로 회랑의 가까운 곳에는 담화실도 있었고, 회랑에 나와 필사를 하거나 성가도 연습했다. 1년에 몇 번은 2인 1조가 되어 서로 머리를 깎아주거나 면도도 해주었다. 그러나 회랑에서는 토론(locutio)할 때만 대화가 허락된다.

 

생피에르 성당 회랑. 프랑스 므와삭.

 

 

안마당에는 반드시 분수가 있어서 수도자들은 이곳에서 손과 얼굴을 씻거나 목을 축이고 발을 씻었으며 때때로 세탁도 할 수 있었다. 토요일마다 끝기도 전에는 부엌당번인 수도자가 수도원 안에 사는 모든 이의 발을 씻어주었다.

 

수도자들은 회랑에서 걸으면서 성경을 읽었다.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는 회랑에서 행해졌다. 눈으로 읽는 완전한 묵독(默讀)은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으므로 단어 하나하나를 소리 내며 음독(音讀)하였다. 따라서 침묵의 시간이라도 회랑은 완전히 조용하기만 한 공간은 아니었다.

 

회랑에서는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십자가를 앞세우고 성가를 부르며 행렬을 이루었다. 그 때문에 베르나르도 성인은 회랑은 수도자에게 묵상의 공간이라며, 클뤼니 수도원의 회랑에 있는 수도자의 묵상을 방해하는 이상한 모양의 조각을 비판했다.

 

 

수도자의 생활이 실행되는 장

 

회랑은 수도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 앞에도 아트리움(atrium)이라고 하는 안뜰이 있어서 거룩한 곳과 속세 사이에 개방된 마당을 두었다. 그러나 봉쇄된 마당인 수도원의 회랑은 이와는 달랐다. 이 회랑은 속세와 단절하고 영적인 생활에 헌신하는 수도생활의 중심공간이자 수도원에서 가장 수도원다운 장소였다.

 

주교좌성당에 수도원의 생활양식이 도입되었을 때도 회랑이 놓였을 정도로 회랑은 수도원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규칙」 제4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부지런히 실행할 장소는 수도원의 봉쇄구역과 수도회 안에 정주(定住)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봉쇄구역이란 회랑 곧 클라우스트라(claustra)를 말하며 바로 그 자리가 수도자로 사는 생활이 실행되는 장소라는 뜻이다.

 

사실 수도원의 회랑은 열주가 둘러싸는 중정의 주위에 여러 방을 배치한 고대 로마 주택의 아트리움에서 비롯한다. 열주가 둘러싸는 중정은 오래전부터 정원의 한 종류였다.

 

벽이나 회랑으로 에워싸인 지상의 정원은 오래전부터 ‘파라디소(paradiso)’라고도 불렀는데, 영어로 ‘낙원’이라는 뜻을 가진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말도 정원 또는 중정에서 나온 말이다.

 

르 토로네 시토회 수도원 회랑.

 

 

12세기 베네딕도회 수사였던 오텅의 호노리우스는 이런 관점에서 수도원의 회랑을 구약성경이 묘사한 솔로몬 임금의 회랑에 비유함으로써 성경에 따른 권위를 주었다. 그는 벽과 회랑에 둘러싸인 채 세속에서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가진 바를 나누며 사도적 생활을 하는 수도원을 하늘나라에 비유하였다. 회랑에 사도들의 조각이 놓인 것은 이 때문이었다.

 

회랑은 묵상하는 영혼을 표현하였다. 회랑의 네 변은 각각 자기를 낮춤, 세상을 낮춤, 이웃을 사랑함, 하느님을 사랑함’을 나타냈다. 회랑의 각 변에는 고유한 기둥의 질서가 있는데, 자기를 낮춤을 나타내는 변에 있는 기둥은 정신의 겸손, 육욕의 고뇌, 과묵 등의 기둥이고, 주추는 인내를 상징했다.

 

이런 상징적 의미는 회랑에 붙어있는 방의 의미와 활동에도 관계가 있었다. 망드의 주교 기욤 뒤랑은, 집회실은 마음의 신비이고 수도자의 식당은 깨끗한 양심이요, 화초가 피는 안마당은 영혼의 메마름을 치유하고 영원한 죄의 불을 꺼버리는 성령의 은사라고 말했다.

 

천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회랑은 감옥이라는 뜻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박해시기에 순교를 기다리는 자에게 감옥은 사막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박해 시기가 지나고 수도의 고행이 순교를 대신하게 되면서, 닫힌 세계인 수도원은 ‘감옥’의 의미를 띠게 되었다. 베르나르도 성인도 수도자들이 회랑을 중심으로 사는 것을 붙잡힌 고기가 못에서 헤엄치는 것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회랑은 하늘나라이고 규율이라는 성벽으로 지켜지는 구역이며, 그 안에는 바꿀 수 없는 부요함이 넘쳐나고 있음이 보인다. 똑같은 소명을 받은 이가 같은 장소에 산다는 것은 더없는 행복이다. … 여기에 있는 것은 하느님의 진영이다. 얼마나 두려운 장소인가? 여기에는 하느님의 집인 성당과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밖에 없다.” 수도원의 회랑은 감옥이면서 동시에 천국이라는 이상을 담고 있었다.

 

수도원의 회랑은 안마당을 둘러싸는 정사각형의 공간이다. 로마네스크에서는 정사각형은 요한 묵시록이 말하는 하느님의 집, 곧 천상의 예루살렘을 상징하였다. 영원을 상징하는 천상적인 원에 대하여 정사각형은 땅을 나타냈는데, 변의 수인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의 네 방위, 사계절, 에덴동산의 네 개의 강, 십자가의 네 개의 팔, 사자와 독수리 등의 모습을 한 네 복음사가 등을 상징했다.

 

건축에서 벽과 회랑으로 둘러싸인 안마당, 곧 중정을 갖는다는 것은 사는 사람의 생활과 의지를 확립하는 것이며, 부분을 모아 전체를 만든다는 생각을 낳는다. 물론 벽이란 가로막는 것이고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벽과 회랑은 공간의 안과 밖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여서 이것이 없다면 건축공간은 만들어질 수 없다.

 

벽과 회랑은 자기 공간을 확립하고 사람들을 감싸 지켜주며, 또한 그 안에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완성해 준다. 수도원의 회랑은 수도자가 살아가는 방법이고, 전형적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간이자 지상의 하늘나라다. 그래서 시편은 하느님께 이렇게 호소한다.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되소서”(31,3).

 

수도자들에게 수도원은 구원의 성채였고, 회랑은 성채의 중심에 있었다.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교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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