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강론자료

2019-03-10.....사순 제1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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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9-03-10 ㅣ No.2293

 

사순 제1주일 (다해)

 

신명기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2019. 3. 10. 이태원.

주제 : 내게 다가오는 곤경을 이기기

사순절의 첫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누구나 비슷한 자세일 수는 있습니다만, 사순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희희낙락하고 얼굴에 웃음을 보이는 것은 무언가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느낄 때입니다.

 

사순절에는 우리가 서글프게 살아야 할까요? 이론은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대답으로 말할 때는 서글픈 감정과 진중한 마음을 담아서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내가 대답한 대로 살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론과 현실에 이렇게 차이가 날 때, 실제로 사람이 움직이는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사순절의 첫째 주일에 들은 복음은, 예수님에게 다가온 유혹과 그 유혹을 이겨내신 모습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유혹이 다가왔을 때, 우리가 예수님처럼 이겨낼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바람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고, 거기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당했다고 전합니다. 사람에게는 짧은 순간 다가오는 유혹도 이겨내는 일이 쉽지 않은데, 40일 동안 악마는 예수님을 어떤 방법과 내용으로 유혹했겠습니까?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는 악마가 어떤 방법으로 예수님을 유혹했는지 상상하고 싶어도 그 내용은 복음서가 기록하는 3가지 내용이 전부입니다.

 

악마가 예수님에게 도전한 유혹의 내용은 수없이 많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아는 그 간단한 사실은 빵에 대한 유혹권력에 대한 유혹 그리고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고 합니다. 유혹은 많았을 것인데, 그중에서 복음사가가 전하는 내용이 이렇다는 것은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도 이러한 유혹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유혹에 부딪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혹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예수님처럼 이기는 것입니다. 유혹에 떨어지지 않고, 그것을 견디고, 그 유혹의 바탕에 깔린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하여 바르게 대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지 못했을 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실적인 배고픔을 이겨낼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한다면, 먹어서 배를 채우는 방법을 빼고서는 배고픔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습니다. 또 사람으로 살면서 권력에서 멀어져서 고고하게 설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처음의 상황에 부딪힐 때는 자신감이 있게 덤빈다고 했다가도, 결국에, ‘하느님은 나를 돕지 않는다(!)’고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내가 정한 길로 가는 것이 인간이 드러내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면서 드러내기 쉬운 욕심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신앙인인데 고통이 왜 나에게 오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갖는 생각은, 고통을 주는 대상은 하느님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이 유혹을 겪고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겪는 고통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자이신 아들을 보내신 하느님께서, 실제로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원하실까요?

 

사람이 겪는 고통에 관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이 세상의 삶을 마칠 때까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그런 한계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판단과 뜻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은 그 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인간이 유혹을 이기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신명기의 말씀에서 들은 것처럼, 모세가 한 선언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말한 것처럼 우리 민족은 떠돌아다니던 아람민족도 아니고, 그와 관련이 있는 후손도 아닙니다. 다만 처음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얻지 못했던 대상에서 바뀌어,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이 베푸실 축복에 포함될 수 있는 대상으로 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걸 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사는 길은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어야 하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어야 할까요? 누가 그 해답을 알려주겠습니까? 여러분은 삶에서 그 모습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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