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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멘델과 지구상의 완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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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6 ㅣ No.297

[과학과 신앙] 멘델과 지구상의 완두콩

 

 

멘델과 유전법칙

 

요즈음 유전자라는 말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말도 있고, 아빠 닮은 아들이나 엄마 닮은 딸을 보며 “유전자가 무섭다.”라는 말도 많이들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유전의 개념은 사실상 지금부터 150여 년 전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른바 멘델의 유전법칙 덕분입니다. 멘델은 유전 단위가 간단한 통계법칙을 따른다는 유전법칙을 발견하였지요. 완두콩을 재료로 수도원 풀밭을 실험실 삼아 발견한 통계적 원리가 유전학이라는 새로운 생명과학의 세계를 연,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요 식물 실험자로 잘 알려진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 1822-1884년)은 아우구스티노회의 수사이자 사제였습니다.

 

이번 호에는 멘델의 유전법칙에 얽힌 여러 가지 과학사의 뒷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과학의 속성과 과학자에 얽힌 진실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과학과 마태오 효과

 

지난 호에서 과학계의 금수저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과학은 어떤 다른 분야보다도 훨씬 더 배타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발전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속성을 지닙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 속담처럼, 콩 심은 데서 팥을 수확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선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지만, 과학계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초대 임금인 사울(Saul)이 바오로(Paul) 사도가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입니다.

 

이런 점에서, 멘델의 유전법칙은, 지금은 인류 문명의 지도를 바꿀 만큼 위대한 업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멘델의 살아생전에는 식물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는 전문가 집단에게 철저히 외면당하였습니다. 거의 35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랬습니다. 가톨릭의 사제가 뒷마당의 손바닥만한 땅을 실험실로 사용해 발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어마어마한 결과라 하더라도, 이름 모를 어느 아마추어 식물 애호가가 발견한 내용을, 전문가들이 쉽게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지요.

 

멘델은 7년 간의 완두콩 관찰 끝에 그 유명한 ‘멘델의 법칙’을 발견하였습니다. 1865년 초 자연과학학회에서 처음 그 내용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이를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해 학회 논문집에 게재했습니다.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이 붙은 이 논문은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서관에 보내졌지만 그 연구에 주목한 학자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뮌헨대학교의 유명한 식물학자 네겔리는 멘델의 기념비적인 논문을 받아들인 대표적인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멘델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으로 미루어 멘델의 논문에 실린 수학적 논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멘델은 꾸준히 연구를 계속해 다른 식물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멘델은 인생 말년에, “나의 시대는 반드시 온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유전법칙이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획기적인 발견은 그의 사후인 1900년대에 들어서야 재조명받게 되었습니다. 만일 멘델이 수도회 사제가 아니고 요즈음으로 말해 하버드대학교나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였다면, 그의 발견은 곧바로 세계적 관심을 받았을 것이고, 그는 생전에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영예도 누렸을 것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과학계에는 이른바 ‘마태오 효과’란 게 있습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란 분이 언급한 말입니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라는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둔 말입니다.

 

마태오 효과란 여러 가지 경우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젊은 나이에 그 내용을 발표하면 경력이 짧은 만큼, 모든 영예는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활동한 지도교수나 공동연구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기를 뒤흔들만한 유전법칙의 발견자가 과학적 명성이 없는 무명의 사제가 아니라 빈대학교의 유명 식물학자였더라면,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위대한 유전법칙이 그렇게 무시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진실은 밝혀지는 법, 멘델의 유전법칙은 1900년 유럽의 식물학자 코렌스, 세이세네크, 브리스 등이 각각 멘델과 비슷한 결과를 얻어내고, 34년 전에 발표된 실험결과와 개괄적인 원리를 문헌에서 찾아냄으로써 그는 죽은 뒤 명성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멘델의 실험은 유전학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의 중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의 중요한 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조작

 

수년 전 우리나라 한 수의학자의 조작된 줄기세포 연구논문 발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논문 조작도 조작이지만, 그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서로 다른 데 많이 놀랐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에는 논문 조작의 몰도덕성은 무시하고 그에게 다시 연구기회를 줘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학자 개개인이 가진 능력 문제를 떠나서 논문 조작과 같은 일에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과학계의 일반적인 관점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처지에선 관점이 다른 점도 있나 봅니다.

 

각설하고, 과학자이자 수도회 사제였던 멘델, 그의 업적은 분명히 위대합니다. 하지만 그 유전법칙 발견 과정을 두고는 이런저런 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멘델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멘델은 생전에 동료 수사들과 자기가 살던 도시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전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는 오늘날의 ‘진실 법정’에서 바라보면 작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성과 열성으로 표현한 멘델의 유전법칙. ① 부모세대 ② 제1세대 ③ 제2세대.

 

 

곧 완두콩을 재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아니면 대체로 나타나는 유전법칙에 대해 확신하고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의심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의 유전법칙은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다만 자신이 재배한 완두콩의 유전형질을 분석하면서 일부러 유전법칙에 맞지 않는 데이터를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무시했는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만, 조작 그 자체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1936년에 영국의 피셔란 통계학자(식물학자가 아닙니다!)가 멘델의 데이터를 자세히 분석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밝혀냈습니다.

 

피셔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실험 데이터 대부분이 멘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도록 조작되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매우 정중하게 “멘델이 그 결과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일부 조수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후대의 유전학자들은 피셔의 결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멘델이 최고의 사례를 만들어내려고 데이터를 선별한 것이 분명하다는 의견마저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완두콩

 

여기서 원예학 분야에서 발행하는 한 학술지에 ‘지구상의 완두콩(Pease on Earth)’이란 제목으로 실린 익명의 논평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을 빗대어 다음과 같은 논평을 기고하였습니다(윌리엄 브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 지음, 김동광 옮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47-48면 인용, 「성경」에 따라 번역문 자구를 일부 수정하였다).

 

“한처음에 멘델이 있었다. 그의 의로운 생각이 외롭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완두콩이 있으라.’ 하였다. 그러자 완두콩이 태어났고, 보니 좋았다.

 

그리고 그는 완두콩을 밭에 심고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라. 형질이 나뉘고 스스로 구색을 갖추어 분류되어라.’ 하고 완두콩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완두콩이 그대로 되었다. 보니 좋았다.

 

이제 멘델은 그의 완두콩을 거둬들이게 되었고, 둥근 것과 주름진 것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둥근 것을 우성, 주름진 것을 열성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부르기에 좋았다.

 

그런데 멘델은 450개의 둥근 완두콩과 102개의 주름진 완두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법칙에 따르면 주름진 완두콩 하나에 3개의 둥근 완두콩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멘델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 하느님! 적들이 이런 짓을 했습니다. 적이 밤의 어둠을 틈타 내 밭에 나쁜 완두콩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멘델은 격노해서 탁자를 세게 내려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저주받고 사악한 완두콩들아 나를 떠나라. 그래서 저 바깥의 어둠 속에서 게걸스러운 쥐와 생쥐에게 먹히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이렇게 300개의 둥근 완두콩과 100개의 주름진 완두콩만이 남았다.

 

그것은 보기에 좋았다. 보기에 참 좋았다. 그리고 멘델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둘러싼 마태오 효과와 진실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학자에게 논문 조작 같은 행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윤리문제입니다.

 

오늘날에도 명성이나 성과를 강요하는 제도 등 여러 이유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접착 및 계면학회 회장,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9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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