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교의신학ㅣ교부학

[신학] 신앙의 빛에서 본 세계관 - 창조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02 ㅣ No.448

[윤주현 신부의 신학 이야기] 신앙의 빛에서 본 세계관 - 창조론

 

 

이 세상 그리고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오늘날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깊고 범위가 넓습니다. 현대 천문학의 놀라운 발달로 말미암아 ‘빅뱅’으로 대변되는 우주의 시작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로부터 별들의 진화 그리고 팽창하는 우주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신이 몸담은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에게 남는 궁극적인 물음은 언제나 같습니다. 

 

도대체 왜 이 우주는 시작했습니까? 

 

이 우주를 시작할 수 있게 한 절대적 존재는 누구입니까? 

 

이 우주는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존재합니까? 

 

이 우주에서 티끌 정도도 되지 못하는 인간은 왜 존재합니까? 

 

안타깝게도 현대과학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아니, 앞으로도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존재의 기원과 근거 그리고 의미와 목적을 묻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한 철학적 대답 또한 언제나 모호한 대답만 되풀이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우주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우리의 운명을 말하다 

 

신앙은 이런 모호함을 넘어 우리에게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을 확신 있게 전해줍니다. 하느님이야말로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한 근원이자 목적이심을 신앙이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 신앙의 선조들에게 계시하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창조주시라는 신앙고백은 단순한 세계관을 넘어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게 해주는 근본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의 시작이자 궁극적인 목적이시며,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우리의 존재 의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내신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발전시키는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은 결정됩니다. 

 

 

동전의 양면인 창조와 구원 

 

이러한 의미에서 이런 주제들을 깊이 있게 파헤치는 가운데 우리에게 구원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창조신학은 단순히 다른 신학 분야들에 바탕을 마련해 주는 보조 학문이 아니라 감히 신학의 중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과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 미리 염두에 두신 특별한 계획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은 장차 세상과 인간이 당신 안에서 충만하게 실현되는 계획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사건은 이 원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시공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창조사건은 하느님의 계획과 깊이 맞물려 있으며 그 계획의 궁극적인 실현을 지향합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구원의 실현상태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와 구원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과 하느님 안에서 세상의 쇄신에 대해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창조신앙을 그 근본에 깔고 있으며, 창조신앙 안에서 완성됩니다. 창조론이 결코 부수적인 신학 분야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 계획의 실현에서 핵심인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그리고 부활은 하느님의 세상과 인간 창조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창조사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말에 그분의 재림을 통해서야 비로소 충만히 실현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창조론은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을 비롯해 신학의 여러 분야와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는 가운데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장대한 구세사를 우리에게 제시하며 그에 응답하도록 초대합니다. 

 

 

구세사 전체를 담고 있는 창조 

 

창조신학은 하느님께서 무(無)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세상의 창조가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작품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또한 천사와 인간을 비롯한 유형과 무형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의 목적은 하느님 당신의 영광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창조의 목적에는 그 어떤 이기주의적인 어감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만물이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될 것이며 인간의 행복 또한 거기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외에도 창조신학은 하느님께서 창조된 만물을 유지하고 보존하며 그 창조목적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예정에 대한 성찰을 제시합니다. 여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와 악의 문제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창조신학 안에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세사의 파노라마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오늘날의 창조신학은 이런 구세사의 근본 요소들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도 숙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생태신학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분야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간 중심적인 기존의 창조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살아가도록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창조신학은 지속해서 발전해 가는 생물학과 천문학 같은 과학 분야와도 끊임없이 대화하는 가운데 현대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맞게 창조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이런 주제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고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로서의 창조 

 

하느님께서 인간을 비롯해 온 우주 만물을 무(無)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창조가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도권과 자유로운 행위에 따라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창조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차원도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온 우주 만물은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기원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성’을 가리켜줍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신학대전」 1권 44-49문항에서 다양한 철학적 개념을 끌어들여 창조에 대해 다루면서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곧, 창조와 관련해서 모든 개념을 다 배제한다 하더라도 창조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말은 ‘관계’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관계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일방적인 관계이자 당신을 조건 없이 선물로 내어주시는 호혜적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당신을 내어주시며 관계를 맺음으로써 절대적인 무(無)에서부터 존재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조물의 존재인 인간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피조물과 맺어주신 관계는 피조물이 존재하는데 근본 바탕이 됩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존재의 근원이시며 최종 목적이신 하느님, 그분이 아니라면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그가 그로서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서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깊은 자각은 현대로 들어와 점차 하느님을 구석으로 몰아냈으며, 심지어 인간의 자아실현에서 하느님을 걸림돌로 치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의존적 관계를 단절해야만 참으로 성숙한 인간일 수 있다는 궤변까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의존적 관계는 인간을 유아적인 미성숙한 존재로 남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를 그이게끔 하는 중요한 바탕입니다. 하느님은 존재의 근원이시며 인간에 대한 원대한 계획과 더불어 그를 창조하셨고, 그 계획의 내용은 다름 아닌 하느님과의 영원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진리, 그리고 존재의 근원이자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에 대한 의존적 관계 안에 있다는 진리는 인간이 거부해야 할 사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발전시켜야 할 진리입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 

 

하느님께서는 피조물 가운데서도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진리는, 인간이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하느님과의 특별하고도 내밀한 관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그 품위 또한 신적인 차원을 지닌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그 존재의 완성도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완성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러줍니다. 

 

인간은 본디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지만, 더욱더 닮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창조하시되 자유라는 자신의 손에 맡김으로써 인간 또한 당신과 더불어 그 자신을 완성해 가는 공동 협력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이렇듯 창조사건에는 인간의 기원과 목적, 완성으로 향하는 그의 여정을 비롯해 그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함축적으로 담겨있습니다. 

 

* 윤주현 베네딕토 - 가르멜수도회 사제. 교황청립 데레사대학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 가르멜수도회 대구수도원원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와 역서를 펴내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8월호, 윤주현 베네딕토]



5,581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