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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 (4) 성모 기사회 회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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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943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 (4) 성모 기사회 회칙


작은 종이에 담긴 성모 기사회의 이상

 

 

- 콜베 신부가 폴란드에 세운 성모의 마을(니에포칼라누프)의 기도 시간.

 

 

젊은 콜베 수사가 ‘성모 기사회’를 창설할 당시 작성한 회칙은, 체계를 갖춘 규정이라기보다 메모처럼 짧고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기사회의 운영과 유지를 위해 길고 세세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성모 기사회는 인간이 아닌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운영되는 조직이어야만 했기에, 오로지 성모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규정이나 계획이 필요하지 않았다. 형제들을 위한 복잡하고 자세한 규정이 오히려 성령의 생생한 활동과 이끄심을 저해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콜베 수사 역시 성모 기사회가 제도의 틀에 갇히지 않고 성모님 안에서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원했다.

 

 

단 세 조항뿐인 회칙

 

콜베 수사가 최초로 제시한 회칙은 작은 메모지 위에 자필로 기록되었으며, 성모 기사회의 공동 창설자인 퀴리코 피냘베리 신부에 의해 보관되었다가 훗날 공개되었다. 메모에 따르면 회칙은 성모 기사회의 ‘목적’과 ‘자격’ 그리고 ‘사도적 방법’ 단 세 조항과 세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짧고 단순한 회칙이지만 이 안에는 창설자인 콜베 수사를 비롯한 여섯 동료의 이상과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성모님께 봉헌된 신심단체는 성모 기사회뿐만이 아니다. 숱한 성모 신심단체 가운데 성모 기사회가 지니는 고유한 성격은, 회칙의 ‘목적’과 ‘사도적 방법’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콜베 신부가 작성한 최초의 성모 기사회 회칙.

 

 

먼저 콜베 수사는 성모 기사회의 목적을 “모든 사람, 즉 죄인들, 비가톨릭 신자, 또는 비신자, 특히 반교회 비밀결사단원들의 회개를 위해 일하며,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보호와 중재 아래 모든 이가 성인이 되도록 일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기사회는 단순히 개인 신심의 심화를 위한 조직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세상의 회개와 성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지닌다. 따라서 모든 회원은 온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지녀야 하며, 시대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회원의 활동 영역은 ‘개인’과 ‘이웃’을 넘어서 ‘온 세상’으로 확장된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성화를 이루며 온 세상에 성모님의 나라가 건설될 때까지 기사회원들은 앞장서서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콜베 수사는 모든 회원의 ‘사도적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각자 자신의 주어진 조건과 환경 안에서 각자의 방법에 따라, 모든 사람의 회개와 성화를 위해 모든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하되, 각자의 열의와 분별력에 맞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는 사도적 방법을 자세히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미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모든 것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이 바로 회원들이 수행하여야 할 사도직이라고 말한다. 내 시간의 일부분, 내 생활의 일정 영역을 할애해서 특별하고 예외적인 활동을 통해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들기까지 겪는 모든 시간, 모든 활동을 온전히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이 기사회원의 사도직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의무와 고통”이 내가 바쳐야 할 봉헌물이고, 이를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 안에서 각자의 방법에 따라, 모든 사람의 회개와 성화를 위해 모든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하되, 각자의 열의와 분별력에 맞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성화와 봉헌의 방법은 개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실천하면 된다. - 특별히 권장하는 예외적 방법으로는 ‘기적의 메달 보급’과 ‘좋은 모범과 말’ 그리고 ‘출판물을 통한 사도직’ 정도가 있으나, 이 또한 개인의 삶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콜베 수사는 성모 기사회가 법적이고 조직적이며 강제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으로는 상대해야 하는 적들만큼은 강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들보다 더 강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 선하심 통해 자신을 내어주다

 

그는 1917년 2월 17일, 로마 시내를 가로질러 행진하는 ‘프리메이슨’을 보면서 인간의 힘이 조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단체의 형태를 목격한다. 그렇게 강력하게 조직된 악의 세력과 맞서려면 ‘성모 기사회’는 그 이상의 강한 힘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콜베 수사는 진정으로 강력한 조직은 힘 있는 지도자나 엄격한 통제, 강력한 규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강한 조직은 그런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성화를 이루었을 때에 얻어진다. 그렇기에 먼저 각자의 내적 삶이 성화되는 것이 급선무다. 내적 삶의 성화란 곧 자신이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충만해짐을 의미하며,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성모님께 제한 없이 봉헌할 때에만 얻어지는 충만함이다. 

 

따라서 모든 회원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에 앞서서 ‘어떻게 나의 삶을 완전히 성모님께 봉헌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폐쇄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의 자세가 아니며, 내적 생활의 우선성과 우월성, 기도와 영적인 성숙을 향한 봉헌의 삶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올바른 첫걸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여러분 자신에게 바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은 자신의 충만함을 통해,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게 됩니다.” 개인의 삶이 성화를 이루고 내면이 선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을 때, 그 뒤에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성령께서 알려주시고 이루어 나가신다. 하느님의 선은 인위적으로 퍼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퍼져 나가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전갈을 들으신 성모님은 스스로 유다 산악지방을 가로질러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가신다. 외적인 명령이나 강요에 의한 여정이 아님에도 엘리사벳을 향한 성모님의 발걸음은 바쁘게 움직인다. 성령으로 충만한 이들도 이와 같다. 반면 내 안에 하느님의 선이 충만하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선, 자의적인 선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고, 이는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포도나무 가지처럼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따라서 성모 기사회의 힘은 회원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성모님을 통해 완전히 봉헌함으로써 성화를 이루어내는 데에 달려 있다. 나의 의도를 통해서 남을 돕는 것은 사회적인 봉사 활동에 불과하다. 기사회원들의 활동은 나의 의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을 통해서 -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 자신을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콜베 수사는 그런 공동체를 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14일, 최문기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유대철 베드로 수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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