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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고동이 바르바라 · 김호연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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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8 ㅣ No.1830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10) 고동이 바르바라 · 김호연 바오로

 

 

고동이(바르바라, 1761~1819)

 

고동이는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흥송과 혼인해 안악에서 살다 함경도 무산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무산으로 유배 온 조동섬(유스티노)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는 남편이 죽은 후 신앙생활을 좀 더 잘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조동섬의 종손자인 조숙(베드로)을 찾아갔다. 고동이는 무산에서 할아버지를 뵈러온 조숙을 만난 적이 있었다. 

 

조숙은 권천례(데레사)와 동정부부로 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일대인 사재감계에 살고 있었다. 고동이는 조숙의 집에 머물면서 열심히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실천했다. 

 

그러던 중 1817년 3월 말 조숙이 한성부에 체포됐다. 이때 권천례와 고동이도 함께 잡혀 압송됐다. 고동이는 갖은 고문과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고 “저는 오랫동안 천주교를 독실하게 믿어 왔으므로 이를 배척할 수 없습니다. 빨리 형벌 아래 죽어서 천당에 올라가기만을 바랍니다”라며 신앙을 증거했다. 

 

고동이는 참수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2년간 옥살이를 하다 1819년 8월 10일 조숙ㆍ권천례 동정부부와 함께 순교했다.

 

 

김호연(바오로, 1796~1831)

 

김호연은 경상도 안동의 이름있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가 되기도 전에 유가의 모든 경서에 정통했지만 세속의 영광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과거에 응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온종일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순흥 북쪽 석송 마을로 이주한 그는 김춘실(토마스)을 만나 천주교 서적을 탐구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날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그때까지 지키던 모든 미신 행위를 끊었다. 

 

김호연은 김춘실에게서 바오로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교회 서적을 전해 주고 입교를 권고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하며 날마다 매질을 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칼을 들고 그에게 다가와 “네가 배교하고 죽으면 내 아들로 인정하겠다. 그러나 배교하지 않는다면 이 칼로 너를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바오로는 “누구나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임금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을 어찌 배반하라고 하십니까”라며 반박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새벽, 김호연은 기도와 묵상 중에 몇 번이나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다. 정오가 되자 그는 삼종 기도를 바치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거두었다. 1831년 8월이었다. 김호연이 개종한 지 거의 1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30일, 정리=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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