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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7: 주님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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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7 ㅣ No.503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7) 주님 성탄


열두 천사 경배하고 목동과 양떼에 둘러싸여 아기 예수 탄생

 

 

- 지오토가 그린 시리아풍의 주님 성탄 프레스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 성당에 있다.

 

 

이탈리아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는 ‘주님 성탄’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 두 점이 있습니다. 한 점은 로마의 장인들(Maestri Romani e di Cantiere)이 1288~1290년께 그린 작품으로 맨 위층 성당에 있습니다. 다른 작품 한 점은 보테가 디 지오토(Bottega di Giotto)가 1313년에 그린 것으로 그 아래층 성당에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주님 성탄을 주제로 한 성미술의 전형적인 구도를 보여 주고 있지만, 작품 속에 담긴 신학과 교의적 의미는 대비를 이룹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이 두 작품을 중심으로 주님 성탄을 주제로 한 성미술 도상(圖像)의 숨겨진 상징을 알아보겠습니다. 또 주님 성탄 작품에 늘 등장하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에 관해서도 소개합니다.

 

 

주님 성탄을 주제로 한 성미술 작품은 4세기부터 등장합니다. 이 시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의 부활을 희망하면서 무덤과 석관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제별로 새겼습니다. 그중 로마 라테란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님 성탄과 동방 박사들의 경배 석관 부조가 현존하는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 성탄과 동방 박사들의 경배는 이 시기부터 일반적으로 한 프레임 안에 그려지거나 조각되는데 그리스도의 강생(降生,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과 구원에 대해 이보다 더 강렬하고 확고한 표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절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도상의 목적은 오로지 주님 성탄의 실제와 현존성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모자이크는 430년께 제작된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의 주님 성탄이 가장 오래된 작품입니다. 

 

주님 성탄 도상은 일반적으로 좌우 대칭인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그려집니다. 동굴에는 출산으로 누워 있는 성모 마리아와 구유 속의 아기 예수, 소와 당나귀가 있습니다. 그 둘레에 천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언덕 아래쪽에 대칭을 이루고 있는 좌우 두 장소 중 한쪽에 요셉이 앉아 있습니다. 요셉 가까이에는 두 명의 산파가 갓 출산한 아기 예수님의 몸을 닦고 있습니다. 언덕 가장자리에는 목동과 양 떼가 자리하고 있고,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또 하늘에는 큰 별과 신령한 빛줄기가 아기 예수님을 비추고 있습니다.

 

로마 장인들이 그린 그리스풍의 주님 성탄 프레스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위 성당에 있다.

 

 

주님 성탄 도상은 성모 마리아 자세에 따라 그리스풍과 시리아풍으로 구분됩니다. 그리스풍 도상에서 성모님은 산고에 시달린 기색이 전혀 없이 평온하고 초연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로마 제국의 귀부인처럼 머리쓰개에 귀걸이를 하고 튜닉(tunic, 통자의 헐렁한 옷) 차림에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성모님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동정녀이신 분이 성령으로 주님을 잉태하여 여느 여인들과는 달리 출산의 고통을 모른 채 아기를 낳았다는 기적 같은 장면을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달리 시리아풍 도상에는 성모 마리아께서 산고에 지쳐 누워 있거나, 아기 예수님을 안고 기뻐하거나, 아기 예수님께 젖을 먹이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모성애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 두 도상은 12세기 유럽의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조각과 성화에서 완전히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고 서로 섞여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다 이후 그리스풍은 교회 안에서 거의 사라집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주님 성탄 프레스코 가운데 로마 장인들의 작품이 그리스풍이고, 지오토의 작품이 시리아풍입니다. 

 

시리아풍 도상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 장면은 두 산파가 아기 예수의 몸을 닦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8세기 이후 꾸준히 등장하는데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가 아닌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에 나오는 주님 성탄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야고보 원복음」에는 출산을 돕는 히브리인 두 산파가 등장하는데 그중 한 명은 살로메였습니다. 살로메는 ‘평화’를 뜻합니다.

 

중세 필사본 오트 하인리히 소성경 루카 복음서에 있는 주님 성탄 도상.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천사와 목동들과 함께 아기 예수를 경배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전통 도상에서 벗어나 사실적이다.

 

 

주님 성탄 도상에서 아기 예수님은 눈을 뜬 채 흰 포대기에 싸여 있습니다. 소와 당나귀가 주위에서 입김으로 주님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천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12라는 숫자는 우주 질서의 가장 완전한 조화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부족도, 구약의 예언자도, 예수님의 사도들도 모두 열둘이었습니다.

 

주님 성탄 도상의 좌우 한쪽에 성 요셉이 자리합니다. 그리스풍에는 성 요셉이 아기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등을 지고 있습니다. 시리아풍에서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방금 태어난 아기 예수의 아버지가 성 요셉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합니다. 아기 예수의 아버지는 그분을 거룩한 빛으로 감싸고 있는 하늘에 계신 천주 성부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별과 빛줄기는 하느님의 현존과 축복을 상징합니다. 이 도상은 로마 황제의 초상 위에 그를 보호하는 별을 그려 놓은 데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아울러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들레헴의 별을 나타냅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베들레헴의 별은 구원의 등불이었습니다.

 

지오토가 그린 동방 박사들의 경배,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 성당에 있다.

 

 

주님 성탄 도상은 아기 예수의 탄생 목격자로 천사뿐 아니라 목동들(루카 2,8-20)과 동방의 박사들(마태 2,1-6)을 등장시킵니다. 3~4세기 주님 성탄 도상에서 동방 박사의 수는 2명, 3명, 4명 때로는 6명까지 보여줍니다. 그러다 6세기에 와서 3명으로 고정됩니다.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시편 72,10-11)라는 시편의 노래가 동방 박사들의 예형”이라고 한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에 따라 초기부터 동방 박사들은 왕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10세기 이전까지는 왕으로도 표현되고 터번 모양의 헝겊 모자를 쓰고 풍성한 바지 차림의 소아시아 사람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러다 12세기 이후부터는 왕관을 쓰고 로마 제국의 귀족 복장을 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6세기 이후부터 동방 박사들은 청년, 장년,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13세기에 「황금 전설」을 쓴 야코포 다 바라제는 세 명의 동방 박사가 가스팔과 발타사르, 멜키올이라고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당시 신학자들은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 야펫이 동방 박사의 예형이며 인류의 세 인종을 상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백발의 긴 머리와 수염이 풍성한 멜키올은 아기 예수에게 만왕의 왕이심을 상징하는 황금을, 수염이 없고 뽀얀 피부를 가진 청년 가스팔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표현한 유황을, 검은 피부의 중년인 발타사르는 하느님 아드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몰약을 바칩니다. 발타사르는 15세기가 되어서야 검은 피부의 인물로 등장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25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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