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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선한 종말을 준비하다: 연도의 유래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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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16 ㅣ No.938

[하늘 길 보내는 노래 연도] 선한 종말을 준비하다 - 연도의 유래와 의미

 

 

연도(煉禱)는 연옥도문(煉獄禱文)의 줄임말로 “연옥영혼을 위하여 바치는 기도”라는 뜻의 한자어이며, 현재는 “위령기도(慰靈祈禱)”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작자 미상의 구전민요의 유래를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인 “아리랑”도 지역마다 다르고 다른 가사와 다른 곡이 전해지는데, 그 어원과 유래를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한(恨) 맺힌 사연으로 ‘가슴앓이랑’(‘아리랑’ 어원의 가장 일반적인 견해) 함께 전해진 그 곡조를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연도는 천주교의 장례예식에 쓰이는 기도가 우리 고유의 가락과 자연스럽게 만나 형성된 ‘토착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 기도문의 유래는 옛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의 초기 형태가 완성된 1838년경부터로 보고 있다. 이 연도 문제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도 장례예식을 다루는 특수분야이므로 이 글에서 명확하게 그 유래를 밝힐 수는 없고, 다만 연구자들의 주요 견해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정리하는 데 충실하고자 한다.

 

성경에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구약의 마카베오기이다.

 

“고결한 유다는 백성에게, 전사자들의 죄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죄를 멀리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런 다음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을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2마카 12,42-44)

 

위의 대목은 구약의 마카베오 시대에 전사한 군인들의 속죄와 부활을 위해 기도했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도시대 이후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문을 1614년 간행된 <로마 예식서>에 모아 정리했고, 중국에서는 『성교예규(聖敎禮規)』로, 우리나라에서는 한글본 『천주성교예규』로 편집되었다.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나라는 유교식 혹은 불교식 장례예식을 따르고 있었다. 예수회의 초기 중국 전교에서는 이른바 ‘문화적응주의’ 혹은 ‘보유론적(補儒論的)’ 입장의 선교 원칙에 따라 유교식 의례와 제사를 허용했다. 중국에서 천주교 상장례가 소개되었을 때 서양과 동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서양의 장례 주례자는 사제인 반면 동양에서는 그 가족의 장손長孫이 상주喪主가 된다. 둘째, 서양에서는 그 무덤이 성당의 지하묘지나 혹은 동네 가족 묘원으로 가까이 있었는데, 동양에서는 성문 밖에 묘를 쓰기에 묘까지 이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정확히 조선왕조에도 적용되어, 성문 밖으로 나가는 긴 장례행렬이 생겨났다. 결국 사제 없는 상장예식과 긴 장례행렬 동안에 바칠 반복기도가 필요했다.

 

중국의례에 대한 긴 논쟁이 끝나고 조상과 공자묘에 대한 의례금지 조처가 결정되었고, 그 후 예수회가 해산되면서 보유론적 전교방식은 어려움을 겪었다. 북경천주교회에 구베아 주교가 부임하며 내린 조상제사 금지령은 조선 천주교에까지 전해졌다. 구베아 주교는 1790년 윤유일(바오로)을 통해서 신주神主를 모시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 이듬해에 신주를 훼손한 윤지충, 권상연이 사형을 당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이 있다. 천주교에서 신주 곧 위패(位牌)를 금지했다고 해서 장례예식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주교 장례예식은 중국의 『성교예규』라는 예식서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고, 후에 『천주성교예규』라는 한글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박해시기에도 천주교 장례예식은 외교인 백성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정도였다. 아래 내용은 천주교 장례예식과 연도를 연구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대목이다.

 

“조선말로 된 장례식 기도문과 예절을 공포한 뒤로 많은 신자가 외교인을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공공연히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조선에서 대낮에 십자가를 앞세우고 참석자는 각기 촛불을 들고 성영(聖詠)을 큰 소리로 외면서 동네 길을 지나가는 장례행렬을 펼친다는 것을 상상하시겠습니까? 어떤 곳에서는 이 때문에 시비가 나고 싸움이 벌어지고 했지만, …다른 곳 몇 군데에서는 외교인들이 일치해서 우리 예절이 매우 점잖고 아주 아름답다고 인정했고, 이 광경을 보고 개종한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한국천주교회사』 下,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1863년경 쓰였다고 추정되는 다블뤼 주교의 서한에 나타나는 위의 내용을 통해 병인박해 이전에 시편을 노래하는 연도가 형성되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연도의 기도문이 1838년경 완성되었다고 이미 언급하였듯 앵베르 주교는 1838년 보고서에서 기존의 한문식 발음으로만 바치던 기도를 한글로 번역하여 공동기도문으로 완성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저의 두 번째 걱정거리는 매일 기도와 주일 미사경문의 조선말 번역입니다. …한문으로 된 기도문을 그 뜻까지 번역하지는 않고 뜻은 전혀 모르는 채 발음만 조선식으로 바쳤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조선말을 배우자마자 네 명의 통역을 데리고 공동기도문들을 번역하여 지금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유식하든 무식하든 모든 신자들이 열심히 배우고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 앵베르 주교가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1838. 12.1)에서 -

 

※ 물론 여기서 “연도”에 해당하는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문까지 다 번역되어 있었는지는 확정짓기 어렵다.

 

『가톨릭기도서』가 나오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기도서로 사용되던 책인 『천주성교공과』. 지금 연도의 뼈대를 이루는 내용이 4권 ‘련옥도문’에 담겨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본(1864년)인 『천주성교공과』 4권 말미에는 ‘련옥도문’이 전해진다. 이 기도문은 ‘교우가 죽거나 장사할 때 혹은 추사이망追思已亡 즉 위령의 날에 바치도록’ 지침을 주고 있다.

 

기도의 내용은  

① 연옥 영혼에게 구원을 간구하는 자비송  

② 호칭기도(성인 호칭기도+연령을 구하도록 청하는 호칭기도) 

③ 저축문(貯祝文, 기도문 모음으로 돌아가신 대상에 따라 기도를 바치도록 함)  

④ 선종한 이를 위한 찬미경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연령을 위한 기도문은 다시 1865년 『천주성교예규』 1, 2권 목판본으로 그 예식과 기도문이 확정되어 나타났다. ‘상장예절’에서 확정된 기도문은 이전의 ‘련옥도문’ 앞에 시편 129, 50편을 먼저 외우고, ‘찬미경’까지 똑같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바치는 연도의 형태 그대로 발전되었다.

 

1868년 프랑스 선교지 『가톨릭선교』에 소개됐던 교우촌 미사의 한 장면.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은 이전에 “‘련령을’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용어에서 “‘망쟈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그 용어만 바뀌었다. 이 『천주성교예규』는 2003년 『상장예식』이 개정되어 나오기 전까지 약간의 용어만 조금씩 바뀌면서 계속해서 천주교 상장례의 기도서와 예식서 역할을 했다. 또한 연도의 내용은 현재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방마다 달랐던 가락을 악보로 고정시키면서 전국적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도”의 가락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오랫동안 현장에서 옛 가락을 채록한 이들은 ‘상여소리’ 가락에서 유래한다고 추정하기도 하고, 옛날 가사를 읽듯이 옛 기도문을 읽는 가락이 발전하면서 만들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시편 129편에서 시작하는 이 연도 기도문과 가락은 병인박해 이전에 분명하게 확정되어, 문상 혹은 무덤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상장예식에서 가장 중요한 위로의 기도와 가락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도 내용 역시 참회와 통회, 죄의 용서와 부활이 초점이다.

 

예부터 천주교에서는 ‘선종(善終)’이라는 말을 썼다. 죽은 이들을 위해 그토록 정성껏 기도할 줄 알았던 선배 신앙인들은 살아서 선한 공로를 만들고, 죽을 때도 선하게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조한건 - 서울교구 소속 사제로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월간 생활성서, 2017년 11월호, 조한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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