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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회고록48: 새 술은 새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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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9 ㅣ No.452

[추기경 정진석] (48) 새 술은 새 부대에


지구 특성 살린 ‘맞춤 사목’으로 본당에 활기 불어넣어

 

 

- 서울대교구장 착좌 1주년을 맞아 가톨릭평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진석 대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정진석 대주교가 1998년 7월 사제평의회에서 교구를 지구 중심 사목 체제로 개편키로 한 이후 교구 사제들은 지구장 투표를 했다. 이후 투표 결과를 반영해 정 대주교는 9월 말 15명의 지구장 신부를 임명했다. 교구 구성원들은 이를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지구장 신부 임명이 사제단의 투표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과 함께 교구장의 권한이 지구장 신부에게 대폭 이양된다는 점에서 지구 중심 사목 체제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 대주교는 지구장 투표를 통해 사제들이 어떤 사제상을 선호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여러 측면에서 교구를 파악하게 됐다. 정 대주교는 투표에 나타난 사제들의 마음을 읽고 새로운 일을 구상할 수 있었다. 

 

정 대주교가 지구별 특성에 맞춰 다양한 사목을 시도하기로 한 것 역시 세간의 큰 기대를 모았다. 많은 지구에서 지구 운영위원회를 별도로 설립하고 청소년 담당, 선교 담당, 사회복지 담당, 교육 담당 신부를 임명하는 등 전문적이고 세분된 사목을 전개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선교 활동도 활성화되고, 냉담 교우에 대한 사목 또한 지구 차원에서 강화됐다. 사목이 활성화됨에 따라 자연히 신자들의 활동 폭도 넓어졌다. 지구 단위로 평협 조직이 새롭게 갖춰졌으며, 지구 청년 미사 등 각종 활동과 신심 단체의 연대도 강화됐다. 사목의 초점이 본당에서 지구로 넓혀지자 본당을 넘어 서로 협조하고 연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각 지구에서는 사제들의 친교를 위해 사제 연수 등을 시행하기도 하고, 학교가 밀집한 지구에서는 대학생, 청년 사목에 주력하려는 변화가 생겨났다. 몇몇 지구는 지역 실태 조사에 나서기도 했으며, 지구 차원에서 문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지구도 생겨났다. 또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의 몇몇 지구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지원을 통해 사회복지 사목에 주력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적어 보이는 일부 지구들도 나름대로 물밑 작업을 통해 멀리 보는 사목을 준비하기도 했다.

 

지구 중심 사목 체제 운영 뒤 서울대교구는 청소년 · 선교 · 사회복지 담당 신부를 임명하는 등 지구별로 전문적인 사목을 전개했다. 사진은 1999년 3월 교구청 마당에서 청소년들과 성소 주일 포스터를 촬영하고 있는 정진석 대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지구 중심 사목의 장단점이 속출했고 지역 차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울은 대도시인 만큼 서울 안에서도 지구별로 너무나 판이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도시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투영된 사회적 현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이에 대한 획일적인 사목은 많은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진된 지구 중심 사목은 예견된 문제를 돌파해나갈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정 대주교가 서울대교구장 착좌 1주년을 맞았을 때, 가톨릭평화신문이 대담을 청해왔다. 기자가 주목한 주제 역시 ‘지구 중심 사목 체제’였다. 

 

“이런 제도는 서울대교구에서 처음 봅니다. 대주교님 아이디어인가요?”

 

정 대주교는 덤덤하게 답했다.

 

“교회법전에 명시된 규정에 따른 것일 뿐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정 대주교는 지구 중심 사목이 아직 실험적인 단계여서 그 결과를 이야기하기에는 섣부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구 중심 사목이 교구장의 의지로 시작했더라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력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진석 대주교가 특수 사목에 대한 의지를 밝힌 후 중부경찰서에서 처음으로 경찰사목이 시작됐다. 사진은 당시 명동본당 주임 장덕필 신부가 미사 중 신자 전·의경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정 대주교가 생각하는 사목의 기본 방향은 본당을 향해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몸집이 작은 교회’를 강조했다. 그는 신자 3000∼4000명당 한 개의 본당이 이상적인 형태라고 강조해 왔다. 그가 서울대교구장 재임 초기 신설된 본당 중에는 신자 수가 2000명이 되지 않는 본당도 있었다. 정 대주교는 본당 체제를 규모가 작은 본당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다. 그 때문에 정 대주교는 본당 분할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정 대주교의 또 다른 관심 분야는 특수 사목이었다. 특별히 대도시는 현실적으로 직장 중심 사목과 여러 직군에 특성화된 전문 사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경찰사목 전담 사제 2명과 환경사목 전담 사제 1명을 임명했다. 

 

무엇보다 경목(警牧, 경찰사목) 사제의 임명은 교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속에서 늘 긴장해 있는 경찰서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 대주교는 교구가 파견한 경찰 사목 전담 사제들이 서울시와 경기 북부 일원의 각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경찰관과 의경,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경찰사목은 경찰뿐 아니라 의경 등으로 사목 대상을 넓히면서 경신실 신설, 의경을 돌보는 상담 프로그램 등으로 영성적 도움을 줬다. 

 

사실상 사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경찰사목은 걱정과는 다르게 일반병원 사목과 함께 뿌리를 잘 내렸다. 다른 교구에도 영향을 줬다. 서울 시내 거의 모든 경찰서에 경신실을 만들었고, 전ㆍ의경 대원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과 H.A.T(행복예술치료) 등을 실시해 전ㆍ의경 사고 예방에도 큰 역할을 했다. 경찰사목을 각별하게 여겼던 정 대주교는 성년의 날을 맞는 전 · 의경들을 주교좌 명동대성당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성년의 날, 정 대주교는 젊은 전 · 의경들에게 ‘성년의 날 생명윤리 특강’을 선물하고, 기꺼이 이날 특강의 강사로 나섰다.

 

“여러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합니다. 누구에게나 잘하는 것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나이 때는 자신의 장점을 찾고 계발해야 할 시기입니다. 사소한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미래를 위해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정 대주교는 매년 성년의 날 행사에 참여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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