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전례ㅣ미사

[사순부활] 부활성야의 역사와 전례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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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4 ㅣ No.601

부활성야의 역사와 전례거행

 

 

부활은 인류 구원의 완성이며 가톨릭 신앙의 핵심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한 뒤, 우리는 다시 모여 손에 등불을 밝히고 빛의 잔치에 참례합니다. 일 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토요일 밤! 부활성야 예식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요?

 

 

부활성야 전례거행의 역사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 인간의 구원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구원과 은총의 모든 능력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따라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신 예수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서 솟아납니다. 그러기에 일찍부터 교회는 주간 파스카(주일)에 이어 연중 파스카(부활대축일)를 거행하였습니다. 당시 부활성야는 철저한 단식과 밤샘기도로 구성되어 있었고 동틀 무렵의 성찬례 거행으로 마쳤습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5권 24).

 

“연중 파스카의 기념날짜를 유다인과 같은 날(니산달 14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그리스도교의 참신성을 근거로 주일로 할 것이냐?”라는 논쟁이 소아시아 교회와 로마 교회 사이에 있었습니다(에우세비오, 같은 곳). 로마 교회(교황 빅토르)의 노력과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결정으로 연중 파스카의 기념일은 니산달 14일 이후 주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어 로마 교회는 부활성야에 여러 요소를 도입하게 되는데, 그것은 세례성사와 등불을 켜는 예식(4세기), 부활찬송과 새 불 축복(7세기), 빛의 행렬(12세기), 부활초에 향 덩이를 꽂음(13세기) 등입니다.

 

7세기 이후 부활성야는 점점 쇠퇴합니다. 엄격한 단식이 힘들기도 했을 것이고, 세례자의 감소로 성야미사 시간이 점점 앞당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성야 예식은 밤샘기도 후 동틀 무렵에 미사를 거행하던 것에서, 오후 2시경 빛의 예식을 시작하여 샛별이 뜨는 초저녁에 미사를 거행하는 것으로 쇠퇴하였습니다(옛 젤라시오 성사집, 443항).

 

오래지 않아선 정오에 새 불을 축복하고 쏟아지는 봄 햇볕 속에서 ‘복된 밤’ 의 부활찬송을 노래함으로써 부활성야의 신비, 나아가 부활의 신비에 대한 모든 상징이 퇴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566년 비오 5세 교황이 오후에 드리는 미사를 금지함으로써 부활성야를 오전에 거행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우르바노 8세 교황은 1642년에 의무축일에서 부활성야를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훗날 오도 카젤(O. Casel) 등 학자들이 초기 교회 전례를 활발하게 연구한 결과로 비오 12세 교황은 1951년에 부활성야를 복구했으며, 1956년엔 성주간 예식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이는 1962년 미사 전례서에 포함되어 의무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부활성야 전례의 구성과 의미

 

사순 ? 부활시기뿐만 아니라 전례주년 전체의 정점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삼일(성삼일)입니다. 파스카 삼일 중 부활성야는 ‘모든 전야제(밤샘기도)의 어머니’(성 아우구스티노, “설교”, 219: PL 38, col. 1088)로 존경받습니다. 2002년 미사 전례서에 따른 현행 부활성야는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바로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예식, 성찬 전례입니다.

 

제1부 빛의 예식 : 부활성야에 새 불을 사용하는 풍습은 성목요일 저녁에 모든 불을 끄던 관습에서 나왔습니다. 밤에 등불을 켜는 것은 전기가 없던 고대에 날마다 집에서 이루어지던 예식입니다. 등불은 안전을 보장하고, 잔치의 등불은 기쁨을 증가시키며, 유다인들은 파스카 저녁식사 때 등불을 켰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빛을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보았습니다. 4세기 이후 기도를 위해 등불을 켜는 빛의 예식에서는 그리스도를 “성부의 영원한 영광의 즐거운 빛”이라 노래하였습니다.

 

부활초 행렬 때 사제가 부활초를 높이 들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 외치는 것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부활찬송은 구약 백성의 파스카인 이집트 탈출(“홍해 바다 마른 발로 건네주신”), 신약의 파스카인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참된 어린양 오늘 살해되시어”, “죽음의 사슬 끊으신 그리스도,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현재의 파스카인 부활축제 거행과 그리스도의 현존(“주님께 이 초를 성대하게 봉헌하오며, 벌들이 만든 것을 성직자의 손으로, 거룩한 교회가 봉헌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림(“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 등 부활성야의 다양한 신학적 의미를 통합해 “오늘”, “이 밤”, “밤”이라는 말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2부 말씀 전례 : 모든 전야 밤샘기도의 으뜸인 부활성야에는 구약에서 일곱, 신약에서 두 독서(서간과 복음)를 봉독합니다. 먼저 구약의 4개 독서 주제는, 제1독서 ‘창조’, 제2독서 ‘아브라함의 제사’, 제3독서 ‘홍해를 건넘’,  제4독서 ‘이사야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으로 이어져 신약의 파스카를 향해 펼쳐지는 구원역사를 밝혀줍니다.

 

이어지는 구약의 3개 독서는 세례성사와 관련한 것입니다. 주제는 제5독서 ‘모든 이에게 거저 주신 구원’, 제6독서 ‘지혜의 샘’, 제7독서 ‘새 마음과 새 영’입니다. 구약의 각 독서에는 화답송으로 시편이나 성경의 찬가가 뒤따르고, 이어 사제가 독서 맺음기도를 바칩니다. 4세기경부터 독서와 시편 또는 찬가와 기도로 밤샘기도가 구성되었습니다.

 

제7독서가 끝나고 대영광송을 분기점으로 독서는 구약의 ‘그리스도에 대한 예고’에서 신약의 ‘그리스도의 행적’으로 넘어갑니다. 동방교회가 날마다 아침기도 때 부르는 대영광송은 뛰어난 파스카 노래로, 서방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부활성야 때만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영광송을 노래하는 동안 부활초에서 불을 붙여 제대초를 켠 다음 본기도를 바치는데, 전야 밤샘기도에서 동틀 무렵 미사로 넘어가던 옛전례의 흔적을 여기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서간은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로마 6,3-11) 한다고 전하며, 알렐루야를 노래한 뒤 복음에서는 빈 무덤에서 천사가 전한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마태 28,1-10)는 소식을 듣습니다.

 

제3부 세례 예식 :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종교자유를 선포한(313년) 뒤 수많은 개종자를 위하여 단계적 세례 예식이 마련되었습니다. 부활성야는 길게는 몇 년씩 걸린 예비신자 기간이 종료되는 날로서 일년 중에 세례가 베풀어지는 가장 위대한 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지금도 부활성야에 세례성사를 거행하기를 강력하게 권하는 것입니다.

 

사제가 바치는 세례수 축복 기도는 태초의 물(창세 1,2), 홍수(죽음), 홍해를 건넘, 예수님의 세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요한 19,34), 부활하신 예수님의 세례를 베풀라는 명령(마태 28,19)을 상기시켜 줍니다. 세례 받을 사람이 없더라도 성수를 축복하고, 모든 신자는 손에 촛불을 들고 세례 서약을 갱신하며, 사제는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립니다.

 

제4부 성찬 전례 : 부활 감사송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새 영세자들은 첫 영성체를 통하여 입교성사를 완성합니다. 온 백성은 부활의 기쁨으로 “알렐루야, 알렐루야.”와 함께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미사를 마칩니다.

 

 

깨어 기다리는 종의 마음으로

 

부활성야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내가 받은 세례성사를 기념하고, 등불을 밝혀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루카 12,35 참조) 기다리다가(밤샘기도 / 깨어 있음)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을(성체 / 재림)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의 근거입니다.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일상의 힘겨움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부활의 기쁨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장신호 요한 보스코 - 대구대교구 신부. 대구 가톨릭 대학교 전례학 교수이며 학교 신문방송사 주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3월호, 장신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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