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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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전례] 전례 톡톡: 유대교 파스카와 그리스도교 파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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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12 ㅣ No.1435

[전례 톡톡 - 전례에 대한 궁금증을 간결하고 명쾌한 해설로 풀어 줍니다]

 

유대교 파스카와 그리스도교 파스카

 

 

유대교 예배와 비슷하게 유사전례(paraliturgia)를 거행하고(유대교의 파스카 만찬을 그리스도교에 맞춰 거행하는 식), 성당 안에 그런 예배의 상징(칠지七支 촛대)을 두기도 하는데요.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발전인가요, 아니면 혼란인가요? - 나폴리에서 빈첸시오 -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속한 모든 것, 즉 성서 시대와 그 후 이어지는 역사까지도 그리스도교 백성은 관심을 갖습니다. 유대교가 그리스도교의 기초요 전제기 때문이지요.

 

유대교 예식들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파스카입니다. 그리스도교 파스카와, 특히 성체성사와 관계되기 때문이지요. 예식 차원에서는 만찬과 관련되겠으나, 특별히 신학적인 차원에서는 구원 사건과 관련시켜 볼 수 있어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된 맨처음 그리고 그 후 이를 전례적으로 표현한 만찬 때에 구원 사건이 존재한다는 말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자유로 건너가고, 그리하여 하느님과 맺은 계약으로 건너간 일을 ‘기억’한다면, 그리스도교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셨고, 그리하여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자신들도 참여하게 되었음을, 아니 다시 태어나 구원된 백성이 되었음을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유대교 만찬과 ‘주님의 만찬’(1코린 11,20)인 성찬례, 이 둘의 차이는 분명하여, 유대교 신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는 분수령이 됩니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유대교 파스카 만찬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버리지는 않았어요. 유대인들부터 만찬에 초대를 받아 직접 참여하기도 했어요. 유대교 파스카가 바로 그리스도교 파스카의 전제이기 때문이지요. 즉, 유대교의 파스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겪으셨던 사건은 물론이요 성체성사를 통해 거행되는 그리스도교의 파스카의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파스카 만찬에는 이방인들(할례 받지 않은 이들)이 절대 들어올 수 없었지요. 성전에서 희생된 어린양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성전 파괴 이후로 어린양을 마련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유대교 파스카 만찬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답니다. 만약 어떤 공동체가, 특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대교 만찬을 정해진 규정에 따라 거행하더라도, 유대인 자신들도 자기네 것을 뺐겼다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 그러하죠. 두 예식 형태는 서로 구분과 분리가 확실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요구를 하는 까닭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독립적인 의미가 있는 유대교 파스카 만찬의 객관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또한 이와 섞일 수 없는 고유한 내용과 형식과 목적을 지닌 성찬례의 신학적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이랍니다. 구분과 분리라고 말한 것은 예식을 거행하면서 서로 연결시키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파스카 만찬의 가장 바람직한 거행 시기는 유대교 파스카 때이지, 그리스도교 파스카는 아니며, 절대로 성목요일은 아닙니다. 그밖에도 유대교 전통의 예식 형태들이 준수되어야 하지요.

 

 

혼성 조합

 

이런 조건들이 너무 엄격해 보일 수도 있어요. 이스라엘과 연대를 나누고 공감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의 용기를 꺾어 놓을 수도 있어요. 유대교 예식의 역사적, 신학적 의미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또 예형론적 해석을 넘어서는 뭘 하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조건들은 저명한 유대교 학자인 파올로 데 베네데띠(Paolo De Benedetti)가 말하듯, “유대교 파스카 거행의 의무는 아마도 탈출기 13장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에게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필수라고 여긴답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것은 혼성 조합의 경우인데, 아주 엄격한 검열이 필요하다고 봐요. 유대교 예식을 맘대로 주물럭거리며 욕 보이기만 하지 성체성사의 이해에는 도움도 되지 않거든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리스도교에 맞춘 유대교 파스카 만찬’ 이야기입니다. 거기서는 어린양을 먹는 예식을 권하면서, 성목요일 저녁만찬 전, 즉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는 저녁미사 전에 거행하라고 조언하지요. 마치 논리적인 발전이나 완성인양 유대교 만찬의 예식문들 다음에 그리스도교의 예식문들이 곧바로 이어지죠. 어떤 유대인이라도 이를 보면 소름이 돋을 겁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어린양

 

유대교 파스카 만찬과 성체성사가 이어져있는지는 아직 논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유대교 파스카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곧바로 이를 성체성사 예식으로 변형시키신 건지 전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죠. 최후의 만찬을 성목요일 저녁에 하셨는지조차도 확실하지 않아요. 어떤 학자들은 복음 텍스트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서로 말이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예수께서 유대교 파스카 만찬을 거행하신 게 사실이냐 아니냐, 사도교회는 이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관해 성경이 전해주는 것도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들 뿐이고, 그 또한 이별 만찬과 가장 잘 어울리는 내용들이죠.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바로 신학적 관점에서 본 파스카의 의미에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의 의미,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체성사라는 파스카의 의미가 밝혀지죠. 열쇳말은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탈출 12,14 참조)이고, 이 말인즉슨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다’(1코린 5,7)라는 뜻이지요. 우리를 유대교에 이어주는 것은 신앙의 중심인 파스카 사건이지 다양한 재료와 의식으로 된 만찬 예식이 아니랍니다.

 

끝으로 탈출기 25장 31절 이하를 보면 칠지 촛대를 성전의 계약궤 앞에 놓으라고 하는데, 그것을 성당의 제대 오른쪽에 놓아둔다는 것이(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그렇군요), 그것도 대형 십자고상이 우뚝 서 있는 성당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이런 말은 안 하고 싶은데 정말 괴상하네요. 이게 보통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R. Falsini, 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u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13-16)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5년 여름호(Vol. 30), 최종근 빠코미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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