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7: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5 ㅣ No.1220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많은 현대인이 인간관계 맺기를 갈수록 어려워합니다. 다가가고 싶지만 상처 받기 싫고, 또 상처 주는 것도 싫어서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떼를 한 우리에 넣었습니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자 부들부들 떨던 고슴도치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여든 고슴도치들이 자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려고 저마다 가시를 세우다 보니, 서로를 찌르며 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가시에 찔린 고슴도치들은 아파서 다시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추위 때문에 또다시 서로에게 다가서고, 가시를 세우고…. 날이 밝아왔습니다. 우리를 열어 보니 고슴도치 중 절반은 얼어 죽었고, 절반은 피를 흘리고 죽어 있었습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섰지만, 상처만 생기고 그래서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쇼펜하우어는 이를 고슴도치가 보여준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는 상태로 설명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의 찬가’(1코린 13,1-13)에서 사랑의 특성 중 하나로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와의 관계 안에서 그에게 이용당했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모욕과 멸시를 받았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사랑이, 상처 받은 자존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타인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를 막아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사랑의 능력이 우리 안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일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여러 심리학자가 말합니다. 앞서 ‘고슴도치의 딜레마’처럼 적절하게 거리를 두어야 상대방이 분출하는 공격성, 즉 가시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다가가면,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타인의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기 기준에서만 모든 것을 판단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듯 집착하는 사랑의 모습은 언젠가는 식게 됩니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오히려 상처 받고 미움과 분노를 느낄 때, 무턱대고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이 미움과 분노는 상대방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라는 신호이고, 우리가 사랑을 오래오래 지켜나가도록 방법을 일러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그 분노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주로 ‘거부된 사랑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도 사랑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사랑하다가 상처를 받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요. 우리는 여기서 분노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과정을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화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분노는 우리 감정의 영역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화를 내버려두어 우리의 태도에 스며들게 놓아두면 분명 죄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노가 우리를 지배하게 내버려 두는 것,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 아래 숨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 상대방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수 있다고 했던 내 마음은 어떻게 된 걸까?’ 이렇게 분노 너머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진정한 사랑을 떠올리면서, 결코 분노가 우리를 집어삼키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사랑의 모습은 앞선 이야기에서 고슴도치가 자신의 가시를 뽑는 희생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이 아파지더라도 사랑하는 이에게 온기를 전해 주고, 또 그 온기를 함께 나누려고 자신의 가시를 뽑는 행위, 그것은 상처 받아도 그 상처 너머에 있는 본연의 사랑을 실현하는 모습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가정 안에서 미움과 오해, 때로는 상처와 분노를 남긴 채 하루를 마무리하지 말도록 간곡하게 부탁하셨습니다. 가정에서 누가 누구에게 잘못했는지 가려내어 무릎 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에 바탕을 둔 가정은 결코 이기고 지는 관계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작은 사랑과 용서의 표현, 따뜻한 눈빛과 말없이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행동, 그리고 생명을 주는 따뜻한 말만으로 충분하다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화내지 말고 끊임없이 그를 축복해 주십시오. 그 안에서 사랑은 더욱 큰 모습으로 성장하고 친교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7 · 8월호, 사목국 연구실]



1,63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