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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그리스도인의 분노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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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17 ㅣ No.850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그리스도인의 분노 다스리기

 

 

분노와 정신 병리

 

심리학과 정신 의학의 발달로 분노가 신경계의 손상이나 다양한 정신 질환과 연결되어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가 치료해야 할 질환인 줄도 모른 채 이를 숨기거나 단순히 악습이라고 치부하면서 병을 키우기도 한다.

 

한편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악습에 빠진 죄인이라고 단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는 교회의 엄한 단죄나 ‘분노하지 마라.’는 설교만으로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심하고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 신경 계통의 손상에서 오는 분노

 

신경 계통의 손상으로도 개인의 성격이나 감정이 갑작스럽게 변화될 수 있다. 이들에게서는 우울한 기분과 불면증, 식욕 부진, 불안과 비관, 짜증과 분노, 감정 기복 등이 자주 관찰된다. 뇌졸중을 앓는 이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주변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것을 본모습이라고 여기거나 쉽게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환자는 더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심리학자 스튜어트 유도프스키는 신경계통의 손상에서 오는 분노와 일반적인 분노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신경 계통의 손상에서 오는 분노는 좌절이나 타인의 도발로 일어나는 일반적인 분노와 달리 매우 사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 일반적인 분노와 달리 신경계통의 손상에서 오는 분노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점진적으로 분노가 일어나고 비교적 예상할 만한 행동과 분노의 패턴을 지니는 일반적인 분노와 달리 신경 계통의 손상에서 오는 분노는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폭발하며 그 형태 또한 알아차리기 어렵다(「일곱 가지 대죄」[The Seven Dedly Sins], 솔로몬 쉼멜, 참조).

 

■ 분노 조절 장애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가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다. ‘간헐적 폭발 장애’라고도 불리는 이 질환을 앓는 이들은 사소한 실수에도 참지 못하고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일을 못할 정도로 분노의 감정에 쌓여 있으며 자주 다른 이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주어진 자극의 정도를 넘어선 파괴 행동을 보인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일종의 불안장애로 천재지변이나 전쟁, 사고, 성폭력, 화재 등과 같은 위협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반복적으로 그 사건을 회상하거나 꿈을 꾸기도 하며, 마치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나 환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들은 외부 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해져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놀라고, 반대로 매사에 무관심해져 ‘얼음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별히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분노는 그 사건을 일으킨 대상에 대한 억울함에서 오는 보복과 공격 충동이다.

 

맨 처음 있었던 정신적 반응이 굳어져 지속적인 분노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환경과 대상에게서 분노 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이 장애는 오늘날 정신 의학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도와야 하는 질병으로 여겨지고 있다.

 

■ 경계성 인격 장애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처럼 예민하게 분노 버튼이 눌러지고 분노가 말이나 행동으로 빠르게 진전되는 이들은 ‘경계선 인격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이들은 극히 변덕스럽고 극단적이다. ‘나’라는 자아상이 확고하지 못하여 늘 공허하고 불안한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로 말미암아 작은 자극에도 감정 기복이 크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 반사회성 인격 장애

 

오늘날 범죄자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용어인 ‘사이코패스’의 정식 학명은 ‘반사회성 인격 장애’이다. 이들은 타인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침해하며 반복적인 범법 행위나 거짓말, 사기성, 공격성, 무책임함 등을 보인다. 이들은 죄책감을 잘 느끼지 않고 쉽게 흥분하며 신체적인 싸움이나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분노의 치유제

 

■ 자신의 분노 버튼 알기

 

사람들마다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과 예민함의 강도가 다르다. 따라서 자신만의 분노 버튼이 언제, 무엇으로 말미암아 쉽게 눌리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버튼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 상황을 미리 피하기도 하고 피할 수 없다면 준비된 상태로 그 상황을 대면할 수 있다.

 

분노 버튼을 알고 나면 그 분노가 건드려진 최종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때 많은 이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시선을 고정한 채 최종적인 원인을 찾는 것에는 실패한다. 예를 들자면, 남편의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화가 난 아내의 경우 분노를 일으킨 현실의 원인을 넘어 남편에게 존중받고 싶거나 인정받고 싶었던 자신의 욕구도 찾아야 한다.

 

‘욕구’라는 분노의 최종 원인을 찾지 못하면 늘 분노 버튼을 누를 대상만 달라질 뿐이다. 분노를 포함한 모든 감정은 자신의 욕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별히 스콜라 철학에서는 자기주장 욕구와 관련된 감정을 ‘화를 잘 내는 열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분노가 자기주장과 자기 주도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자기주장과 자기 주도성을 잘못 사용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기 쉽다.

 

■ 멈춰! 훈련

 

일단 분노는 멈추는 것이 좋다. 멈추는 행동은 분노가 이성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가 올라올 때 ‘멈춰!’라는 명령은 매우 큰 효과가 있다. 마치 전기 회로에 전류가 세게 흐르는 경우 다른 곳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퓨즈가 자동으로 녹아 끊어지는 원리와 같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분노가 직접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내 안에 ‘퓨즈’를 작동하게 해야 한다. 일시적인 분노의 감정은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크다.

 

■ 자신만의 분출구를 만들라

 

많은 경우 분노의 대상은 분노를 일으킨 사람보다는 다른 이, 특별히 사랑하는 이들과 약자들을 향하며 점차 그들에게도 전염된다. 따라서 자신의 분노가 다른 이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자기만의 분출구를 지녀야 한다.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잠, 수다, 산책 등도 도움이 되고 어떤 일에 몰입해 보는 것도 좋다. 이때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실제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 솔직하게 기도하라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 행복의 큰 조건이 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동료 신자들뿐만 아니라 하느님도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분노를 다스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좋은 말을 되풀이 하는 기도보다는 시편의 저자나 예레미야, 욥처럼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다.

 

■ 온유함을 지녀라

 

교회 전통 안에서 교부들이 분노의 치유제로 강조했던 것은 ‘인내’와 ‘온유’였다. 특별히 에바그리우스 교부와 단테는 분노를 대하는 방법으로 ‘온유함’을 강조했는데, 이는 단순히 자신의 반응을 포기하는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느님께 그 일의 옳고 그름, 처분까지도 맡김으로써 이를 자신의 몫으로 갖지 않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성경에 나오는 스테파노의 모습(사도 7,60 참조)이 온유함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꾸준히 선택되어 덕이 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에 온유함을 지닌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얼마나 많이 분노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것인가? 이를 자책하고 염려하기보다는 오늘도 지속되는 분노의 부정적인 흐름에 작은 제동을 걸어 보자.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용기와 지혜와 은총을 청해 보자.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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