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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101: 20세기 (5) 각종 신심 운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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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25 ㅣ No.1269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01) 20세기 ⑤ 각종 신심 운동들


여러 가지 신심 운동의 탄생, 다양성과 활기를 더하다

 

 

1947년 파티마 성모님 메시지가 미국에 전해지면서 푸른 군대가 설립됐다. 사진은 2017년 5월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공연장에서 봉헌된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 미사에서 주교단이 강복하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20세기 현대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및 냉전(1947~1991)을 경험하면서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공허함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개최해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진단하고 교회의 쇄신을 권고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성화 되도록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교회 헌장」 39 참조) 공의회 전후로 교회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심 운동이 조직되고 확산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신심 운동들

 

1917년 5월 공표된 ‘1917년 교회법전’에 비밀결사 단체인 ‘프리메이슨(Freemasonry)’에 가입하면 자동 파문된다는 조항이 삽입돼 그 단체 사람들이 교황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1917년 10월 혁명으로 러시아에 공산주의가 정권을 잡게 되자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Maksymilian Maria Kolbe, 1894~1941)는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악의 편에 선 자들과 싸울 단체 설립을 계획했습니다. 콜베는 1917년 10월 16일 로마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성 테오도로 국제 대신학교에서 ‘원죄 없으신 성모 기사회(Militia Immaculatae)’를 창설해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의 보호 아래에서 죄인, 이교도, 이단, 비밀결사 단원이 회개와 성화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사도적 열성을 가지고 활동했습니다. 기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회원들은 자신들을 도구로 봉헌하고 기도와 보속을 실천했으며 일상의 고통과 의무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마리아께 매일 화살기도를 바쳤습니다.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 더블린대교구에서 프랭크 더프(Frank Duff, 1889~1980)와 여러 자매는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를 설립하는 첫 회합을 했습니다. 이 단체는 단원들이 성화를 이루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단원들은 성모 마리아의 겸손과 순명 정신 및 마리아가 지닌 높은 성덕을 본받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단원들은 자기 성화와 이웃에 대한 봉사 활동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으며, 예수 성심 신심을 전파하는 일에도 매진했습니다. 다만 이 단체가 주요 활동으로 묵주기도를 강조하면서 신자들이 너무 성모님에게만 집중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1946년 미국 뉴저지주 플레인필드에 본당 신부였던 해롤드 콜갠(Herald Victot Colgan, 1894~1972)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파티마 성모님께 자신을 돌보아 주시면 건강을 회복하고 성모 신심 보급을 위해 여생을 봉헌하겠다고 기도했고, 건강해지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자들에게 성모 신심을 강조했습니다. 1947년 파티마 성모님 메시지가 미국에 전해지자 콜갠은 이 메시지 중에 붉은 깃발을 내세운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해서 성모님의 푸른 깃발 아래 모이자고 강조하면서 ‘푸른 군대(Blue Army)’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1985년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The World Apostolate of Ftima)’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단원들은 ‘쎌기도’ 모임을 통해 자신의 성화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며 와 희생 및 보속을 실천하고 성모 성심께 자신을 봉헌하며 평화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1972년 5월 8일 파티마의 성모 발현 경당에서 기도 중에 ‘마리아 사제 운동(Movi - mento Sacerdotale Mariano)’을 시작하라는 성모 마리아의 부르심을 받은 스테파노 곱비(Stefano Gobbi, 1930~2011)는 영적 지도자의 식별을 통해 동료 사제들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에서 회원들은 다락방 기도 모임을 통해 새로운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성모 마리아와 함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 모임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않았으며, 기도 중에 함께 하는 이들과 형제적 친교를 나누고자 노력했습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로 다양한 형태의 신심운동이 조직되고 확산됐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지오 마리애의 프랭크 더프, 성모 기사회의 콜베 신부, 마리아 사업회의 키아라 루빅, 꾸르실료의 에두아르도 보닌 아귈로.

 

 

다양한 주제를 지닌 신심 운동들

 

1939년부터 이탈리아 예수회 소속 리카르도 롬바르디(Riccardo Lombardi, 1908~1979)는 참혹한 전쟁의 참상에 자극을 받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형제애’에 관한 순회 강연을 했습니다. 즉, 롬바르디는 신자들에게 화해와 일치를 강조하면서 인간과 세상을 구원할 분은 구세주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롬바르디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모이자 ‘사랑의 십자군’이라는 이름의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Pius PP. XII, 재임 1939~1958)는 1952년 롬바르디가 실천한 운동을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Movement for a Better World)’이라고 명명하고 격려했습니다. 이 운동은 복음 말씀에 근거해서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보다 나은 교회 공동체가 되며 보다 나은 하느님 나라 확장을 목표로 그리스도인의 쇄신을 강조했습니다.

 

1943년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키아라 루빅(Chiara Lubich, 1920~2008)은 동료들과 함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이상(理想)을 갈망하다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하여 인간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깨닫고 ‘마리아의 사업회(Focolare movement)’를 설립했습니다. 회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서로 하나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회원들은 성모 마리아의 보호 아래에서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삶에 부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944년에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던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날 준비 과정으로 단기 교육을 시행했습니다. 이 교육 과정에 참여했던 평신도 에두아르도 보닌 아귈로(Eduardo Bonnn Aguil, 1917~2008)는 이 교육 과정을 발전시키는 데에 동참해서 1949년 그리스도인 순례자 지도자 과정 첫 단계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이 사도직 운동은 ‘꾸르실료 운동(Movimiento de Cursillos de Cristiandad)’이라 불렸습니다. 이 운동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삶을 사회 안에서 실천하려는 목적으로 3일 동안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짧은 강좌를 시행해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쇄신해서 세상을 복음화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1952년 스페인 사제 가브리엘 칼보(Gabriel Calvo)는 결혼 생활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 부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부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도움을 주는 봉사 부부들과 함께 10년간 스페인 전역에서 나눔 모임을 했던 칼보가 1962년 바르셀로나에서 주말 피정 형식으로 강좌를 실시하고 나서 이 부부 모임은 전국적으로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1960년대 후반에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소개되고 ‘메리지 엔카운터(Marriage Encounter)’로 불렸습니다.

 

1967년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듀케인 대학교에서 몇몇 가톨릭 신자 교수들과 대학생들은 기도 모임을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참가하면서 ‘성령 쇄신 운동(Charismatic renewal movement)’으로 발전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봉사 생활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신과 공동체를 쇄신해 하느님 중심의 생활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20세기 출현한 다양하고 활기찬 신심 운동들은 교회와 신자들의 쇄신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다만 일부 신앙인들이 개방성을 표명하는 신심 운동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이 선택한 신심 운동이 유일하고 전체적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배타적인 모습이나 선민의식을 표출하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신앙인들이 신심 운동의 목표를 잘 성취할 수 있도록 늘 올바로 교육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25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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