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07-15.....연중 제15주일 나해.....농민주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7-14 ㅣ No.2258

연중 제15주일 (나해)

아모스 7,12-15            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2018. 7. 15.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

뜨거운 여름에,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처럼, 건강하게 지내야 좋든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금을 많이 먹는 일에 경기를 일으킵니다만>, 더운 여름에는 소금을 잘 먹는 방법도 배워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생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전해질의 농도도 맞추고 미네랄을 먹는 방법>은 소금은 좋은 물질입니다. 물론 좋은 소금이어야 하겠지요?

 

올해 장마도 끝났다고 하는 때, 한여름에 맞이하는 오늘 주일을 교회공동체에서는 농민주일로 함께 지내자고 권합니다. 농업의 중요성을 말하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앞세우면서도,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낮추어보는 것이 우리문화라는 게 안타깝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목적으로 산업화를 추진해서 그럴까요? 또 안타까운 것은 집에 대한 문제입니다만, 사람들이 살 아파트를 짓는다고 할 때마다 농토를 깔아뭉개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어디에서 시작된 됐을까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전 국토의 20%안팎이라고 하면서, 농토를 메워서 집을 짓고, 정부기관에서 챙기는 경작지대체개발 부담금은 어느 주머니로 사라지겠습니까?

 

오늘을 농민주일로 지내자고 합니다만, 독서와 복음은 농사와는 관련이 적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은 데서 12명을 사도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며 그들이 실천해야할 일을 말씀하시는 내용이 복음이고, 목축을 하는 사람이었다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아모스예언자를 베텔의 사제인 아마츠야가 거부하는 내용이 첫째독서의 말씀입니다.

 

땅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습니다. 땅이 실제로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논밭에 심어진 작물이 농부의 발걸음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이런 표현을 쓰는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실제로 땅이 거짓말을 하는지, 혹은 하지 않는지 안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의도일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까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짓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거짓말로 실제로 피해를 당했거나 손해를 본 사람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진리라고 쉽게 알아도,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래저래 알아듣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진실하게 산다고 해서 늘 이익을 얻는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익과 손해의 차원을 생각하기 전에, 사람의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행동도 일어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복음이 전하는 짤막한 말씀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삶의 방향을 정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정의를 선포한 아모스예언자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던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는 아모스예언자의 선포를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로 그 품위를 떨어뜨립니다. 아모스예언자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북쪽의 왕국으로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닌데도, 아마츠야는 자기 마음대로 규정하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먹고사는 일은 사람에게 중요합니다만, 그것만이 사람이 생각해야 할 문제의 전부는 아닙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순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내가 먼저 듣고 다음에 하는 행동에 따라서 삶의 결과는 나에게 다르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결과가 한번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것을 나 몰라라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내가 고민하거나 대신 걱정해주는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 내가 걱정한다고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곡식이 되는 작물을 키워서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게 하듯이,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의 결과가 나의 삶에는 이익이 되고, 하느님께는 찬미와 영광을 바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라고 청할 시간입니다.

 

 



2,24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