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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족 여정: 경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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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0 ㅣ No.1011

[가족 여정] 경멸의 힘

 

 

비난과 경멸 사이

 

‘비난’(criticism)과 ‘경멸’(contempt)은 가족 관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언어 표현입니다. 비난은 주로 가족의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공격하는 표현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생각이 있는 거야?”

“당신은 허구한 날 텔레비전만 보고 가족은 신경도 안 써!”

“너 내가 숙제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너는 항상 나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해야 직성이 풀리니?”

 

그 반면, 경멸은 가족의 존재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며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당신은 정말 답이 없는 사람이야!”

“꼴에 자존심은 있나 보지?”

“한심하다, 한심해!”

“너는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

 

그렇다면 비난과 경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요? 정답은 경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조금 더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어마어마하게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비난의 경우 가족의 행동 수정이 이뤄지면 그 수위가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하지만 경멸은 가족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퍼부어 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경멸은 단순히 가족 관계만 파괴하는 정도가 아니라, 경멸을 듣는 사람의 신체적인 건강까지 위협합니다.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경멸의 표현을 듣게 되면 신체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지며, 온갖 질병에 걸릴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특히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경멸을 끊임없이 내뱉어 대면, 아이의 자존감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도 매우 커집니다.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혀는 생명의 나무지만, 사악한 혀는 정신을 파탄시킨다”(잠언 15,4).

 

‘경멸’(輕蔑)의 사전적 정의는 ‘깔보아 업신여김’입니다. 이 경멸의 표현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건 ‘육두문자’, 곧 욕설을 통한 경멸입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집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준비한 뒤, 거기에 입을 대고 10분 동안 큰 소리로 온갖 욕설을 토해 냅니다. 그리고 모기를 한 마리 잡아서 비닐봉지 안에 산 채로 집어넣으면, 모기가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덤으로 하나 더 알려 드리자면, 비닐봉지 안에 고인 욕설로 말미암은 침을 주사기로 빨아들인 뒤 실험용 생쥐의 동맥에 주사하면, 마찬가지로 생쥐가 죽어 버립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경멸을 토해 낼 때, 체내에 강력한 독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곧, 경멸 섞인 욕설을 할 때 튀는 침은 그냥 침이 아니라 ‘독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침을 맞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가족입니다. 배우자가 독침에 두들겨 맞고, 자녀가 독침에 쏘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 자신의 건강까지 파괴합니다. 실제로 별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자주 아픈 사람들 가운데는 평소에 욕을 입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언어 습관을 교정하면 건강까지 덩달아 좋아집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경멸의 또 다른 위험성 가운데 하나는, 가족에게 은연중에 농담으로 툭툭 던지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는 개구리에게 돌멩이를 장난으로 집어 던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던지는 사람은 장난일지 모르지만, 개구리 처지에서는 목숨이 달린 상황입니다.

 

농담으로 던지는 경멸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크게 긍정성과 부정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긍정성이 높을수록 마음이 건강하고, 부정성이 높을수록 여러 요인에 쉽게 상처받습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농담으로 던지는 경멸을 단순히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마음이 부정성으로 꽉 찬 사람에게는 농담이 비수로 돌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경멸은 농담으로라도 던지면 안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여러 개그 프로그램은 경멸로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너는 왜 그따위로 생겨 먹었냐?”

“이 돼지는 또 뭐야!”

“너는 근본이 틀려먹었어!”

 

한마디로 경멸의 학습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외모를 비하하여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장면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걱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경멸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 곧 패러다임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나 자신이 평소에 가족의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보려 하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측면을 먼저 보려 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가족의 장점을 적어 보라고 하면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겨우 몇 개를 나열하는 데 그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족의 단점을 적어 보라고 하면 마치 속사포 랩(rap)을 하듯 마구 쏟아 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100% 장점만 지닌 사람도 없지만, 100% 단점만 지닌 사람도 없습니다. 가족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해야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경멸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사람들은 부정적인 측면에 한층 관심이 많고 더 큰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심리 현상을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라고 합니다.

 

얼마 전 치러진 19대 대선이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후보 간의 부정적 공세가 활발했던 이유도 바로 이 부정성 효과를 무시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효과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경멸’입니다.

 

선거는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진다는 ‘승자 독식’에 비유되곤 합니다. 하지만 가족 관계는 선거 판과 다릅니다. 승자와 패자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갈라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가족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족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서로 주고받은 경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소개합니다.

 

예쁜 편지지를 구입한 뒤 거기에 ‘가족의 장점 50가지’를 적습니다. 배우자와 자녀의 장점 50가지를 각각 적어서 직접 눈을 보며 읽어 주십시오. 그런 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습니다. 이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검증된 효과적인 기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50개의 장점을 적는 동안 가족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긍정적인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마음속의 근심은 사람을 짓누르지만, 좋은 말 한마디가 그를 기쁘게 한다”(잠언 12,25). 경멸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결국 ‘좋은 말 한마디’입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참 흔하면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좋은 말 한마디’인 것 같습니다.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 여정’, ‘부부 여정’ 등의 가족 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6월호, 권혁주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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