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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마음이 머무는 피정: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소사 성분도 은혜의 집 -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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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0 ㅣ No.865

[마음이 머무는 피정 -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소사 성분도 은혜의 집] 나와 대면하는 시간 -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

 

 

더웠다. 너무 더웠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는 찌는 듯 무더웠다. 한 달 넘게 계속된 불볕더위가 전국을 달구었다. 지난 칠팔월이 그랬다. 연일 최고 온도를 기록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폭염과 열대야를 피해 산과 바다, 계곡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안고 피정의 집으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

 

“직장 · 학교 · 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휴가에 대한 정의다. 그렇지만 그런 사전적 정의로 휴가의 의미를 모두 표현할 수 있을까?

 

휴가는 누구나 기다려지고 또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휴가 앞에는 보통 ‘행복한’, ‘신나는’, ‘즐거운’, ‘꿈같은’ 따위의 수식어가 앞선다. 그리고 그 길 끝자락에서 심신을 달래고, 마음의 여유와 평화 속에 다른 사람이 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 지난 7월 15일자 ‘서울 주보’에 실린 제목이 그랬다. ‘나’를 ‘만나는’ ‘휴가’라고, 그런데 그게 피정이라고….

 

“내가 가진 물건도 내가 만나는 사람도 다 지나가지만, 끝까지 나와 함께 머무는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며 내가 편안해져야 내가 나에게 또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관계 형성도 잘 할 수 있어요. 나에게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은 내면에서 비롯하는데 문제를 밖에서 찾으려 하니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태를 보면서 나와의 관계 너와 우리와의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소사 성분도 은혜의 집(이하 소사 은혜의 집) 양선일 폴리나 수녀가 밝힌 피정을 마련하게 된 배경이다. “나 자신과 만나려면 일상을 떠나 휴가를 해야 하고 나와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요청으로 시작한 피정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소사 은혜의 집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옆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소사로 320번길 35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에 수녀회 분원이 설립된 것은 1949년 11월 무렵이다. 1979년 수도 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는 수녀들에게 인근 본당의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를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수녀원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영적 말씀을 나누기 시작해 1981년 소사 은혜의 집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90년 5월 나지막한 동산과 잘 가꾸어진 정원으로 둘러싸인 지하 1층, 지상 2층의 아담한 피정 공간이 마련되었다.

 

수녀원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피정을 준비한 게 아니라 지역 신자들의 요구와 지역 사회에 문을 열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피정’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위탁 피정을 주로 하며, 단체 피정을 위해 장소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해마다 8월에 단 두 차례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을 진행한다.

 

 

하느님 안에서 나를 보라

 

지난 8월 4일 열린 올해 첫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에는 전국에서 열여덟 명이 참여해 참자기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해답을 얻으려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고”, “투병 중인 남편을 간호하고 지켜보는 게 힘들어서”, “영적으로 충전하려고” … 그렇게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피정에 참여했다. 혼자나 성당 동료와 같이 오기도 하는데, 제주에서 딸과 함께 피정에 온 어머니도 있다.

 

“쉬러 오셨지요? 편안하게 쉬러 오셨는데 할 게 많아요. 전해 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양 수녀가 첫 만남 시간에 한 말처럼 1박 2일 동안 진행된 피정은 꽤 많은 내용으로 채워졌다. 두 번의 강의와 나눔, 몸풀기와 산책, 그리고 개인 작업 등으로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 주일 미사를 아침 6시 50분부터 시작할 정도다.

 

“현재의 나에게 어린 시절의 환경은 무척 중요해요. 내 몸에 지난날이 다 들어있어요. 우리는 지금도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살고 있잖아요. 부모님이 하셨던 것을 지금 내가 답습하고 있다고 봐요. 그게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지요. 피정을 통해 그걸 보게 해 주는 거예요.”

 

양 수녀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늘 외면에만 머무른다고 한다. 현재에 살지 않고 허상에 살며, 나를 보지 않고 남만 본다. 나는 이미 나인데 다른 사람이 되려 한다. 나를 보는 기준이 너나 세상의 기대치가 되면 나는 늘 초라해지고 불행해진다. 세상의 기대치를 맞추려니 부족하다고 느끼며 현재가 힘들어진다.

 

“땅에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노력, 몸을 위해 갖춰야 할 ‘스펙’을 쌓기보다 하늘에 있어야 할 것들을 얻으려는 노력, 마음과 영혼을 위해 갖춰야 할 ‘스펙’을 쌓는 일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말이다.

 

결국 지금 나에게 나타나는 많은 문제는 바로 나 자신에게서 온다. 그러니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지금 여기 나 자신을 보는 것이 해결책이다. 하느님 안에서 나를 보고 세상의 기대치와 다른 사람의 기대치만 내려놓아도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 자기 안에서 논다

 

휴가 피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느님 안에서, 자기 안에서 노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 안에서 사는 신앙인이라는 강의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그렇다. 내 안의 결핍된 것과 채워야 하는데 채우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지금 내가 어떤지 점검하게 한 뒤 나누기를 한다. 자신을 이야기하는 시간과 자신의 아픔을 털어 내는 시간이 꽤 길게 이어진다. 모두 함께 나누기 때문에 피정의 인원은 스무 명 안으로 제한한다.

 

“몸은 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 생각해요. 지금의 나의 몸을 존중해야 해요. 음악에 몸을 맡겨 나를 풀어 보고, 어색하지 않게 내 몸으로 뭐든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몸동작으로 나를 자유롭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칭찬하고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간도 있다.

 

현재의 나를 보고자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자라온 환경과 부모에 대해 살펴보기도 하고, 예수님의 삶 안에서 우리를 보려고 예수님의 일생을 돌아보기도 한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분별을 키우는 작업도 한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다.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라. 이미 나는 내가 되어 있다.’

 

“나의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나와 미래로 나가려는 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을 알고 받아들이면 나를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있다.

 

아무런 주제 없이 수녀원의 숲을 30분 정도 그냥 걷는 산책도 한다. 숲속의 산책으로 마음에 여유가 스며들고, 무심코 걷다 보면 정신도 맑아진다.

 

 

나 자신도 찾고 하느님도 만나는 피정

 

휴가 피정에 참여한 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나를 만났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쉬고 싶은 마음으로 왔어요. 직장과 자녀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이었어요. 직장에서 짊어진 십자가가 너무 크고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피정을 마치며 내 십자가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지난날을 돌아보며 보고 싶지 않은 내 약한 부분, 외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힘든 일이 참 많았는데 하느님께서 옹기장이처럼 그런 시련을 통해 나를 빚어주신 것 같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돼요. 하느님께서 용기를 내서 다시 도전해 보라고 힘을 주시는 것 같아요.”

 

“제목만 보고 무작정 신청했어요.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절망적이었거든요. 이 피정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오늘 이후 다시는 지난날의 상처를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해요. 앞으로는 내 인생을 살 겁니다.”

 

“모태 신앙으로 성당 안에 있는 게 익숙하고 좋아요. 나를 성당에서 살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피정하면서 하느님과의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투병 중이라 힘든 상황인데 하루 휴가를 주자는 기분으로 왔어요.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무념무상으로 숲길을 산책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답답하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혼자 걷고 있다가 시원한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어요. 한층 편해진 내가 된 것 같아요.”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고 시간에 쫓기듯 산다. 늘 사회적 지위, 소명, 상황으로 말미암아 ‘나’를 잊고 산다. 이런 때 사람들은 휴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음식을 양껏 먹고, 걱정을 잠시 멈춘다. 휴가는 그런 것이다.

 

삶이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휴가로 에너지를 재충전하듯 피정도 마찬가지다. 잠시 쉬고, 기도하면서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어갈 수 있다. 그게 나 자신도 찾고 하느님도 만나는 피정, 내면으로의 여정을 떠나는 피정이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를 만나는 휴가 피정’처럼.

 

문의 : 032-348-1910, 010-2111-4431 소사 성분도 은혜의 집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글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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