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민 신부의 교리산책] 십자성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루에 몇 번이나 이렇게 성삼의 이름을 부르며 십자성호를 그으세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전례나 기도의 시작과 끝뿐만 아니라 하루 일과나 각종 모임의 시작과 끝에 자주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아, 식사 전후에도 꼭 긋지요. ‘잘 먹겠습니다’ 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말이죠. 이렇게 일상의 여러 순간에 십자성호를 긋는 까닭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그것이 비록 작고 하찮은 일일지라도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고 보면 십자성호는 비록 간단한 동작이지만 꽤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고대 중동 지방의 사형 도구였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신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이미 초세기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 표시를 전례나 사적인 기도 등에서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마와 가슴, 어깨에 긋는 전형적인 십자성호는 5세기경부터 나타났지만, 이것이 전례나 개인기도 등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경부터라고 합니다. 특히 이 동작은 중세 초기에 성삼 기도문과 합쳐지면서 더욱 일반화되었지요. 이마와 가슴, 양 어깨에 십자성호를 긋는 이유는 이들 부위가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마와 입술 및 가슴에 십자 표시를 하는 것을 ‘작은 십자성호’라 합니다. 작은 십자성호 역시 중세기 이전부터 애용되었지만 전례 안에 들어온 것은 12세기 이후부터입니다. 현재는 미사의 말씀 전례 중 복음 봉독 직전에 이 작은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설이 있으나, 대체로 ‘복음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입으로 선포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표를 그리는 행위는 4~5세기부터 안수의 의미로 하기 시작했는데 축성, 축복, 사죄, 구마 등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십자 표시는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짤막하고 명료한 신앙 행위가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십자 표시를 통해 인간에게 빛과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2017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일 서울주보 4면, 유환민 마르첼리노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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