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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중 매체와 가톨릭: 대중 매체의 가톨릭 묘사에 대한 몇 가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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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9 ㅣ No.1672

[경향 돋보기 - 대중 매체와 가톨릭] 대중 매체의 가톨릭 묘사에 대한 몇 가지 의문

 

 

지금은 ‘영웅 신부님 전성시대’다. 세상에 만연한 악과 대적하는 드라마와 영화 속 사제들은 바쁘다. 구마 예식을 신비롭고 엄숙하게 보여 주려면 라틴어도 잘해야 한다. 사목 활동 가운데 만난 악의 무리와 치열하게 싸우려면 주먹을 쓰거나 피도 흘려야 한다.

 

가톨릭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관심은 내가 일하는 주교회의 홍보국에서도 느껴진다. 실제 수도원을 촬영 장소로 섭외할 수 있는지, 기획 중인 줄거리와 설정이 교리와 관례에 부합하는지 등의 문의가 잦아지고 있다. 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기에, 현재로서는 검증이 잘된 작품에 도움을 줄 인사나 촬영 장소가 될 본당과 수도회를 관할하는 교구와 접촉하도록 안내한다.

 

예전에도 대중 매체 속 가톨릭은 단편적이나마 좋은 모습이었다. 드라마 등장인물이 성당의 십자고상이나 성모상 앞에서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하거나, 가톨릭 신자라는 단서가 없었어도 혼인과 장례만은 성당에서 하는 식이었다. 요컨대 가톨릭은 삶을 축복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상징이며, 지금은 그 기능이 확장된 느낌이다.

 

 

제복을 입은 정의의 사도를 찾아

 

대중 매체는 수용자의 몰입을 위해 희소하고 독특한 소재를 찾아다닌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한다. 상상의 힘을 빌려 현세의 대안과 이상향을 제시하는 창작자들은 불의를 처단하고 정의를 실현할 영웅을 창조하려 애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 역할은 주로 경찰과 법조인이 맡아왔다. 그들에게는 외형상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단련과 절제, 규율과 원칙의 상징인 제복이다. 그러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비리로 공권력의 신뢰가 저하되고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직업군의 인물이 대립하는 구도가 반복되자, 의로운 공직자는 식상한 소재가 되었다.

 

새로운 정의의 사도를 탐색하던 제작자들에게,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는 대중의 신뢰감과 궁금증을 동시에 충족할 대안이 되었다. ‘사제물’이라 불릴 법한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은 외국 영화 ‘엑소시스트’와 ‘시스터 액트’, ‘신과 함께 가라’, 드라마 ‘브라운 신부’ 등에서 검증된 상태였다. 국내에서는 사제들의 꼼꼼한 감수와 촬영 협조로 제작된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이 선례를 남겼다.

 

 

낯설지만 궁금한 가톨릭의 매력 자본

 

‘사제물’은 제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도덕적 기대와 소재의 희소성이 결합되어 탄생했다. 한국의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가톨릭 사제들은 잘 단련된 소수 정예 집단으로 인식된다. 다른 주요 종교 성직자보다 적은 인원, 10년에 가까운 긴 양성 기간 때문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에서 한국 개신교 목회자는 28만 3천여 명, 불교 승려는 5만 6천여 명, 천주교 성직자는 5천3백여 명으로 집계된다).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에게는 특별한 ‘매력 자본’이 있다. 바로 거룩함과 정결이다. 한때는 서양에서 들어왔고, 입교 준비에만 6개월이 걸리며, 판공 성사와 교적으로 실제 신앙생활의 지속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 가톨릭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었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과 방한 특집 방송으로 교회의 모습이 널리 알려지자, 가톨릭은 단일한 세계 종교, 전례의 거룩함이 살아 있는 종교라는 우호적 인식이 높아졌다.

 

성 담론 과잉의 시대에 젊은이의 정결은 희소한 자본이 된다.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 ‘손 더 게스트’의 김재욱처럼 용모가 준수한 배우가 사제복을 입으면 팬들은 환호한다. 모두들 탐내지만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금단의 열매’로 둔갑한 것이다. 그 환호에는 외모의 찬사만 있을 뿐, 정결의 본질에 대한 관심은 없다. 일부 패션 잡지 화보나 핼러윈 의상은 수도복을 노출이 심한 옷으로 변형해 젊은 수녀를 욕정의 화신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정결에 대한 조롱이다.

 

거룩함과 정결에 대한 호응은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잊어버린 가치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사제직의 고찰, 자료 조사와 검증이 부족한 채 배우의 매력만 강조하는 연출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젊은 사제의 역경을 강조하고자, 그를 가로막는 선배 사제와 수도자가 실은 악령의 하수인이라는 식의 설정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용어와 배경 검증, 소통이 필요하다

 

드라마 ‘프리스트’와 ‘열혈 사제’의 가톨릭 검증 논란을 접하며 생각난 사건이 있다. 주교회의 부서들의 기록물, 교회 기관 선배들의 증언으로 알게 된 일이다.

 

200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때 국내 언론사, 교회 기관, 가톨릭 언론인들 사이에 심각한 엇갈림이 있었다. 교회 밖 매체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외신들을 적절히 번역하지 못해 교회 용어와 맥락이 어그러진 기사들을 출고했다. 비신자 언론인들은 어느 천주교 기관에 문의해야 하는지 몰라서, 가톨릭 언론인들은 부실한 보도가 이어져 애를 태웠다.

 

그 시행착오는 교회 기관과 언론사 간의 소통 창구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의 전신인 매스컴위원회는 언론인 위원들을 주축으로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 자료집’ 편찬을 시작했고, 완성된 원고는 홍보국의 교정 교열과 자료 보강, 주교회의 용어위원회의 감수를 거쳐 2011년 발행한 뒤 언론사와 출판사에 배포했다.

 

주교회의와 교구 홍보국은 교회 밖 매체들과의 소통 체계를 갖추어 나갔고, 주교회의는 교황청 중대 사안 발생에 대비해 참고 자료를 축적했다. 그 결과,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2014년 교황 방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때 교회와 매체 간 소통, 표준 용어 사용, 인터뷰 섭외, 자료 제공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보도 부문에서도 시행착오와 오랜 조율을 거쳐 왔을진대, 그보다 발걸음을 늦게 떼었고 가상의 이야기를 창작해야 하는 극예술의 가톨릭 묘사에 갈 길이 먼 것은 확실하다.

 

드라마에서 가톨릭이 다뤄질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용어와 설정에 대한 지적이 빗발친다. 서울대교구의 감수를 받은 드라마 ‘열혈 사제’도 초반에는 오류가 잦았다가 점차 개선되었는데, 그 과정에는 오해도 있었다. 한 예로 몬시뇰로 설정된 신부의 복장이 주교 모자(자주색 주케토) 없이 자주색 허리띠만 착용한 것도 몬시뇰 복장이 맞는데 일부 신자들이 주교 복장으로 잘못 알고 항의했던 것이다.

 

개신교 인구가 가톨릭보다 훨씬 많은 한국의 특성상, 제작진이 대본을 구성할 때 비교적 귀에 익은 개신교 성경과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일차적 책임은 제작진의 검증 부족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적절한 감수자를 찾지 ‘못했다면’ 어떨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사전 정보 없이 이웃 종교를 방문할 때 그 종교의 예식과 언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종교를 쉽게 설명해 줄 사람을 얼른 찾아낼 수 있는가?

 

상상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잘 검증된 작품을 만들려면 교회와 제작진이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교회 기관들이 제작진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상호 협력한 경험들이 공유되고 축적되어야 한다. 극적 효과를 위해 교회의 모습을 허구로 연출했을 경우, 교회 매체와 사목자들이 설정과 실제를 분별해 준다면 그 자체가 교리교육이 될 수 있다. 무리한 연출에 대한 비판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작품을 향유하는 이의 권리이자, 장차 만들어질 작품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편집된 영상, 편집될 수 없는 교회

 

‘열혈 사제’ 종영 당시 극중 간접 광고(PPL)의 효과를 분석한 기사가 등장하자, “최고의 PPL은 천주교”라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촬영지였던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는 많은 신자와 관광객이 찾았고, 본당 수녀를 연기한 배우는 ‘냉담’을 풀었다고 한다.

 

대중 매체에 교회가 조명될 때면 많은 이가 선교 효과를 언급한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는 고해소를 찾는 냉담 교우가 많아졌다는 사제들의 전언도 있었다. 정말 그럴까? 2003-2018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살펴보자.

 

예비 신자가 전년보다 1만 명 이상 늘어난 해는 2005년(167,100명), 2007년(197,756명), 2009년(167,914명)이었다. 2005년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2009년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으로 교회의 매체 노출이 잦았다.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2010년은 예비 신자 대신 주일 미사 참여자(1,418,162명)가 10만여 명 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2014년에는 예비 신자(124,139명)가 전년보다 5천여 명, 이듬해에는 주일 미사 참여자가 2만여 명 늘었다.

 

그럼에도 신앙생활 지표들은 장기적으로 하락세다. 최근 15년 사이 연간 예비 신자 총수는 반 이하로 줄었고(2003년 162,732명, 2018년 66,524명), 주일 미사 참여자는 2010년 정점 이후 지금은 1백만 명 선이 위태로울 지경이다(2010년 1,418,162명, 2018년 1,075,089명).

 

가톨릭에 대한 대중 매체의 우호적 묘사는 단기적 선교에 도움이 되었어도, 새 신자들의 정착, 기존 신자들의 신앙생활 지속, 냉담 교우들이 다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화면 너머 신앙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늘어났어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선교보다 넓은 의미의 복음화에 진정 필요한 것은 근사한 편집본이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교회의 편집될 수 없는 언행이다. 대중 매체는 교회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보조 수단일 뿐, 좋은 원본이 없이는 좋은 편집본도 있을 수 없다. 편집된 영상 속 교회의 좋은 모습에만 도취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김은영 크리스티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언론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2008년 인터넷 웹진 공모전으로 방송 비평에 입문, 2018년 제45회 한국방송대상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영상 콘텐츠에 반영된 가톨릭의 흔적을 찾고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김은영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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