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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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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08 ㅣ No.1035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편집

 

 

마지막 졸업작품 편집때 연출선생님과 편집선생님의 의견이 너무 달랐다. 편집한 작품을 들고 각 선생님들께 지도를 받을 때마다 난감했다. 전체가 모여 편집을 하고 중간점검을 하는 시간에는 내 작품을 두고 두 사람의 의견이 대립되어 썰렁한 분위기마저 형성되었다. 덕분에 난 24개의 편집본을 만들어야 했다.

 

결국 최종 졸업작품 상영 결정심사때 두 가지 버전을 만들어 제출하면서 두 분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두 선생님 다 웃으면서 이번엔 감독판으로 상영하기로 합의했지만 편집선생님은 반드시 다시 새로운 편집버전을 만들기를 권유했다. 아직까지도 그 권유를 지키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 혹은 ‘감독판’ 영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미 개봉된 영화인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똑같은 영화가 ‘디렉터스 컷’이라고 하면서 다시 상영된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영화에 있어 편집(Editing)의 비중은 매우 크다. 사람들은 감독이 원하는 대로 편집자(Editor)가 자르고 붙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편집자는 완전히 독립된 전문영역이다. 감독이 함부로 자신의 의견대로 끌고 갈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준익 감독의 ‘사도’(2014)의 경우 오프닝은 전혀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다. 한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이준익 감독은 ‘이래서 역시 영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꼈다면서 본인의 작품을 더욱 승화시킨 편집의 예술을 극찬했다. 하지만 모든 감독들이 자기 작품의 편집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무게를 둔다면 편집자는 그 이야기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에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 감독들이 아무리 힘들게 촬영한 장면이라 하더라도 편집자는 냉정하게 잘라버린다. 그래서 감독판 영화들은 늘 길다. 이처럼 편집은 또 다른 창조의 영역이며 편집에 따라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말이 활자화되었을 때 객관성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음성화되었을 때는 더욱 그러하고 더구나 영상화되면 아예 도그마(Dogma, 절대진리)라고 믿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또한 그러하다. 영화를 공부할 때 수업시간에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우리 반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판을 쏟아냈다. 총기 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에는 동의하지만 취재를 위해서는 어떤 행위도 가능하다는 식의 그의 태도는 오히려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감독에 의한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또한 감독이 있다. 드라마가 허구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위해 수많은 취재과정을 거친다. 다큐멘터리와 다른 것은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설정을 통해 탄생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설정의 과정이 아닌 실제 모습을 촬영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도 엄연히 그것을 제작하는 감독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편집이라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을 거친다. 촬영방식과 편집에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허구의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드라마는 가짜이고 다큐멘터리는 진짜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을 사람들은 그야말로 절대진리처럼 받아들인다. 같은 사건임에도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절대진리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만든 존재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버린다. 그래서 때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언론사는 부패한 집단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부패한 집단이 되는 경우가 있다. 천인공노할 사람처럼 만들면 시청률이 상승하는 것은 제작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편집을 통해 출연자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비판을 받았던 ‘악마의 편집’ 논란을 단순히 제작자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좀 더 차분히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보다는 우리들 안에 있는 부조리와 한계에 대한 분노를 누군가를 통해 해소하고 싶어 하는 성숙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드라마도 다큐멘터리도 감독의 이야기이며 편집이라는 재창조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 미디어 상품일 뿐이다. 감독이나 편집자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 또한 우리처럼 자신만의 시각과 철학을 영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전달할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의 도그마(진리)에 대해서는 의심하거나 혹은 관심조차 없으면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도그마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월간빛, 2017년 10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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