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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수도회 국악성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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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9 ㅣ No.76

[배움터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수도회 국악성가연구소

 

우리 소리, 우리 가락으로 하느님을 찬송한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속삭이듯이 시작하세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게를 끊어 주세요.

‘주 하느님 하늘의 임금님.’ 하늘을 밀어 주고….”

 

지난 3월 6일, 서울 강남구의 대치4동성당. 월요일 저녁인데도 성당이 시끌벅적하다. 140여 명의 사람이 모여 성가 연습을 하는데 늘 듣던 성가와는 사뭇 다른 선율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악성가연구소에서 ‘국악 성가’를 연습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국악 성가가 뭐예요

 

국악 성가가 활성화된 곳에서야 익숙하겠지만,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지는 않은 탓에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생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악 성가는 말 그대로 우리 음악인 국악과 교회의 음악인 성가가 합해진 말이다.

 

곧 우리 음악에서 소리에 멋을 내는 정교한 시김새(국악에서, 주된 음의 앞과 뒤에서 꾸며 주는 꾸밈음)를 적절히 사용하고 다양한 장단과 가락을 활용해 만든 성가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국악의 특색인 미는 소리, 꺾는소리, 굴리는 소리, 흘리는 소리, 맺는 소리에 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등 전통적인 선율의 장단이 등장한다.

 

“국악을 활용하여 우리 전례 안에서 사용하는 성음악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 전통과 교회 전통을 한데 접목시키는 작업이지요. 우리말로 된 기도문을 우리 고유  가락에 얹어 노래함으로써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을 더 깊이 있는 기도로 이끌어 주려는 것이지요.”

 

국악성가연구소 소장 강수근 바오로 마리아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수도회 관구장)는 1987년 국악 미사곡을 처음 작곡하고 국악 성가 수백 곡을 만든 선구자다. 국립 국악 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미국과 로마에서 교회 음악과 작곡 등을 배운 그는 서양 음악이 대세를 이루는 척박한 교회 음악의 현실 속에서 ‘국악 성가’라는 새로운 분야를 여는 데 앞장서 왔다.

 

 

전례 음악의 토착화

 

클래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비교하면 우리의 전통 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국악 성가에 대한 관심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가 200년이 넘었고 국악 성가는 말 그대로 우리 음악인데도 생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국악은 ‘옛것’이라거나 ‘어렵다’ 또는 ‘단조롭다’, ‘지루하다’라는 선입견에서 비롯한다. 음악 방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양 음악보다 찾아 듣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운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국악이 좀 어렵지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국악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면 어렵게 느끼지 않을 텐데, 아쉽게도 불행한 역사 때문에 국악을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또 국악은 옛것이 맞지요. 그러나 또 현재의 것이기도 합니다.” 소장 강 신부의 말이다.

 

불교나 유교 등 한국에 들어온 지 오래된 종교는 전통 음악의 흐름과 많은 관련을 맺으면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전통 음악 대신 주로 서양 음악을 보급해 왔다. 주로 서양의 성가에다 가사만 우리말로 붙인 곡을 불러 왔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힘입어 전례 음악도 토착화의 길에 들어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첫 번째 문헌인 전례 헌장 112항에 성음악이란 ‘말과 결부된 거룩한 음악’이라는 정의가 나와요. 곧 전례에서 기도문이 중요한데 그 기도문을 말로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 표현해서 더 잘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곧 성음악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각 나라말을 가장 음악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나라의 전통 음악이거든요. 그래서 교회에서는 성가를 부를 때, 자기 나라말을 자기 음악에 얹어 부름으로써 더 잘 기도할 수 있게 하려고 전례 음악의 토착화를 장려한 것입니다.”

 

라틴 말 기도문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은 교회의 소중한 유산인 그레고리오 성가이지만 우리말을 잘 살려 주는 것은 국악이란 말이다. 국악 성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우리말과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우리말 기도를 더욱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알아듣기 쉽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국악 성가의 탄생 30년

 

강수근 신부가 국악 성가를 처음 만든 뒤 30년의 세월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강 신부가 국악 성가를 만들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왜 성당에서는 우리 음악으로 된 성가를 들을 수 없을까?’라는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의문은 수도회 수련기 때 ‘국악 미사곡 하나’를 작곡하는 것으로 결실을 본다.

 

이 국악 미사곡은 1987년 9월 미리내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경당 앞에서 거행된 전국 남자 수도회 수련자 대회의 파견 미사에서 처음 불렸다. 이듬해인 1988년 9월, 한국 순교 성인들의 대축일에는 악보와 함께 음반이 ‘국악 미사’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때 ‘국악 성가’란 말도 생겼다.

 

2009년 11월에는 국악성가연구소를 설립하여(처음에는 국악성가진흥회), 국악 성가를 보급하기 시작한다. 2010년 5월 지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지도자 과정’을 개설해 국악의 실기와 이론은 물론 성가와 전례에 대한 지식까지 익힐 수 있도록 했으며, 기본적인 이론과 다양한 국악 성가를 배우는 ‘일반 과정’도 개설했다.

 

2012년 6월에는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얼씨구 좋을씨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시청자들이 국악 성가를 배울 수 있었고, 2014년 1월에는 여섯 장의 국악 성가 음반이 나왔다.

 

그사이 국악 성가 전문 합창단도 생겼다. 1996년 광주에서 ‘한소리합창단’이 창단한 이후 의정부교구에 ‘가톨릭국악합창단’이, 수원교구에 ‘한울림합창단’이, 그리고 서울대교구에 ‘우리소리합창단’이 창단되어 각각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시니어 합창단인 ‘한길합창단’도 창단되었다.

 

 

국악 성가를 배우는 배움터

 

국악성가연구소는 국악 성가를 연구하고 전례 음악의 토착화를 꾸준히 이루어 가는 가운데 국악 성가를 가르치고 널리 보급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국악 성가 배움터는 연구소가 생기기 전인 1993년 6월 광주·전남 지역 성가대 전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처음 열렸다.

 

“신부님의 여건을 들었음에도, 조르고 졸라 허락을 얻어 내곤, 함께 활동하던 분들과 더불어 ‘국악 성가 배움터’를 개설했어요. 신부님은 이 배움터를 위해 우리 음악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가락과 우리말을 얹은 독특한 리듬들로 새로운 국 악 성가들을 작곡하여, 교리적인 해설까지 곁들여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국악적 표현으로 가르쳐 주셨어요. 배우는 우리의 표현은 어설프고 부족해도 그 곡에 쓰인 성가 가사의 뜻만은 가슴을 파고들며,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했지요. 또 춤추게도 하고 감사하고 찬미하며 크게 뉘우치게도 했습니다.” 초창기부터 활동하여 지금은 한길합창단 부지휘자인 김달 엘리사벳 씨의 회고다.

 

지금 연구소에서는 국악 성가, 반주 장구, 무용, 발성 아카데미, 지도자, 직장인 성가 과정 등이 개설되어 있다. 이 밖에 지역별로 단기 집중 강좌인 배움터도 열리고, 다달이 기도 모임이나 국악 묵주 기도, 성가 연습, 여름에는 국악 성가 캠프도 한다. 때에 따라 피정과 특강, 성지 순례, 송년 축제도 연다. 다양한 방법으로 국악 성가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피정 강의처럼 풍요로운 강좌

 

국악 성가로 감동을 느낀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절로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겹고”, “절로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흐르게 되는” 그런 성가가 바로 국악 성가다. 우리말로 된 기도문이 우리 가락을 타고 전달되면서 마음과 영혼에 깊이 파고들어 잠들어 있는 신심을 일깨우기 때문이란다.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연구소로 삼삼오오 형제자매들이 모여듭니다, 때로는 명랑한 얼굴로, 때로는 피곤함에 지쳐 초췌한 얼굴로. 그러나 발성 연습을 하고 국악 성가를 한 차례 신명 나게 부르고 나면 모두 얼굴에 화색이 돌며 생기가 넘쳐요. ‘확실히 성가는 기도구나! 그리고 기도는 우리에게 생기를 북돋워 주는구나!’ 하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되지요.”

 

강 신부의 말처럼 강좌에 참여한 이들의 소감은 국악 성가 덕분에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고 은총과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성주간 음악인 ‘우리 주님 가시네’를 부르면 바로 눈물이 나온다.”는 이, “우리 가락은 참 쉽고도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다.”는 이, “서양 음악으로 봉헌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느끼며 그 기쁨과 활홀함을 잊을 수 없다.”는 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가락이 좋아서 부를 적마다 행복하다.”는 이도 있다.

 

 

한번 들어 보고 불러 보라

 

3월 7일, 이날은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국악성가연구소를 찾았다. 강좌 대부분이 이곳에서 열린다. 장구를 하나씩 앞에 두고 강 신부의 장단에 맞추어 열심히 두들기며 심취한 수강생들. 흥겹게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장단을 맞추게 된다.

 

“언젠가 친한 친구 신부가 ‘국악 성가는 절대 주류가 될 수 없어. 교회 안에서 국악 성가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울 것 같아.’라고 했어요. 마음이 아팠지만, 저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주류지만 언젠가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요. 예수님도 생전에는 비주류셨지만 ‘겨자씨’셨어요. 국악 성가도 하나의 ‘겨자씨’라고 믿습니다.”

 

강 신부는 “국악 성가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하고, 은총을 체험하는 신자들을 보면, 우리 가락으로 된 성가는 분명 큰 생명력을 가졌다.”며 “100년 뒤에는 우리나라 성가집 절반 정도는 국악 성가로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국악 성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한번 접해 보세요. 그러면 거기서 엄청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내 안에서 기도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체험, 그리고 그 살아 있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악 성가와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백문이 불여일청’, 한번 들어 보고, 불러 보라. 그리고 마음을 열고 가락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물도 흐르는, 어깨춤이 절로 나는 국악 성가를 한번 배워보라. 익숙하고 정겨운 가락에 금세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얼씨구 좋구나~.

 

· 문의 : ☎ 02-953-2004

· 누리집 : 국악성가 & 하늘나라(http://cafe.daum.net/suguncp)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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