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신앙: 자유 의지와 양자 물리학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20 ㅣ No.364

[과학 시대의 신앙] 자유 의지와 양자 물리학

 

 

필자의 어린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들이 담임 교사에게 이렇게 당부하곤 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잘못하면 많이 때려서 사람 되게 만들어 주세요.” 실제로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매질하는 교사가 많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 크게 반발심을 느꼈고, 교사들의 체벌이 정당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

 

‘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자랐으니, 아이가 잘못했다면 그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그러니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매를 맞아야 하지 않나?’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른들이 가르치는 대로 자란 아이는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없다는 말이니까, 때려서라도 바로잡는 것에 아이는 말대꾸하지 말라는 것일까?’

 

어느 생각이 옳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즈음, 가끔 윤리 수업 때 배우는 철학사에서 프랑스 종교 개혁자 칼뱅의 ‘예정설’을 듣게 되었다.

 

예정설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포함하여 세상 끝날까지 예정하셨다. 또 누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갈지도 이미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정해 놓으셨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하느님만 알고 계신다고 하였다.

 

요즘은 예정설에 대한 해석이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어린 나는 이를 듣고 ‘하느님께서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렸다.’라는 생각에 몹시 분개했다. 급기야 신앙을 버리는 일까지 각오하고 이 내용이 사실인지 따지러 본당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은 이 내용이 잘못된 것이며,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나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년)의 ‘불확정성 원리’를 듣게 되었다. 이는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더 발명될 만한 것이 없을까

 

“이제 이 세상에서 발명될 만한 것은 모두 발명되었다.” 120여 년 전인 1899년, 미국 특허청장 찰스 두엘이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그가 한 말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당시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산업 혁명으로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고, 많은 발명가가 여러 산업에서 수많은 발명품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 현상을 하나로 통합하여 빛이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이른바 ‘전자기파’가 알려지고 나서, 테슬라와 마르코니는 이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무선 전신을 발명하였다.

 

에디슨은 전기의 흐름을 빛으로 변환하는 백열등으로 밤을 밝혔고 영화를 발명하였으며, 벨은 전화기를 발명하였다.

 

그 당시 물리학계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 법칙으로 천체의 움직임과 기계적인 현상을 모두 설명할 뿐만 아니라 예측도 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인 라플라스는 심지어 물체의 현재 위치와 속도를 알면 모든 물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우주관’을 주장했다.

 

양자 물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막스 플랑크도 1874년 물리학 공부를 막 시작하던 때에 지도 교수에게서, “물리학에는 이제 더 이상 발견할 만한 것이 없다. 메워나가야 할 세부적인 것들만 남았다.”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1920년대 말, 하이젠베르크가 제창한 ‘불확정성 원리’ 이론을 계기로 물리학계는 큰 전환기를 맞는다. 뉴턴 이후 정립되어 온 고전 물리학에서는 ‘운동 법칙에 따라 모든 운동이 결정되어 있다.’고 했지만,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물리학에서는 ‘초기 조건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곧 물체의 위치를 측정하면 그 물체의 속도 또는 운동량을 알 수 없게 되고, 속도를 측정하면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 물체의 양자 상태는 알아낼 수 없다. 양자 상태를 알아내고자 측정을 한다면, 그 물체는 더 이상 본디의 양자 상태에 있지 않고 측정된 결과의 새로운 양자 상태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식론적인 한계를 말한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의 발견에 막대한 기여를 한 플랑크와 아인슈타인도 양자 측정의 확률론적인 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의문을 드러낸다.

 

자유 의지를 둘러싼 과학적인 논란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이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를 증명하는 이론은 아니라 할지라도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이론을 통해서 적어도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여지는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자유 의지

 

자연 현상만으로 선과 악을 논할 수는 없지만, 인간 행위의 선악을 따지려면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집회서는 선과 악의 선택에 관한 인간의 자유를 언급한다.

 

“한처음에 인간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15,14-16).

 

마태오 복음에서도 죄악은 인간의 외부가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15,19-20).

 

스티브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오늘날 사람들이 세 가지 결정론에 빠졌다고 말한다.

 

첫째는 생물학적 결정론이다. 곧 자신의 문제를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것인데 이른바 ‘조상 탓’을 말한다.

 

둘째는 심리학적 결정론이다. 곧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 탓으로 ‘부모 탓’을 말한다.

 

셋째는 환경적 결정론으로 자신의 배우자나 동료, 상사, 국가, 사회에 자신의 문제를 전가하는 ‘남 탓’이다.

 

스티브 코비는 이러한 결정론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개척해 나가는 습관을 만들라고 권한다.

 

우리의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다. 자유 의지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라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 김재완 요한 세례자 – 고등과학원(KIAS) 계산과학부 교수로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김재완 요한 세례자]



2,38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