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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21: 5세기 (2) 요한 카시아누스의 수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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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3 ㅣ No.92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1) 5세기 ② 요한 카시아누스의 수도 생활


성숙한 수도 생활의 길을 제시하다

 

 

- 요한 카시아누스.

 

 

서방 가톨릭교회에서 사람들이 수도 생활에 관심을 갖고 수도 생활을 실천했던 흔적은 이미 4세기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서방 교회에서 수도자들이 제대로 된 수도 생활을 실천할 수 있었던 계기는 5세기 초 요한 카시아누스(Ioannes Cassianus, 360/65~430/35경)에 의해 마련되었습니다.

 

 

반-펠라기우스주의로 비친 수도 생활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접경 지역에서 출생한 카시아누스는 유복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라틴어 문화와 그리스어 문화를 익히며 정규 교육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카시아누스는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몇 년간 수도 생활을 익혔으며, 이집트 사막에서 10여 년간 은수 생활을 익혔습니다. 특히 켈리아 사막에서 만난 스승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345/46경~399)에게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수도 생활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카시아누스는 오리게네스 논쟁에 휘말려 더이상 이집트 사막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고, 콘스탄티노플을 경유하여 우여곡절 끝에 5세기 초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카시아누스는 이곳에서마저 또 다른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죄의 지배에 놓인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인간의 자유 의지만으로도 구원 가능하다는 펠라기우스(Pelagius, 350/54경~418 이후) 사이에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지역 카르타코 공의회는 411년과 418년에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단죄했습니다. 아울러 인노켄티우스 1세 교황(Innocentius PP. I, 재임 402~417)은 417년에, 그리고 조시무스 교황(Zosimus PP., 재임 417~418)은 418년에 펠라기우스주의를 단죄했습니다.

 

이때 카시아누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신학적인 견해를 약간 달리했습니다. 수도자로서 수도 생활을 실천했던 카시아누스의 입장에 따르면, 인간 구원에 있어서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는 것은 옳지만, 인간에게도 상응하여 노력할 책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북아프리카 지역과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금욕 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이 반-펠라기우스주의로 비친 카시아누스의 견해를 지지했습니다. 이후 카시아누스는 더 이상 로마에 체류하지 않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Marseille)로 이주해 수도원을 설립하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신적인 열매인 수덕 생활

 

카시아누스가 서방 교회에서 목격한 수도 생활은 조잡하고 미성숙했습니다. 따라서 카시아누스는 자신이 정착한 프랑스 지역 수도자들에게 세련되고 성숙한 수도 생활을 가르쳐주고자 했습니다. 카시아누스는 421년에 저술한 「공주 수도 생활과 여덟 가지 악습들에 대한 제도서(De Institutis coenobiorum et de octo principalium vitiorum)」에서는 수도자의 수덕 생활을, 그리고 426년에 저술한 「교부들의 담화집(Collationes Patrum)」에는 수도자의 관상 생활을 다루었습니다.

 

총 2부로 구성된 「제도서」 제1부에서 카시아누스는 수도원 제도를 엿볼 수 있는 외적 인간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즉, 수도복 및 수도원 생활과 밤과 낮에 드리는 성무일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특히 수도원 생활에 대한 설명 때문에 이 작품이 수도원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졌으며,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Benedictus Nursinus, 480/90~555/60)도 이 부분의 내용을 저서 「수도 규칙(Regula Benedicti)」에 담았습니다.

 

제2부에서 카시아누스는 에바그리우스가 언급한 여덟 가지 악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악한 생각들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내적 투쟁을 설명했습니다. 즉, 카시아누스는 악습을 거슬러 싸우기 위한 치료법을 함께 제시하면서 수덕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수도 생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카시아누스는 참된 금욕 생활이 인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더라도 신적인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내적 생활 발전을 도모하는 수도 생활

 

총 24개 담화를 3부로 구성한 「담화집」에서 카시아누스는 앞의 작품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악습을 다시 제시하면서 성덕을 완성하여 완덕에 다다르는 내적 인간을 설명했습니다. 먼저 카시아누스는 제1부에서 중요한 개념을 살폈습니다. 즉, 수도자는 하느님 나라를 목표로 수도 생활을 실천해야 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음의 순결’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제1담화 참조) 특히 완덕에 다다르기 위해서 겸손의 덕을 통해 분별의 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덕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라고 언급했습니다.(제2담화 참조) 따라서 완덕은 완벽한 수덕 생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상급으로 주시는 덕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제3담화 참조) 결국 완덕은 신망애 삼덕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신덕과 망덕은 능동적으로 악습을 끊는 과정이고 하느님 은총을 통해 애덕에 도달해야 완덕이 완성된다는 것이었습니다.(제11담화)

 

카시아누스는 제1부 후반과 제2부에서 수도자에게 나타나는 신비체험의 성격을 설명했습니다. 카시아누스는 수도자들이 탄원, 기도, 중재, 감사의 단계를 밟아가며 기도 생활을 실천하면 하느님만 관상하면서 하느님 사랑에 불타는 최고 단계의 기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 은총으로 바치는 불타는 기도가 바로 신비체험의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제9~10담화 참조) 결국 수도자들의 신비체험은 기도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관상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관상-신비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카시아누스는 관상을 ‘역사적 해석’과 ‘영적 이해’로 나누어서 신비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지식을 얻기 위해 실천적인 수덕 생활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제14담화 참조)

 

끝으로 제3부에서 카시아누스는 공동생활 및 독거 생활 수도자와 거짓 공동생활 및 거짓 은수 생활 수도자를 언급하면서 서방 교회 수도자들에게 올바른 수도 생활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카시아누스는 모든 생활 형태의 수도자가 내적 생활을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로써 이집트에서 실천하던 수도 생활을 서방 교회의 기준으로 확립하려는 카시아누스의 노력이 서서히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카시아누스의 신비사상은 플라톤 사상처럼 인간 영혼이 동족관계로서 신의 영역으로 귀환하려 하지 않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만으로 하느님께 도달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오직 하느님 은총에만 의지하는 모습을 지니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이끄시는 신비체험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입장은 수덕 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카시아누스가 오해의 소지를 최소화하여 제시한 수도 생활은 베네딕투스를 통해 보정돼 서방 교회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23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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