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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어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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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392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어른의 조건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숨바꼭질의 핵심은 잘 숨는 것이다. 술래가 이런 곳에 숨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숨바꼭질의 기본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감추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다섯 살 전후의 아동들의 숨바꼭질에는 이런 기본이 빠져 있다. 거실 창문의 커튼 뒤에서 조용히 차렷 자세로 숨죽인 채 숨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커튼의 길이가 무릎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아리와 발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커튼 뒤에 꼼짝 않고 숨어 있다. 그러다 술래가 자신을 찾아내면 깜짝 놀란다. 이렇게 완벽하게 숨었는데, 어떻게 찾아냈지?

 

아동들은 숨바꼭질을 할 때 자기 눈만 가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튼 뒤에 있어서 자신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술래도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 눈을 가리려고 노력한다. 다리는 방바닥에 다 나와 있어도, 머리만은 침대 밑에 숨기려고 한다. 욕실에 걸린 큰 수건 뒤에 숨고 싶은데, 키가 작아서 수건에 미치지 못하면, 까치발을 해서라도 수건 뒤에 자기 눈은 꼭 가리려고 한다. 나이가 비슷하면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커튼 뒤에 같이 숨어 있는 두 명의 꼬마는 모두 술래가 자신들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 사고

 

어른과 아이는 다르다. 어른은 나와 타인이 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볼 수도 있고, 내가 본 것을 상대방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내게 소중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고, 상대방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동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안 보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이 본 것은 다른 사람도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관점과 다른 사람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지 못하는 아동들의 사고방식을 자아 중심적 사고라고 한다. 이러한 사고 경향 때문에 아동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고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다섯 살 전후의 아동들에게 이른바 명품이라고 하는 고가의 가방과 ‘뽀로로’가 그려진 가방 중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을 고르라고 하면, 아동들은 뽀로로 가방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아동들이 엄마도 자기와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이라는 것이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엄마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엄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뽀로로 가방을 고르는 것이다.

 

 

어른의 생각

 

아동들은 대략 여덟 살 전후로 타인의 관점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진 또래와의 상호 작용을 경험한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친구는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친구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뽀로로 가방보다는 뽀로로가 없는 가방을 더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만화 영화가 재미있는데, 아빠는 뉴스를 더 재미있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과 소통하려면 상대방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왜 상대방은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을 좋다고 하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남으로써 아이는 이제 어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이제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동물에게 필수적인 능력은 바로 다른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야 다른 구성원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아이가 이제 다른 구성원과 독립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존재, 곧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권력의 맛

 

초등학생 때 이미 획득한 타인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다양한 요인으로 말미암아 손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권력의 맛이다. 권력은 자아중심적으로 세상을 조망하도록 만든다.

 

한 연구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이마에 알파벳 ‘E’를 쓰도록 지시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려면 ‘E’를 뒤집어서 써야 한다. 곧, 앞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E’를 써야 하는 과제였다.

 

그 결과, 이전 과제에서 자신의 권력이 높아진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이, 권력이 낮아진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보다 ‘E’를 뒤집어서 쓰는 과제에서 더 많은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의 맛이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 결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목표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관계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상사, 형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권력을 가진 상대방(부하, 동생 등)의 감정이나 태도를 틀리게 판단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 권력의 맛은 약자의 목표와 욕구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들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이 권력을 잡고 난 뒤에 사람들의 아픔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권력의 맛은 어른을 다시 자아 중심적 사고에 가둔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판단과 의사 결정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카리스마, 추진력, 선명성, 그리고 단호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원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설득하는 것은,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뽀로로 가방이 더 좋다고 설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동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위험하지 않다. 아동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성인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폭력이 되기 쉽다. 특히,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지도자의 결정에 삶이 크게 영향받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폭력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동이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신과는 다른 조망으로 세상을 보는 친구들 덕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다고 말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생각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 것이다. 어른이 되려면 나와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 줄 친구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권력이 자아 중심적 사고에 빠지지 않으려면 권력과는 다른 생각이 존재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자아 중심적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권력을 돕는 것이다. 권력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비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존재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지만, 나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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