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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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19: 사순 시기면 흐드러지게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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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4-26 ㅣ No.564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9) 사순 시기면 흐드러지게 피는 꽃


로마 곳곳에 유다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바티칸 어귀 리소르지멘토 광장에 피어있는 유다꽃. 사순 시기가 되면 로마 거리거리마다 홍자색 유다꽃이 활짝 피어난다.

 

 

“너, 참 예쁘구나! 그런데 왜 이 거룩한 사순 시기에 하필이면 바티칸 앞에 서 있니?”

 

유다꽃 이야기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목매어 죽었다는 나무(유다나무)에 피는 꽃입니다. 홍자색 빛깔의 꽃이 무척 화사해 보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삼켜버린 올해에도 유다꽃은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순례자들로 붐볐을 바티칸 어귀(리조르지멘토 광장)에, 바티칸으로 가는 큰 도로(콜라 디 리엔조 거리)에, 대사관 근처 동네 공원에도. 로마 시내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바티칸 안에도? 아닙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바티칸 내부를 구석구석 둘러보았으나, 유다나무는 한 그루도 없더군요.

 

로마살이 첫해에는 유다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꽃의 정체를 몰랐으니까요. 한국의 벚꽃이나 복사꽃처럼 그렇고 그런 봄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봄에야 알았습니다. 로마 한인본당 신자들과 로마 성지를 순례하던 중이었지요. 한 자매님이 길가에 예쁘게 핀 꽃을 가리키면서 저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대사님, 저 꽃이 무슨 꽃인지 아세요?” “네? 뭘까요? 벚꽃 비슷한데 벚꽃은 아닌 것 같고….” “유다꽃이랍니다. 로마에 많아요. 사순 시기에 피는 유다꽃, 느낌이 좀 그래요.”

 

성경을 찾아봤습니다. “유다는 그 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마태 27,5) 유다가 ‘셀프 교수형’을 당했다는 사실만 적시되어 있지, 구체적으로 무슨 나무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예수님의 죽음은 당시 예루살렘 사회에서 충격적 사건이었을 터이니,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유다의 행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을 것이고, 그가 어떻게 최후의 순간을 맞았는지 세상이 다 알았을 것입니다. 유다나무는 그때부터 유명세(?)를 탔을 것이고, 그 소문이 로마에까지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가장 많은 저주를 받은 ‘유다’

 

유다 이스카리옷.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앞으로도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저주를 받을 사람!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하나 있습니다. 유다, 이 자는 왜 죽을 때까지 꽃길을 택했을까. 조용히 사라질 일이지. 사순 시기 로마에 유다꽃이 만개하는 자연 현상으로 미뤄 당시 예루살렘에도 꽃이 활짝 피어있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저를 의아하게 하는 것은 유다의 심리 상태입니다. ‘셀프 교수형’을 당하는 주제에 화려한 꽃을 머리에 이고 저승길을 갔으니, 그의 심리 상태가 괴이하지 않습니까.

 

지난해 4월 19일 성금요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례하시는 주님 수난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바티칸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유다꽃이 대로변 양쪽에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1년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특히 바티칸 어귀의 유다꽃이 나름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어찌나 징그럽게 보이던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날이 날이었던지라 좀 섬뜩한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유다꽃 밑에 대롱대롱 달린 유다의 주검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아니었겠습니까. 유다 머리 위의 유다꽃과 그 밑에 매달려 있는 유다의 시신이 끔찍한 대조를 이루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천당과 지옥이었고, 천사와 악마였으며, 믿음과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돌아가셨는데, 유다는 화관을 쓰고 죽다니! 화관과 ‘셀프 교수형’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유다꽃 밑의 유다를 봐라!” 아마 이거 아닐까요? 유다도 주님이 선택하신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마적 형질은 가려져 있었습니다. 세상사가 그렇습니다. 악마적 형질은 청산유수 같은 언변 속에, 화려한 의복 속에, 깔끔한 외모 속에, 자비로운 선행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복기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내 안에 있을 유다의 형질

 

예수님이 유다의 정체를 모르고 열두 제자에 포함시켰을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지요.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유다를 비난하지만, 너희 모두에게 유다의 형질이 내재되어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안에 있을 유다의 형질은 어느 정도나 될까. 그것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순 시기 유다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화두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26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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