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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교계제도 설정 이후 한국 천주교회: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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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2 ㅣ No.840

교계제도 설정 이후 한국 천주교회 :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1. 들어가는 글

 

1962년 교황 23세에 의해서 교구로 승격된 한국 가톨릭교회는 올해로 교구 승격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울러 올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된 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정식 교구로 승격되는 교계제도의 설정은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비추어 볼 때, 매우 깊고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자리를 새롭게 천명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 안에서 지난 50년간 교회는, 세속적인 학문과도 다양한 교류를 시도해 왔으며 보다 객관화된 자기 성찰을 통하여 사도적 역량을 증진시키며 영적인 쇄신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교회법 혹은 신학적인 담론 체계를 최우선시하는 교회 학자들의 논의는 세상적인 논의와는 분명히 다를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1) 하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인들의 조직, 제도, 규범, 문화, 관행 등 사회적으로 연관된 주제들에 대해서도 사회 분석이라는 합리적 비판과 성찰의 잣대를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2)

 

필자는 교계제도 설정 50주년이 한국 교회, 특히 서울대교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신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다. 먼저 교계제도의 개념을 살펴보자. 교계제도는 “교회의 고유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성사 집전과 관련하여 주교, 사제, 부제로 이루어지는 조직 원리인 신품권과 지역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입법, 사업, 행정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인 재치권으로 구성된다.”3) 교계제도의 개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교회의 ‘재치권’을 강조할 때, ‘교계제도’ 설정은 포교 혹은 선교 지역에서 정식 교구로의 승격을 의미한다. 둘째, 교회의 ‘조직 원리’를 중시할 때, ‘교계제도’는 신적 위계(hierarchia)를 현세에서 반영하는 제도(institutio)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4) 이를 배경으로 할 때, 교계제도 설정 50주년과 한국 교회(서울대교구)의 변화에 관해서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교구 승격에 초점을 둘 때, 서울대교구는 교계제도 설정 이후 자립 교회로서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 그것은 과연 어떤 맥락에서 교계제도 설정(교구 승격)의 영향이라고 분석될 수 있는가를 논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배경으로, 교계제도로서의 교회는 어떻게 하느님 백성으로서 친교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것은 교회의 질적 성장과 변화를 인식케 하며 교회 조직 원리상의 쇄신이라는 내적 과제를 성찰토록 인도해 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첫째 애버리 덜레스 추기경이 제시한 제도로서의 교회 모델을 검토해 보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을 중심으로 교회의 자기 인식의 변화를 되짚어 볼 것이다. 둘째, 지난 50년 동안 서울대교구의 교계제도상의 변천을 통계 자료에 입각해서 살펴보고 교회의 양적 성장이 함의하는 다각적인 측면들을 살펴볼 것이다. 셋째, 교회 성장의 이면에 담겨있는 교계 구조의 한계들과 그에 수반되는 과제들에 관해서 고려해 볼 것이다. 끝으로, 오늘날 서구 선진 국가에서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실추되는 현상을 목격하는 동시에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주창하시는 “새로운 복음화”의 소명을 배경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미래상에 대한 전망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공의회에서 제시하는 교회의 자기 인식을 신학적 성찰의 토대로 삼되, 그것을 실현시켜 나가는 교회 운영과 행정 등의 조직 원리에 관해서는 “사회적 성찰성”을 제안하며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5)

 

 

2. 교회의 자기 인식, 그 패러다임의 전환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인식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백성”에,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오순절 이후 교회 시대에는 “성령의 성전”에 근거한다.6) 하느님의 나라로 초대받은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하나가 되는 친교 공동체, 성령 안에서 은사(카리스마)를 통하여 공동선을 지향하는 신비체, 이 세 가지 개념들은 궁극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을 뜻한다.7)

 

그런데 교회의 자기 인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룬다. 공의회 이전에는 교계와 성사를 강조하는 교회 제도가 우선되었지만, 공의회의 <교회 헌장>에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 친교 공동체가 강조되었다. 본고에서는 교회에 관한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신학적이며 사회과학적인 성찰의 배경으로 다룰 것이다.

 

이제, 애버리 덜레스 추기경의 《교회의 모델》에서 제시되는 ‘제도’로서의 교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대비해서 접근해 보겠다.

 

1) 제도(Institution)로서의 교회

 

교회를 그 자체로 ‘완전한 사회’(the perfect society)로 인식하는 것은 제도로서의 교회(the institutional Church)의 가장 견고한 자기 인식에 해당한다.8) 그것은 중세 종교 개혁 이후에 열렸던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을 반영하는데, 이단 논쟁, 종교 개혁과 교회 분열, 십자군 전쟁 등을 통해 타 종교뿐 아니라 세속적인 영역과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가톨릭교회의 성역을 확장하려던 중세 교회의 자기방어적 세계관을 그 특성으로 한다. 한편,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 위계질서를 보다 더 확고하게 구축해 나갔으며, 그 결과 교회는 곧 ‘위계 제도’(the hierarchical system)라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이렇듯 교회의 가시성 혹은 제도성에 대한 강조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정점으로 중세 후반에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20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교회론의 표준이 되어 왔다.9)

 

제도로서 교회의 특징들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회를 일종의 “사회로 보는 인식은 통치 구조를 그 형식적 요소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10) ‘위계 제도’(Hierarchical constitution)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제도로서의 교회는 신앙생활에 관한 역할과 지침을 교회법을 통하여 명확히 규정하고 종교적 실천에 관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분명하게 제공하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법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율법주의(legalism)와 교조주의(dogmatism)로 흐를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이 같은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적 흐름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New Testament)에서 제시한 새로운 교회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교회의 주인이며 카리스마의 원천인 성령을 간과한 면이 많다.11) 다른 한편, 위계 제도로서의 교회 모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난관은 일방적 소통을 정당화하는 폐쇄적인 통치 구조에 기인한다. 좁은 의미에서 위계질서 혹은 교계 내 직무가 교회를 지칭한다고 볼 때, 그것은 ‘교황 - 주교 - 사제 - 부제’들만을 배타적으로 포함한다.12) 그 밖의 모든 신자들은 (수도자들을 포함하여) 교회 직분에 의한 봉사의 대상이지만, 피교육자이며 피통치자에 국한된다. 성직자들은 신자들이 교회에 관한 법규들 혹은 규칙들 안에서 우선적인 중요성을 구별하고 판단할 역량과 권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인식하기에, 신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와 가르침에 의존해서 수동적으로 준수해야만 하는 난관이 생기곤 한다.13) 드 스메트 주교는 이러한 제도로서의 교회를 현실적으로 성직자주의(clericalism), 법률주의(juridicism), 승리주의(triumphalism)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14) 요컨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동등한 구성원인 평신도, 수도자들이 피통치자로 인식되고, 교회의 위계적인 통치 구조는 세상적인 차원에서 현대 사회에서 중시되는 대화와 소통, 민주주의적 가치 질서와는 양립되기 어려우며 그 긴장과 대립으로 인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15)

 

덜레스 추기경은 제도로서의 교회 외에도 ‘친교’(Communion)로서의 교회, ‘성사’(Sacrament)로서의 교회, ‘메신저’(Herald)로서의 교회, ‘봉사자’(Servant)로서의 교회, ‘제자’(Disciple)로서의 교회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제2장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교회상은 (중첩되는 부분은 많지만) 덜레스 추기경의 개별 모델과 정확히 일치를 이루지는 않는다. 공의회가 제안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에 관해서 살펴보자.

 

2) 하느님의 백성(the People of God)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에서는 근본적으로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the People of God)으로 인식한다. 이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강조되어 온 ‘제도로서의 교회’론을 넘어서고 있다. 공의회는 가톨릭교회를 그 자체로 완벽한 사회로 주장하지 않고, 현대 세계 안에서 종교의 위치를 새롭게(aggionamento) 인식하였다. 또한 제도로서 가톨릭교회의 경계를 넘어서서 갈라진 형제들(유대인, 개신교인, 이슬람교도 등)과 비그리스도인들을 모두 “하느님의 백성”으로 포용하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에 관한 교령은 제1장 “교회의 신비”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제2장에 해당하는데, 그 이후 제3장 “교회의 교계제도와 주교직”이 잇따르는 그 순서와 위치를 볼 때, 공의회는 신중한 토의와 논의를 거친 후에 교계적 위계 제도에 앞서 “하느님의 백성”을 우선시하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 헌장>을 작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신학자 이브 콩가르 신부는 공동위원회를 통해서 제2장이 삽입된 배경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이 교회가 인류 역사 안에서 건설되어 가고 있다는 점, 둘째,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그의 신비체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충만성에 대해서 서로 다른 위치에 놓여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퍼져가고 있다는 점, 셋째, 직분과 지위 같은 일체의 구별을 초월해서 크리스찬적 실존의 존엄성을 감안하여 하느님의 백성인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통되는 점을 먼저 진술하려는 것이 그 의도였다.”16)

 

콩가르 신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 부르심과 응답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개념을 통해서 보완된다고 주장하였다. ‘몸’의 유비를 통해서 설명되는 바로 이 신비체 개념은 몇 가지 중요한 교회론적이며 사목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먼저 “모든 지체가 한 몸”이라는 것은 “직분이나 직위의 차이를 앞서서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공통으로 누리고 있는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것”은 “상하 주종 관계로 지체들이 분류되는 데에 교회의 근본 가치가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17) 이것은 교회 내 다양한 신분으로서 지체뿐 아니라,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 간의 관계에서도 ‘신비체’로서 교회를 인식하는 근거가 된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 개념의 패러다임은 덜레스 추기경이 제시한 친교(Communion) 교회 모델과 가장 가깝지만, 그 경계는 가시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콩가르 신부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보다 더 깊은 연구와 순례자로서의 계속되는 여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콩가르 신부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의 미래를 이와 같이 예단했다. “아마도 앞으로는 교회론 전체가 사도 바오로의 정신을 따라 ‘봉사하기 위하여 성인들(신자들)을 조직화하는 데’ 관심을 둘 것이고 성직 계급의 위치와 직무를 규정하는 에페소서 4장 12절의 방향으로 새로운 균형을 발견하고 발전되어 나아갈 것 같다.”18)

 

그런데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패러다임은 ‘위계 제도’로서의 교회 모델과 역사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변증법적인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교회 헌장> 8항에서는 그 긴장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계제도로 조직된 단체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고, 볼 수 있는 집단이며 동시에 영적 공동체이고, 지상 교회이며 동시에 천상 은혜로 충만한 이 교회는 두 개의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잡한 실체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공의회 문헌이 반복해서 강조하듯이 “성령의 감도 혹은 인도를 따라서…” 교회가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새로운 모험과 항해를 충실히 해 나갈 때, 교회는 순례자로서 여정을 겸손되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 제도적이고 가시적인 구체성, 즉 크리스찬적인 실존의 역사성19)과 그에 합당한 실천이 담지되지 않을 때 교회는 - ‘친교’ 혹은 ‘제자’, ‘성사’, ‘봉사자’, ‘사자’로서든 - 그에 온당한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교계제도로서의 교회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 간의 긴장을 신학적 성찰의 기본 전제로 삼고, 교계제도 설정 이후의 한국 천주교회의 변화상을 - 특히,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3. 교계제도 설정 이후의 변화

 

1784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교회 공동체가 설립된 이후 긴 박해 시기 한가운데 1831년 북경 대목구로부터 조선 대목구가 분리되어 설정되었고,20) 1911년 조선 대목구는 서울 대목구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서울 대목구에서 대구 대목구가 분리되어 신설되었고 그 후 원산, 평양, 전주, 광주 대목구가 분할되었고 1962년 3월 10일 교구로 승격되었다.21) 이와 동시에 1962년 서울대교구로부터 춘천교구와 인천교구가 분할 및 신설되었고, 그 이듬해인 1963년 10월 7일 수원교구가, 2004년 10월 의정부교구가 서울대교구로부터 분리되어 설정되었고, 2012년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군종교구 포함) 16개의 교구에 주교 32명(은퇴 9명)을 보유하고 있다.

 

1962년, 교계제도 설정 당시 서울대교구의 노기남 대주교는 “한국 교회에 3대주교구가 설정되고 감목교구가 본 교구로 승격된 것은 한국 천주교회를 위해 기쁜 일이요, 경하할 일이라 생각된다. 마치 한국에 총독정치가 대한민국으로 변천된 것같이 느껴진다”고 벅찬 감회를 피력하였다.22) 이후 한국 교회의 세계적 위상은 격상되어 1963년 교황 사절이 교황 공사(internuntius)로 승진되었고, 1969년 한국 교회 최초의 추기경이 임명되었으며, 교황청의 다양한 위원회와의 교류를 통하여 세계 교회뿐 아니라 아시아 교회와의 관계가 촉진되어 왔다.23)

 

이제 지난 50년간 서울대교구의 교회 구성원들의 변화상을 - 자립도와 양적, 질적 성장의 측면에서 - 살펴보겠다. 먼저 주교와 사제 성직자의 변화상을 살펴보자.24)

 

1) 성직자의 양적 변화

 

서울대교구는 1961년 주교 1명, 사제 151명을 보유했는데, 2011년 현재 주교(추기경 포함) 3명, 사제 1,051명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사제 수의 변화상을 보면, 7배가 증가하였다. 이를 시기별로(5년 단위로) 분석해 보면, 1986년부터 2006년 사이에 사제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특히, 1991년에서 1996년 사이에는 가장 많은 205명이 증가하였다. 신학교 양성 기간을 대략 (군대 기간을 포함해서) 10년 정도로 추산할 때, 이들은 80년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신학교에 입학한 40대 중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현재 서울대교구에 소속된 교구 사제는 741명이며, 수도회 소속 신부 254명, 선교회 소속 신부 56명이 있다. 서울대교구에 소속된 총 사제 숫자 대비 교구 사제의 비율은 2011년 70.5%에 해당한다.

 

<표 1> 서울대교구 성직자의 변화상(1961~2011)

(가) 춘천 및 인천교구 분할(1962), 수원교구 분할(1963)

(나) 2004년, 서울대교구로부터 의정부교구 분할(사제 176명)

 

서울대교구에 속한 교구 사제의 연령대를 보면, 2011년 현재 30대가 231명, 40대가 228명, 50대가 173명, 60대가 52명, 70대가 34명, 80세 이상은 11명에 해당한다. 서울대교구에 속한 수도 사제 수를 포함시키면 40대의 비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되며, 교구 사제들의 평균 나이는 47.3세로 추정된다. 교구 사제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후반 혹은 70대로 보고되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교구들과 비교해 볼 때, 서울대교구의 사제들은 상당히 젊은 편이라는 걸 알 수 있다(다만, 교구 사제의 평균 연령이 젊다고 해서, 본당 사목의 운영이 진취적이고 활기에 찬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질적 차원의 사목 운영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선교 지역의 특수성인 대목구에서 정식 교구로 설정된 것을 감안하여 서울대교구 내 성직자의 자립률(전체 사제 수에서 외국인 사제 수를 제외한 비율)의 변화를 살펴보면, 1961년 78.1%에서 2011년 현재 93.9%에 다다르고 있다. 참고로, 전국 차원에서의 자립률은 1961년 53.9%에서 2011년 96.4%로 상승하였다. 한편, 메리놀과 골롬반 선교회의 외국 사제들은 서울대교구 내 주변화된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고 운영하기도 했으나, 외국 선교회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2012년 현재 도시빈민선교 본당 한 곳에서만 골롬반 외국인 선교 사제가 사목하고 있다.

 

2) 평신도의 양적 변화

 

서울대교구의 신도 숫자는 1961년 13만 6천여 명이었는데, 1991년 백만 명을 돌파했고, 2011년 현재 143만 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 50년간 평신도 숫자는 10.5배가 증가한 셈이다.

 

한편,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의 가톨릭 신자 비율25)의 변화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시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까지이다.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의 비율은 1960년대에는 인천(1962), 춘천(1962), 수원(1963)교구 분할 이후에 크게 증가하지 않았고 그 추세는 1970년대 초까지 2% 후반대로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 한국 가톨릭교회가 정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정치적인 차원에서, 가톨릭 정치인을 대표했던 장면 총리가 군부 쿠데타 정권에 밀려나면서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입지도 축소되어 있었다.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등 사회 참여의 계기가 있었지만, 교회의 조직적인 대응은 미약했고 간헐적인 성명서에 국한되었다. 한편,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년도에 시작)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이 거세게 서울을 중심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으나, ‘이농자’ 출신 ‘도시빈민’에 관한 관심은 아직 미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표 2> 서울대교구 평신도의 변화상(1961~2011)

(가) 직장인 사목 공동체를 포함시켰으나 그해 이후부터 배제하였음.

 

둘째 시기인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신도 수의 증가율이 괄목한 만하다. 70년대 중반,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 수의 비율은 3.6%였는데, 1980년대에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고, 1991년 9.3%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급성장의 배경에는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사회심리적인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 시기는 박정희 독재 정권 말기에서 노태우 군사 정권의 시기에 해당한다.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결성되었던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1974)을 비롯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 참여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폭로’로 인한 민주화 대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건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26) 아울러,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두 번의 교황 방문의 계기가 되었던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1989년 세계 성체 대회 등 거국적이고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 역시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촉매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계속되는 산업화와 도시화, 근대화 과정에 기인한 사회의 불안정 심리와 그로 인한 정체성 상실이라는 사회 문제가 종교에 귀의토록 하는 사회심리적 유인기제가 되었을 가능성 또한 매우 크다.27)

 

셋째 시기인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 2012년 현재까지는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 수의 비율은 다시 비교적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의정부교구 분할(2004) 이후에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이 목격되는데, 이는 교구 차원에서 입교 신자를 늘리기 위해서 시행한 선교 차원의 ‘복음화’ 운동의 가시적인 효과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 수의 비율은 한국 인구 대비 전국 가톨릭 신자의 비율보다 항상 더 높은 편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 수의 비율은 2011년 현재 13.6%로 전국 인구 대비 전국 가톨릭 신자 비율인 10.3%보다 3%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전국 가톨릭 신자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의 비율은 80년대 중반 이후 대략 1/3 정도를 유지했는데, 의정부교구 분할 이후에도 1/5 이상(27%)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2008년 통계로 본 한국 천주교회에서 주일미사 참여자는 24%(서울대교구 23.8%)로, 냉담자 수효가 70%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40대 이하의 영세자가 매해 줄고 있는 상황은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결코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없게 만든다.28) 현대 사회의 문화적 감수성을 입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은 단지 그들만의 탓이 아니며 교회 스스로 ‘내 탓이오!’를 찾는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29)

 

3) 수도자의 양적 변화

 

서울대교구에서 소속된 남자 수도자와 여자 수도자 숫자 모두 지난 50년간 커다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여기서 보고되는 수도자는 지원자와 수련자를 제외하고 유기서약자 이상만을 다루었다). 1961년 남자 수도자는 69명, 여자 수도자는 443명이었는데 비해서, 2011년 현재 남자 수도자는 446명, 여자 수도자는 1,594명이다. 지난 50년간 서울대교구의 남자 수도자는 6.5배, 여자 수도자는 3.6배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전국 수도자 비율과 비교하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한국 교구에 소속된 남자 수도자는 182명에서 1,521명으로 8.4배가 증가하였고, 여자 수도자는 1,170명에서 10,146명으로 거의 9배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표 3> 서울대교구 수도자의 변화상(1961~2011)

* 수도자 항목에는 봉헌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에 소속된 신부와 수사가 포함되었으며, 남녀 수도자 모두 수련자와 지원자는 제외하였고 종신서원자와 유기서원자만을 합산하였다.

 

전국의 수도자를 대비해서 서울대교구에 소속된 남자 수도자의 비율은 24%에서 44% 사이에서 변동하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29%대로 하락하였다. 그런데 여자 수도자의 경우에는 1961년 38%에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2011년 현재 16%로 현격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교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수도자의 비율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교구의 사제들이 수도자들과 협력이 원활하지 못해서일 가능성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으며 타 교구에서 수도자들의 역할과 협력을 보다 더 크게 요구하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수도자들은 교구장의 사목적 지도와 권한 아래서 활동하지만, 상대적으로 교구 사제들보다 활동의 영역이 자유로울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지역적인(교구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전국적인 차원에서의 증감을 함께 고려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수도자 숫자의 변화 비율을 5년 단위로 그 변화상을 보면, 남자 수도자의 경우 1970년대에서 80년대에는 감소 내지 미미한 증가세를 보이지만, 90년대 초중반에 급격히 증가하다가 2010년대에 들어 다시 완화된다. 2007년 남자 수도자 총수는 1,539명인데 비해서 2011년 1,521명으로 최근 4년 동안 15명이 감소하였다.

 

여자 수도자의 경우에도 1980년대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06년대 이후 입회자의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매해 여자 수도자의 증감을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1999년 이후 입회자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2007년 여자 수도자는 총 10,375명이었는데 이후 전체 수도자의 총 숫자 역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30) 2011년 여자 수도자의 총수는 10,146명으로 4년 전보다 229명이 감소한 상태이다.

 

이와 같이, 한국 교회에서 남자 수도자 총 숫자의 완만한 감소와 여자 수도자 총 숫자의 급격한 감소는 복합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첫째, 수도원 전통의 카리즘 회복과 내적 쇄신이라는 영적 차원의 원인이 있다. 수도자들은 복음 삼덕(가난, 순명, 정결)에 기초하고 현세에서 종말론적 희망을 증거하며 살도록 초대된 교회의 전위적 신분이다. 그렇기에, 수도자 자신의 정체성 확립과 영적 쇄신은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참된 행복(beatitude)을 스스로 맛들이지 못하고, 본당에서의 행정보조자 혹은 학교, 병원, 복지관 등 제도 기관에서의 관리자 역할에만 묶여 있다면, 수도자의 정체성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31) 둘째, 한국 천주교회의 교구 중심의 특수성이라는 구조적인 원인을 들 수 있다. 수도회와 교구가 함께 오랜 역사 안에서 협력해 온 서구의 가톨릭 전통과는 달리, 포교 지역 대목구로부터 특수하게 형성된 한국 천주교회는 교구 사제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 내 평신도의 성장 역시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평신도 신학자와 활동가 양성이 점증하면서, 교회 활동 영역 안에서 수도자의 역할이 도전받고 있기도 하다. 넷째,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 역시 커다란 원인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1980년대와는 달리, 오늘날 후기 근대 사회의 특성인 물질주의, 개인주의, 소비주의, 성 개방 풍조,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의 확대, 독신 여성의 증가 등의 사회현상은 복음 삼덕을 지향하는 수도 생활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고 있다. 특히나, 현대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일반적 지위와 비교할 때, 여성 수도자들은 교회 내에서뿐 아니라 수도 공동체 내에서도 권한과 자유가 현격히 떨어져 보인다. 요컨대,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우선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사목적 협력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32)

 

4) 교회의 경제적 의존 관계의 변화

 

위에서 우리는 인적자원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제 물질적 자원의 측면에서 교회의 경제적 의존 관계의 변화상을 검토해 보겠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2년 정식 교구로 승격이 되었어도 오랫동안 해외로부터 원조를 ‘받는 교회’였다.33) 그런데 1980년대 중반서부터 해외 원조를 시작하며 ‘나누는 교회’로 전환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 인성회(現 사회복지위원회 - 카리타스)가 1985년부터 에티오피아 대기근 구호사업을 기점으로 해외 원조를 시작하였고, 서울대교구 산하 ‘한마음한몸 운동본부’는 1990년부터, ‘한국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도 1989년부터 해외 원조에 참여하였다.34) 그 후 개별 교구, 본당, 수도회, 전국 사도직 단체 등에서 해외 원조에 참여하는 사례가 많아졌으며 2008년 현재 100억 원 이상의 원조를 실시하였다.35)

 

한국 천주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전환하게 된 배경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추세와 세계 시민 의식으로 고양된 구호 문화의 확대와도 연결된다. 특히, 오늘날 세계화의 추세에 부응하여 세계적 재난에 관한 매스컴의 광범위한 영향으로 형성된 교회적 대응의 특성이 강해 보인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90년대 말 IMF 이후 “사회복지”에 대한 필요와 인식이 확장되어 왔고,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의 주류 계층이 80년대까지 중하류층이었던 데 비해서 90년대 이후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 변화도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보인다.

 

요컨대, 한국 천주교회의 자립 능력은 지난 50년 동안 더욱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대교구는 교계제도 설정 이후 지난 50년 동안 양적인 차원에서 볼 때, 실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특히, 사제수와 평신도의 숫자 면에서도 그렇고, 경제적 자립도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더욱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공신력의 측면에서도 타종교보다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변화상의 근본적인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한국 천주교회의 내면적인 의식과 주체적인 역량 때문만이었다고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세 가지의 외생적 요인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사회 환경적’ 요인에 대한 교회의 대응이다. 한국 사회가 1962년부터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면서 점점 더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속되었고 군부 정권은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고자 했는데, 교회는 정치권력에 의한 위해와 탄압을 대면하면서 비로소 자기의 신원을 증거해 나갔다.36) 둘째, 최근 한국 종교계의 지각 변동으로 인한 ‘종교 환경적’ 요인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천주교회는 타 종교들에 비해서 상대적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는 한국의 3대 종교인 불교와 개신교의 내부 문제들이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폭로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천주교회가 상대적으로 공적 신뢰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확고한 교계제도를 구축하여 내적인 통일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성직자들의 교육 수준이나 자질이 높은 데도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보유론(補儒論)에 기반을 둔 한국 천주교회는 전통적(유교적) 위계의식과 친화성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근대화를 수용하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37) 셋째, 무엇보다도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자기 인식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영향을 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한 ‘신학적 성찰 요인’은 교회의 정신적 변화의 주축이라는 점에서 가장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최석우 신부는 1987년 교계제도 설정 25주년을 기념하면서, 한국 교회의 발전은 “한국 교회의 내부로부터의 반성이나 각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공의회란 외적인 자극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한국 교회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신 최석우 신부의 통렬한 반성에는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 간의 간극이 느껴진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변증법적) 긴장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교계제도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는 또다시 주체적인 자각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성찰토록 초대받는데, 이는 보편 교회의 사명 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내면화 혹은 주체적 실천으로 인한 질적 성장의 과제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공의회에서 제시한 보편 교회의 사명,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한국 천주교회가 얼마나 내실 있게 성장하고 있는가를 대면하며 성찰해보도록 하겠다.

 

 

4. 교세 성장의 한계와 과제

 

교회 구성원에 관한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경제적 자립도의 변화는, 복음화를 추구하는 교회의 양적 변화상만을 제한적으로 나타낸다.38) 이 같은 신도 수의 팽창에 관한 관심은 미국 교회에서 ‘교회 성장론 혹은 교회 성장 모델’ 등의 연구를 발전시켜 온 개신교 학자들의 종교 시장 이론으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39) 즉, 다원적인 종교 (시장) 상황에서 보다 많은 종교 소비자들을 확보하고자 전력 질주하는 개교회(個敎會)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은 ‘양적 팽창’만을 교회 성장의 척도로 제시함으로써, ‘현대 세계에서 참된 복음의 구현은 무엇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가 배제될 위험이 있다.

 

이제 양적 팽창으로서 교계제도의 발전이 가져온 그 이면에 관해서 제2차 공의회의 정신을 토대로 사회과학적인 분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교계제도의 설정 이후 오늘날까지 50년을 뒤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관해서 보다 심도 있는 성찰을 해 볼 필요가 있겠다. 교회는 보다 더 깊은 친교를 나누어 왔는가? 신도들은 신앙 의식과 공동체 의식에서 보다 더 성장하였는가? 교회와 신도들은 ‘빛과 소금’으로서 대사회적 윤리적 실천 부문에서 과연 질적 성장을 이루어왔는가? 이 질문들은 요컨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로 나아가는 경험적 성찰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1) 본당 공동체의 대형화

 

지난 50년 동안 서울대교구에서 교회의 기본 단위인 본당 혹은 공소 공동체의 평균 숫자는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교구에서 지난 50년간 사제 숫자가 7배 증가했고, 평신도 숫자는 10.5배 증가했지만, 교회의 기본 단위 공동체인 본당의 숫자는 3.5배만이 증가했기 때문에, 교회의 대형화 현상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40) 1961년 본당 혹은 공소 단위의 신자 (평균) 숫자는 360명이고, 신자 수가 400명이 넘는 성당은 53개이며, 400명이 채 안 되는 성당은 126개로 보고되어 있다. 그런데 2011년 현재 서울대교구의 본당 단위당 평신도의 평균 숫자는 6,350명에 해당한다.

 

본당의 대형화는 무엇보다도 ‘친교(Communion)로서 공동체’의 삶과 괴리를 빚는다. 대면적이며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교회 모델에서부터 동떨어져 있어, 비인격적이고 형식적이며 탈공동체적인 관계를 ‘본당의 거대 구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양산해 내기 쉽다. 따라서 교회 대형화는 “신자들의 익명화와 공동체적 친교 부족, 교회 운영의 관료화, 사제 - 평신도의 괴리감, 교회 내 소외계층의 증가, 냉담자 및 행불자의 증가, 부유층 본당과 가난한 본당의 양극화 등 다양한 문제들”을 양산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는 현상에 대해서 사목자들과 평신도 전문가들 사이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41)

 

서울대교구는 대안적인 교회상을 찾고자 1984년 《주교회의 사목의안》을 필두로, 소공동체 운동, 교구 분할 및 분권화(지구제와 대리구제), 본당 분할과 신축, 공동 사목, 교구 시노드 개최 등 교회 쇄신을 위한 다양한 사목적 고민과 실험들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 긍정적인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2) 교회 사목자의 행정 관료화

 

본당의 대형화는 사목자들의 행정 관료화와 병첩되어 나타난다. 제도로서의 교회가 본당 대형화의 길을 걸어왔다면, 교회 내 성직자들은 “과중한 업무 등으로 목자적 보살핌과 성사적 섬김 대신에 행정가 또는 관리자로 전락되어”42) “세속 사회적 관료화 경향”43)이 두드러진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기실, 교구 사제는 수도 사제(religious priest)와는 달리 세속 사제(secular priest)라고 교회사 안에서 호칭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주교와 성직자들은 교회 내 직무상 봉사직(diakonia : 섬김)을 수행한다고 볼 때, 세속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 교구 사제들의 임무는 보다 막중하다고 하겠다.

 

심상태 신부가 지적하듯 사제들의 ‘세속 사회적 관료화’ 경향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를 이 땅에서 증거해야 하는) ‘성사’(Sacrament)로서의 교회로부터 괴리를 빚는다. 즉,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시적 현존을 나누기 위한 성사의 집행자들이 영적인 삶은 결여된 채 세속적이고 행정적인 측면만을 우선적으로 수행한다면, 행정적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성사의 은총으로 새롭게 약동하는 교회의 생동감을 체현(體現)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교회법이 규정하는 협의의 의미로서, 주임 신부(pastor)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내맡기는 피라미드식 전권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는 심각한 성찰과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오늘날 수도자와 평신도는 단순히 사목적 피주체가 아니며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 내에서 존중받는 교회 운영의 동등한 동반자(파트너)라는 인식론적 전환이 실천적으로 담지되어야 한다. 둘째, 개인으로서 주임 사제는 교회의 공식 행정에 관한 지나친 업무와 과부화된 책임 때문에 인격적 배려(cura personalis)의 사목은 소수의 친분 관계에서만 나누게 됨으로써 영성적이며 전인격적인 통합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44) 셋째, 사목자인 사제들 간에 내적 역학 관계는 - 즉, ‘주임’과 ‘부주임’ 혹은 ‘보좌’ 신부 간의 차등적 권한과 그로 인한 제도적 권력에로의 의지는 - 소극적이고 비자발적인 사목 운영으로 구조화될 위험이 높다. 이는 또한 젊은 사제들의 사기 저하와 소외감, 그로 인한 윤리적 일탈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없지 않다.

 

피라미드식(상명하달식)으로서 운영되는 교회가 제도 교회의 유일한 양태라고 볼 수는 없다. 교계제도로서의 내적 위계질서를 보존하면서도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를 존중하는 본당 사제들이 평신도와 수도자와 더불어 소통하고 함께 운영하는 실례는 적어도 북미와 남미의 가톨릭교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45) 또한, 결코 적지 않은 한국의 사제들이 ‘봉사자’(servant)로서 또한 ‘제자’(disciple)로서 헌신적으로 사목하며 존경받아 왔다는 사례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해외의 사례 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활기찬 교회 공동체’는, ‘짐이 곧 교회이다’라는 사제의 일방적 소통과 자기중심적 행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그대들이 곧 교회이다’라는 섬김의 마음과 깨어 듣는 자세로 분별하는 사목자의 긴장감에 있다.46)

 

한편, 교회의 대형화로 인해서 인격적 관계가 소원해지고 대면적 접촉과 나눔의 기회가 엷어지는 교회의 구조적 문제47)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서 구조적이고 정책적이며 문화적인 대응을 강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48) 소공동체 운동은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제기해 온 일종의 대안이었다.

 

3) 소공동체에 대한 재조명

 

그런데 본당의 대형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꾸준히 제시되어 온 ‘소공동체 운동’은 바로 ‘교회 사목자의 행정 관료화’의 문제를 온당히 대면하지 않고서는 그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소공동체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들은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평신도들의 내적 복음화, 사도직과 리더쉽에 대한 감각과 능력, 친교와 봉사, 공동 기도, 계획과 실천, 영적 성장 등에 관해서 통합적인 분석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직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회 내의 권위(authority)와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는 소공동체의 활성화에 있어서 매우 실제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49) 이 같은 접근 방식은 ‘공동체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되짚어 보며 현실적으로 권력(power)과 권한 이행(empowerment)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성찰토록 도와준다.50) 이를테면, 평신도들의 작은 모임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께서 보다 더 자유롭게 일하시도록 신도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열린 대화를 수행하는 ‘파트너쉽’(동반관계)의 여정 안에서 그리스도의 권위를 힘입는 길이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가능하냐51)는 질문을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뿌리를 조명하고, 그 정신을 따라서 새로운 순례의 여정을 걸어나가야 한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고유한 뿌리를 간직해 왔다. 이백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은 사제가 없어 미사성제를 봉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바치기까지 천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수많은 이들의 불타는 신심과 순교의 삶은 (단지 사제들의 사목적 지도 혹은 제도적 관리 때문이라고 환원할 수만은 없으며) 천주 성령께서 친히 이 땅에서 땀 흘리시고 일하시는 구세사(a salvation history)의 여정 안에서 온전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본당이나 공소에는 신망 깊고 신자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준 회장님들이 많았다. 공의회가 평신도의 사도직을 규명하고 설명하기 이전에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역사 안에서 탁월한 평신도 리더쉽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본당의 총회장은 사목자인 사제의 수하인으로서만 일시적으로 기능하는 경향이 크다.52) 평신도 지도자들은 본당 공동체에서 신망 있고 존경받는 리더쉽을 구현하며 사제와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교회 신도의 중산층화

 

교회의 대형화와 더불어 교회의 중산층화 현상은 서울대교구의 불균등 발전을 드러내 보여준다. 특히, 오늘날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 교구 내에서 부자 교회(교구)와 가난한 교회(교구)의 간극으로도 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교회의 중산층화 현상은 바오로 사도가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성체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촉구했던 ‘친교 공동체’,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나타내는 ‘성사’로서의 교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대면하고 정의를 선포해야 하는 ‘봉사자’로서의 교회와 괴리를 빚는다.

 

2012년 서울대교구의 가난한 지역 본당의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은 서울대교구 전체 평균보다 훨씬 낮은 편이며, 소외 강남 지역 본당의 신자 비율은 평균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53) 서울대교구 본당별 복음화율을 보면, 가장 낮은 본당은 3.0%로 강북 지역에 있으며, 가장 높은 본당은 31.3%로 강남 지역에 속한다. 또한 가난한 지역의 본당에서도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신도들이 성당 활동의 주축이 되기 쉽고, 가난한 신자들은 대형화된 교회 내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지역 내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적에, 대개 주택이나 토지 소유자들로 구성된 본당 사목회의는 가난한 세입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인식하기도 어렵다. 서울대교구는 1988년부터 ‘도시빈민 위원회’를 설립했고, 1999년부터 재개발 지역의 가난한 신자들을 ‘특수 본당’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수립하였지만, 가난한 이들의 본당이 보다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소외된 신자’들에 대한 관심은 특수사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사목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마태 25, 40)임을 자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교계제도의 내적 차원에서 교회의 대형화, 성직자의 관료화, 교회의 중산층화 현상에 대한 성찰을 담아보았다. 이제 교계제도의 외적 차원에서 현대 사회 안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5) 교회의 사회 참여

 

교회의 사회 참여는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역사 안에서 항상 중요하였다. 이 세상 안에서 교회의 실존 양식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빛과 누룩’(마태 5, 14 ; 13, 33)인지? ‘바리사이의 (빛바랜) 누룩’(마태 16, 5)인지를 대면하는 것은 교회의 대사회적 관계와 참여의 근본 척도를 이룬다. 전자가 하느님의 무상적인 자기 증여와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을 따르는 촉매제의 역할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비해서, 후자는 세상 안에서 자기의 소유와 위신을 인정받는 데 묶여서 복음적 자유로 나아가지 못한다.54)

 

일제 강점 시기 동안 한국 천주교회가 정교분리 원칙에 매여 민족사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고난받는 민중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했고 교세 성장은 극히 저조하였다.55)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탄압에 대항하여 명동 성당이 민족 민주화의 성지로 인식되는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시민 사회의 영역 안에서 확고한 공신력의 단초를 마련해 나갔다. 이러한 민주화의 여정에서 교회 내의 다양한 사도직 단체들, 예컨대, 가톨릭 노동 청년회(1958), 가톨릭 농민회(1972), 천주교 도시빈민 위원회(1975),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1974),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1988), 천주교 여성 공동체(1993) 등이 결성되었으며 시민 사회 단체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가운데 사회복음화에 앞장서 나갔다.56)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천주교회는 세속적 차원의 양적 성장만을 꾀하지만, 대사회적인 참여의 질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57) 예컨대, 교회는 생명 윤리(피임, 낙태, 생명공학)에 관해서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해왔지만, 경제 문제(FTA), 생태 환경 문제(4대강), 안보 문제(미군 기지, 해군 기지) 등에 관해서는 교회 내부의 분열상을 보여주어 왔다. 일례로, 4대강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성명서를 반대하는 서울 대교구장의 이견 표출은, 한국 천주교 최고 의결기관 내부의 갈등과 대사회적 인식의 온도 차로 인한 분열을 노출하고 있다. 한편, 명동 성당 지역의 재개발 사업은 교회의 세속화라는 의혹과 비판이 일기도 한다.58) 기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기류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종말”59)과 “전지구적 위기 사회”60)를 함께 논하는 시대에, 공동선의 추구와 공동체적인 투신은 더 깊은 성찰과 공감과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종교의 사회 참여는 세속적인 권력 획득 혹은 기득권 유지가 우선적인 목적이 아니라 보다 더 큰 차원에서 ‘공동선’을 지향하고 있다(공의회 <사목 헌장> 26항, 76항 참조). ‘정교분리’만을 진부하게 주창하는 학자들과 ‘성속 이원론’만을 고상하게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현대 세계에서 ‘종교의 공적 역할’에 관한 온전한 인식과 실천은 늘 새로운 도전이 된다.61) 종교의 공적 역할로서 사회 참여는 다음과 같은 종교사회학적 이해가 요청된다.62) 첫째, 현대 사회에서 세속적인 권력을 독점하려는 국가 정부가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경우 종교는 하느님의 모상이 배어 있는 피조물 인간의 존엄성과 그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맞서야 한다. 둘째,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시장 자유주의의 횡포에 맞서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존엄을 갖고 노동하며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점점 더 분화되고 전문화되며 - 연대성과 보조성의 개념을 상실하고 - ‘자율성’만을 강조하는 제도적인 분야들(이를테면, 의학, 생명공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미디어, 영상, 음악, 연극, 대중문화, 광고 등)이 ‘공동선’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촉구해야 한다. 넷째, 환경 파괴에 맞서 창조주의 정신으로 생태계를 보전하고자 전 인류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한편, 교회 차원에서의 사회복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복지시설은 1960년대 43개 기관이었는데, 2008년 현재 901개에 이르고 있다.63) 그런데 교회는 그것이 단지 일시적인 구호품 지급이나 시혜적인 자선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 지원 그 자체보다 (창조주의 모상이 우리와 똑같이 담겨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성 회복이 더 중요하므로, 이러한 섬김의 정신이 결핍된다면 그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복음화라고 일컫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가 제도화된 사회복지 기관에 관여하며 관료적 행정으로 치우칠 적에, 복음 정신을 구현하는 인격적 사랑이 배제될 수 있는 위험성을 자각해야 한다.

 

 

5. 나가는 글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2012년 교계제도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새로운 복음화”의 권고를 상기시키며 우리 한국 천주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먼저 하느님 말씀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엔 그 말씀과 자신의 삶을 연결해 생활 안에서 하느님 말씀이 구현되는 체험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64) 즉, 복음의 내면화와 실천의 체험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 실존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화의 본질적 사명의 관점을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접근해볼 때,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복음화”라는 개념의 적용은 한계적일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65) 한국 교회는 바로 우리의 현실 안에서 주체적인 자각과 실천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하는 육화(incarnation)의 미션, 곧 토착화(inculturation)의 지상 과제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4년 작성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목의안>과 2000년 ‘서울대교구 시노드’에서 제안된 문건들은 공의회의 정신을 주체적으로 계승하며 자립교회로서 보다 더 성숙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66) 그러나 그에 대한 실천적 담론의 부재와 후속 프로그램의 결여는 그간 분명한 한계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우리의 새로운 출발과 도약은 바로 우리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사건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 특히 16개 교구의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온 서울대교구는 질적 성숙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과 쇄신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의회가 제시한 ‘하느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신비체, 그 친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계제도의 내적 쇄신, 그리고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의 전환이 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교계제도의 내적 쇄신이 요구된다. 이것은 한국적(유교식) 권위주의를 넘어서 그리스도적 권위로써 내적 복음화를 실현하는 길이다. 언젠가 몇몇 주교님들께서 양로원에 방문하여 평신도 노인분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사진이 《가톨릭신문》에 실린 것을 보았다. 대면적이고 인격적인 차원에서 발견하게 되는, 교회 지도자들의 따듯하고 정성 가득한 성품이 교회 조직 차원에서도 실현되도록 교회 운영 방식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 이것은 또한 관료제화의 장벽과 가부장제적 권한 의식을 넘어서려는 구조적 쇄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교회 쇄신은 신학과 교회법적 체계 안에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보다 민감하게 들으며 배우는 가운데 실천적으로 담지될 수 있다. 2012년 사제 성화의 날, 원로 평신도 학자인 조광 교수는 “교회가 어머니와 교사의 역할 이전에 먼저 학생이 되라!”고 따끔한 충고를 나누었다. 현대 사회에서 땀 흘려 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 자기식의 개념과 언어를 내려놓고 - 제대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듣고’ 또한 민족사의 고난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순례의 여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의 현존을 증거하며 비로소 성장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과 온전히 하나 되어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지향하며 헌신하는 가운데 복음화의 열매를 맺어왔던 것이다. 한국의 교세 성장은 앞으로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참다운 복음화의 열매로서 구현되어야 한다.

 

교계제도 설정 이후 지난 5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 특히 서울대교구는 인적자원뿐 아니라 경제적 자립도의 측면에서 가히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아시아에서뿐 아니라 세계 교회와의 관계 안에서, 더 이상 ‘받는 교회’가 아니라 ‘나누는 교회’로 전환되어 왔다. 이제 한국 교회는 민족 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뿐 아니라 세계 교회의 복음화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시대적 소명을 받고 있다.

 

앞으로 미래 교회의 화두는 ‘나누는 교회’이다. ‘나누는 교회’로의 온전한 전환은 소유와 명예, 권력이라는 세상적인 방식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참으로 ‘섬기는 교회’(마태 20, 24-28)가 되는 여정을 함축한다. 그렇기에, 교회가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그 순례의 여정은 계속 진행 중이며, 천주 성령님의 인도 아래 새로운 모험을 맞을 채비가 필요하다. 기실, 이천 년 세계 교회사 안에서 가진 것이 많은 교회, 기득권에 매여 있는 교회는 -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난 서구 유럽의 세속화(secularization) 운동과 최근 미국 사회에서의 반종교적 문화(매스컴)의 반권위주의적 기류에서 볼 수 있듯이 - 미구에 의혹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백성들’ 중에서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도록,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실천하며,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소통하고, 함께 땀 흘리고, 그 모든 영광을 천주님께 돌려드리는 자유와 사랑의 여정을 걸어갈 때 새로운 도약과 쇄신을 맞이해 나가리라 믿는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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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사회학자인 피터 버거는 《종교와 사회》(The Sacred Canopy, 이양구 옮김, 종로서적, 1981 참조)에서 종교적인 세계관의 특성을 “개연성의 구조”(a plausible structure)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종교만의 고유한 세계관은 합리화와 전문화를 통해서 복잡하게 분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독자적으로만 존속할 수 없음을 논하였다.

 

2) 종교 개혁 이후 중세 교회의 변동기에 예수회를 창설한 성 이냐시오는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을 통해서 성삼위의 관상을 강조하였다. 세상의 선과 악, 사람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듣고 연민으로 바라보시는 성삼위의 마음을 헤아리는 내적 인식(interior knowledge)을 통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동반하는 사도직(apostolate) 혹은 구체적인 미션(mission)을 인식하기 위함이다. 예수회 전통 안에서는 사회 분석(social analysis)은 수도적 차원의 관상(contemplation)과 한 맥락을 이룬다. 이처럼 예수회의 사회 분석은 교회 현상을 단지 사회과학적 현상으로 축소시키는 ‘환원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3)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대교구사》, 분도출판사, 2011, 225~226쪽.

4) 임병헌, <교계제도>, 《한국가톨릭대사전》 1,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567쪽 참조.

 

5)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제안하는 ‘사회적 성찰성’은 본질 혹은 본체에 대한 사유에 천착하며 내성(introspection)을 강조하는 ‘철학적 성찰성’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적 성찰성은 사회구조와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조명 아래 다양한 사회적 실천의 가능성에 관한 역사적이며 전략적인 성찰을 지칭한다. 예컨대, 현대 세계의 조직 사회는 새로운 정보와 피드백을 제도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해 나간다(Anthony Giddens, Modernity and Self-Identity, Stanford University, 1991, p. 20). ‘교회와 성찰’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고, <힘을 북돋아주는 교회의 모습>, 《사목정보》, 2012년 1월 참조.

 

6)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781~810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

7) 앞의 책, 810항.

 

8) 로버트 벨라르민 추기경은 교회가 “로마 사회나 프랑스 왕국, 베니스 공화국만큼이나 가시적이고 명백한” 사회라고 주장하였다(애버리 덜레스, 《교회의 모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3, 39쪽).

 

9) 덜레스, 앞의 책, 39쪽.

10) 덜레스, 앞의 책, 39쪽.

 

11) 최덕기, <소공동체는 교회의 희망>,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소공동체》, 2012년 소공동체 지역 모임, 주교회의 소공동체 소위원회, 2012 참조.

 

12) 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알로이시오 피어리스 신부는 “교회는 위계적인 면이 있다”(The Church is hierarchical)와 “교회는 위계 구조 그 자체이다”(The Church is the hierarchical)를 구분해서 제시한다. 전자는 제도로서의 교회가 운영되는 통치 구조의 특성을 중요하게 수용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로 나아가는 측면을 강조하지만, 후자는 통치 구조만을 강조하는 중세 교회 신학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이 부각된다(Pieris, Aloysius s.j., “The Church in Sri Lanka during the Last Decade(2000-2009)” in a Supplement to F. Emmanuel Fenando’s Paper, 2010).

 

13) 아일랜드 출신 사회심리학자인 오무크 신부는 “제도 교회는 수도자와 성인 신도들을 계속해서 어린아이 취급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 대인적인 차원과 제도적인 차원 모두에서 성찰할 과제이다. 성직자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경어를 사용하는 행위는 인격적인 차원에서 성찰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의 가르침을 제도적인 차원에서 규정한 것과 신자들이 자신의 양심을 따라 신실하게 사는 것과의 간격이 크다면, 양식을 갖춘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권위를 보다 더 자유롭게 행사하기 위해서 교회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미국 교회에서 ‘종교인의 의식 변화와 권위’에 관한 다양한 연구로는 Greeley, Andrew, “Can Catholics Think for Themselves? Many Americans Doubt It.”, Commonweal, 2005, Sept. 9th ; Robert Wuthnow, Consciousness Reformation, University of Berkeley, 1976 참조).

 

14) 덜레스, 앞의 책, 44~45쪽

 

15) 오늘날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가 정치 및 시민 사회 작동의 기본 원리가 되어가는 현대 세계에서 위계(hierarchy)와 권위(authority)에 관해서는 끊임없는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성스러움에 관한 인식 또한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시대적 열망과 유리되지 않는다. 즉, 성스러움은 특정한 직위와 권위에 기인하는 제도적인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인 카리즘의 다양한 형태로서 구현되며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보편적 측면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기류가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등의 비도덕적 스캔들로 얼룩져 있는 미국과 유럽의 교회는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서 ‘완벽한 사회’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어 보이고 교회의 권위가 급격하게 실추되고 있다(Charles Taylor, A Secular A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그리고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2009년 11월 20일 가톨릭 철학자이며 세계적인 사상가인 Charles Taylor와 Francis George 추기경의 공개 대담 참조).

 

16) 이브 콩가르, 이철희 번역,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사목》 1967년 5월. 이철희 신부가 ‘비적’으로 표현한 것을 필자는 ‘신비체’로 기술하였다.

 

17) 콩가르, 앞의 글.

18) 콩가르, 앞의 글.

 

19) 칼 라너(1904~1984)가 제시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은 여전히 제도교회의 입장에서는 풀리지 않는 난제이며 화두이다. 종교다원화 시대에 타 종교인들을 존중하는 자세는 고무적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사랑’을 동시대인들에게 나누고 싶은 선교에 대한 열정이 높지 않은 현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기실, 라너는 ‘하느님의 신비’를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 열정적인 신학자였다.

 

20) 교황청이 교구(dioceses)와는 달리 지목구(Praefectura Aposolica)와 대목구(Vicariatus Apostolicus)를 설정하게 된 것은 가톨릭 선교 역사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로마 교황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선교의 의무와 함께 교회적 권리를 특권으로 인정하는 ‘선교 보호권’(padronado)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이 두 가톨릭 국가는 식민지 쟁탈전에서 영국, 프랑스, 화란 등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밀려나는 상황에서도 그 특권만을 유지한 채 프랑스와 같은 타 국가의 선교 활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이에 교황청은 이들 국가가 주장하는 보호권의 경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선교 지역에 교구 제도가 아닌 대목 제도를 신설하여 교황청의 직접 선교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조광, <서울대교구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사제 성화의 날 발표 논문. 2012, 6. 15).

 

21) 한영만, 《서울대교구의 어제와 오늘 - 정식 교계제도 설정 50주년》, 빅벨출판사, 2010, 3쪽.

22) <교계제 설정에 임한 전국 교구장 사목 방침>, 《가톨릭시보》 1962년 7월 1일자.

 

23) 2012년 9월 21일, “한국 천주교회와 교계제도”라는 주제로 열린 교계제도 설정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논평을 맡아주신 박문수 박사님의 지적에 감사드린다.

 

24) 참고로, 교세 현황에 관한 통계 자료는 1962년 3월의 직전 연도인 1961년에서 가장 최근의 통계 자료가 발행된 2011년까지 5년 단위로 분류하여 표시하였다. 단, 1961년 사료 중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는 경우 1962년 자료를 추가하였다.

 

25) 교세 통계 현황표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연도의 신자 수를 그 전 해의 숫자와 대비한 비율을 신자 증감률로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내부적인 차원에서 교세 변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본 논문에서는 서울 인구 대비 서울대교구 신자 수를 비율로 담아 보았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화 및 도시화를 배경으로 가톨릭교회가 인구학적으로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26) 교회 내 많은 학자들이 교회 성장의 기본 동인을 교회의 사회정의 참여에서 찾는다(강인철, 《한국 천주교회의 쇄신을 위한 사회학적 성찰》, 우리신학연구소, 2007 ; 박문수, <안정기 신드롬에 빠진 한국천주교회와 그 진로>,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심포지엄 발표문, 2010 ; 심상태, <제삼천년기에 비추어 본 민족 복음화와 세계화>, 《사목》 1996년 6월 ; 오경환, <교회의 목적과 예언직의 중요성>, 《사목》 1993년 12월 등 참조).

 

27) 기실,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시기 동안 전반적으로 종교의 부흥이 일어났다. 그것은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 등 근대화의 과제들이 압축적으로 진행되면서 사회적 불안과 박탈감, 공동체의 해체와 고립 등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불안정성을 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노길명 · 오경환,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가톨릭신문사, 1988 ; 이원규, 《한국교회와 사회》, 나단출판사, 1998 참조).

 

28) 차동엽, <21세기 종교 환경에 대한 거시적 성찰>, 《빛두레》 634(2003. 9. 4)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국, 《서울대교구 본당사목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 설문조사 보고서》, 2012 참조.

 

29) 인천교구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인 차동엽 신부는 “40대 미만 층의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 가톨릭교회가 ‘재미없고’(전례), ‘고리타분하고’(교리), ‘부담스럽기’(교회법) 때문에 빠져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하며 “틀째 확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차동엽, <21세기 종교 환경에 대한 거시적 성찰>, 《빛두레》 634(2003. 9. 4)).

 

30) 우리신학연구소, 《한국 여자수도자 인원현황표》, 여자수도자장상협의회 보고서, 2009. 이 자료는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 동안 한국의 여성 수도자의 입 · 퇴회자, 수련자, 유기서약자, 종신수련자 등의 숫자를 보고하고 있다.

 

31) 최혜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 수도생활의 변화와 쇄신>, 《신학과 사상》 55, 2006년 참조.

 

3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96년 3월 25일 성모 영보 대축일에 <봉헌 생활> 문헌을 발표하셨는데, 제48항 “봉헌 생활과 지역 교회와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강조하셨다. “공의회 이후 여러 문서들에서… 교구 사목의 유기적인 발전을 위하여 봉헌된 사람들과 주교들 사이의 협력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천명합니다. …각 수도회의 정당한 자치권이 인정되며, 자체의 규율을 따르고 영성적 사도적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게 됩니다. 이 자치권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은 교구 직권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주교들은 봉헌 생활의 은사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존중하고 교구 사목 계획에 그들의 몫을 부여해야 합니다. 봉헌 생활이 결여된 교구는 그 생활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많은 영성적 은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적절한 장소, 특정한 사도직 활동과 사목적 접근 방법 등의 결여뿐 아니라, 대다수 수도회들의 특성인 선교 정신이 약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33) 서울대교구는 70년대 말까지 해외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일례로, 김수환 추기경은 1977년 독일 미제레올(Misereor) 선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요청해서, 협조금 10만 불로 서울시 철거민들의 복음자리를 마련하였다. 《예수회 신부 정일우 이야기》, 제정구의원기념사업회, 2009 참조.

 

34) 이상준, <한국 천주교 해외 원조 실태조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09 참조.

35) 이상준, 같은 글.

 

36) 노길명 교수는 “한국 교회가 현실 문제에 발언하기 시작한 것은 공의회의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가해진 정치권력의 위해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노길명, 《한국사회와 종교운동》, 빅벨출판사, 1988, 36쪽). 이와 같은 해석은 제도 교회에 기반을 둔 역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민중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JOC, 가톨릭농민회, 일부 선교 사제들 등의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삶의 자리 최전선에서 이미 가난하고 소외받는 민중과 함께 연대하며 고통과 핍박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37) 하지만 이는 유교적 혹은 가부장적 위계질서 의식을 편안하게 내면화한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에 국한될 수 있다. 오늘날 탈권위주의를 주장하거나 포스트모던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40대 이하)는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38) ‘복음화’(evangelization)는 두 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비종교인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선교 활동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의 자리 혹은 사회 환경을 복음의 빛으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국 종교사회학의 원로학자인 오경환 신부는 ‘복음화’의 두 가지 차원 모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오경환, <해방 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과 전망>, 《사목》 1990년 2월 참조).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 제창하신 “새로운 복음화”를 강우일 주교는 “근본적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새롭게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강우일, <교계제도 설정 50주년 의미와 전망 :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특별 인터뷰 : 반세기 동안 일군 놀라운 양적 성장! 내용적으로도 그만큼 성장했는가?>,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4일자 참조), 이러한 견해 역시 복음화의 두 가지 차원을 조화롭게 수용하고 있다. 우리는 복음화를 개인 구원 혹은 사회 구원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39) Rodney Stock, Roger Finke, William Bainbridge, Lawrence Iannaccone, Steven Warner 등의 개신교 사회과학자들은 미국의 종교 다원주의 시장론을 예찬하고 있다. 한편, 도날드 밀러와 테쓰나오 야마모리가 저술한 《왜 섬기는 교회에 세계가 열광하는가? 기독교적 사회참여의 새로운 모델 - 성령운동》(김성건, 정종현 번역, 교회성장연구소, 2008)은 ‘사회 참여의 뜨거운 열정’이 성령 강림의 은사로서 교회 성장의 원동력임을 새롭게 강조하고 있다.

 

40) 최석우 신부는 교계제도 설정 25주년을 기념하는 1987년에 교회 대형화의 문제를 이미 심각하게 제기하였다(최석우, <교계제도 설정 25주년 회고와 전망 : 여기서 멈출 것인가>, 《경향잡지》 1987년 4월).

 

41) 강인철, 앞의 책, 12쪽 참조.

42) 배경민, 《새로운 지평을 찾는 교회 : 시대의 표징을 찾아서》, 가톨릭 출판사, 2003, 18쪽.

43) 심상태,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와 전망>, 《사목》 2001년 8월, 24~25쪽.

 

44) 사제들의 인간적인 성숙도 역시 사목상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겠다. 5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셨던 한공렬 주교는 <공의회 정신에 의한 사제상 - 교회의 자아비판>(《사목》 1967년 5월)에서 사제의 위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사제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다. 우선 신자들의 눈에는 사제들이 정상적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도달하지 못한 미숙한 존재로 반영되는 것이다. 그들이 신앙의 눈으로 사제를 볼 때에는 그 신적 권위를 인정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제를 인간으로 볼 때 과연 존경할 만한 인격의 소유자들로 인정하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어서… 그들의 불만은 사제들이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난문제에 대하여 무감각하며, 시대적 요청에 대하여 백지상태이고, 사회 진보에 대하여 사제들이 적응하려는 태도가 너무나 미온적이라는 데 있다.”

 

45) 필자가 학위 과정 동안 머물렀던 보스턴은 미국 내 대도시 중에서도 가톨릭 교세가 가장 강한 편이었지만, 2001년 사제의 아동 성추행(Sex Scandal) 사건 이후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급격하게 실추되었다. 보스턴 대교구는 2001년까지 메트로 보스턴 지역에 2백만 이상의 가톨릭 신자, 362개의 본당, 901명의 사제, 218명의 종신 부제, 120개의 초등 · 중등학교, 11개의 병원 및 의료센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2002 Archdiocese of Boston Directory 참조). 그런데 섹스 스캔들의 후속 조치로 교구 총대리 주교가 2002년 5월 말 교구 내 37개의 본당을 일시에 폐쇄하도록 명령하고 나서, 교회법적으로 또한 민사법적으로 소송 중인 사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결과, 2006년 봄에는 O’Malley 추기경이 TV에 나와 보스턴 대교구가 46million $(한화 500억 원)의 적자를 안고 있다고 밝히며 파산 선고를 하였다. 섹스 스캔들이 폭로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본당 폐쇄를 명령받았던 6개의 본당에서 소수의 신자들이 본당 폐쇄를 거부하고 있다. 한편, 가톨릭교회의 공적인 권위는 실추되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친교로서 교회의 모습은 쇄신된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 즉, 본당 공동체에서 ‘사목 운영회’와 ‘재정 운영회’를 사목자와 평신도, 수도자, 스텝들이 함께 논의하며 분담해서 참여하는 공동의 리더쉽을 구성하고 있는 경우를 필자는 많이 목격하였다.

 

46) Romero, Oscar, The Church is All of You, Winston, 1984 참조.

 

47) 수도 사제와 여성 수도자들 역시(본당이 아닌 학교, 병원, 복지관 등의 기관에서 운영을 책임지고 종사하는 경우) ‘관료제화 경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고된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보다도 관료제화되어 있는 기관(institution)을 운영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48) 백여 년 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 사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조직 체계가 바로 ‘관료제’(bureaucracy)라고 인식했는데, 인간은 바로 그렇게 합리화된 시스템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정해진 법규와 규칙만을 따라야 하기에 “쇠철창”(iron cage)에 갇혀 사는 비극적 운명에 처해 놓여 있다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가장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social networks)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들은 (관료제와 같이 공식적이며 제도적인 형식을 넘어서) 비공식적인 쌍방 소통을 바탕으로 탈권위, 탈중심, 분화와 연결을 통한 ‘유연한 조직체’, ‘집단적 지성’과 ‘효율성’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성교회 역시 공식 제도로서의 교회 체제를 보존하며 관료제적 형태를 쇄신하는 가운데, 비공식적으로 결성되는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성화시킬 필요와 의무가 있다.

 

49) 모든 인간 조직에서 ‘권위’의 행사는 의사 결정 과정(decision-making process)에서 발현된다. ‘얼마나 의견이 온전히 수렴되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문제는 조직 리더쉽의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판별하는 척도가 된다. 아울러, ‘왜 수렴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accountability)은 보다 깊은 소통을 통해서 위계적인 권위주의를 해소시킬 수 있는 운영 원리로 제시되고 있다.

 

50) 평신도 사도직의 원천은 성령의 은사(카리즘)로써 힘을 얻는(empowered) 데 있으며 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권한의 공유와 실천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Mary Gautier, “How parish life has changed”,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11, Oct., 11 ; Archdioces of Baltimore, “Criteria for a Good Parish”, Origins, 23(3), 1994, June, 2 참조.

 

51) 소공동체 활성화에 가장 중요한 요인을 “자발성”과 “자율성”, “의사소통적 참여” 등으로 사목자들과 연구원들은 한결같이 손꼽는다(“소공동체” 특집을 다룬 《사목》 2007년 4월호의 엄재중, 윤민구, 이준혜, 전원, 최원오 등 참조).

 

52) 서울대교구 사목국에서 본당 총(부)회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던 2010년 연구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17개 본당, 651명의 대상자 중 259명이 응답하였다(응답률 39.8%). 총(부)회장을 맡게 된 경로로는 “본당 신부님의 권유”가 75.5%로 가장 높았으며, 총(부)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에 관하서 가장 많은 응답이 “사제의 무관심과 배려 부족”(21.6%)으로 나타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이 31.8%에 해당한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국, 《서울대교구 본당사목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 설문조사 보고서》, 2012, 54, 55, 60쪽). 한편,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하여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에 관한 질문에 관해서는 총(부)회장, 남성구역-반장, 여성 구역-반장이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가 제법 크다. “사제의 관심과 지도”에 대한 응답은 총(부)회장은 53.6%, 남성 구역-반장 34.3%, 여성 구역-반장 24.2%를 이루었다(상게 보고서, 71쪽). 즉, 주임 사제와 가장 가까이 활동하는 총회장일수록, 본당의 지역 단위인 소공동체 역시 사제들의 관심과 지도가 최우선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았으며, 여성 지도자들은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에서 사제에 대한 의존도를 가장 낮게 인식하고 있었다.

 

53)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국의 《서울대교구 본당사목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 설문조사 보고서》(2012, 199쪽)에 의하면, 9개로 선정된 표본 중에서 ‘강남’에 속하는 E 본당은 복음화율이 22.2%에 해당하는데 비해서, 비강남 지역인 B 본당은 복음화율이 7.7%에 머물고 있다. 참고로, <표 2>에 의하면, 서울대교구의 복음화율은 평균 13.6%인 점을 감안하면, 강남 지역의 E 본당은 서울 평균보다 +8.6%p 앞서며 비강남 지역의 B 본당은 평균보다 -5.9%p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자 지역의 본당과 빈자 지역의 본당 간의 복음화율 역시 양극화 구도로 설명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본당의 교세 현황 변화에 대해서 사회과학적으로 엄밀히 접근할 때, 성직자의 태도, 사목회의 리더쉽, 신자 공동체의 특성, 지역 사회와의 관계 등 ‘통제 요인’별 분석(Structural Equation Model Analysis)이 포괄적으로 필요하다.

 

54) 기실, 순례자로서 교회의 실존 양식은 이 둘의 긴장 관계 안에 있다. 교회는 겸허하게 ‘죄’와 ‘은총’의 신비를 함께 고백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리우스가 전개한, “인간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의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논박하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변혁 운동의 한계는 이데올로기에 기인한 정당성 구조에 집착하는 집단적 인식이 소통과 공감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 내 사회 운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성찰되어야 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죄와 은총’에 관해서는 근본주의자적인 입장에서 이원론을 견지할 것이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과 수도 전통의 영성을 바탕으로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긴장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에 따른’ 신비적 참여의 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55) 조광, 앞의 글.

56) 오경환, <공의회 이후의 한국 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1,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487~496쪽 참조.

57) 박문수, 앞의 글.

58) 김란기, <명동성당 관광특구 재개발 - 추기경의 선물인가, 한국 천주교의 오욕인가>, http://suyunomo.net/?p=8440, 2011 참조.

59) 다니엘 벨, 《이데올로기의 종언》, 범우사, 1999.

60) 울리히 벡, 《글로벌 위험 사회》, 길, 2010.

61) Jose Casanova, Public Religion 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1994, p. 1.

 

62) Casanova의 위의 책과 Habermas, Jurgen, “Secularism’s Crisis of Faith : Notes on Post-Secular Society” in New Perspectives Quarterly 25(4) : 17-29, 2007 참조.

 

63) 유영준, <2008년 가톨릭 사회복지시설 현황조사 분석결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08.

64) 강우일, 앞의 글,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4일자.

 

65) 복음화의 본질적 사명의 관점을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해 볼 때,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복음화”라는 개념의 적용은 한계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먼저, 이론적 차원에 있다. 서구 세계는 과거 그리스도 문화를 향유했지만, 오늘날에는 종교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이념의 폭력이 미치고 있으며 성경의 기본조차도 모르는 종교적 문맹인(religious illiterate)이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우선적으로 이들 서구 유럽 사회에서 종교적 문맹인들을 교화시키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 해방 이후 - 늘 급속한 현대화와 정체성 위기를 겪어왔지만, 서구적 종교 위기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한다. 둘째, 1987년 최석우 신부가 지적했듯이 한국 교회의 주체적 자각과 노력이라는 실천적 담론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 간의 관계에서 주체적이며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종속 관계적인 이념 수용은 토착화(inculturation)를 강조한 공의회 정신에도 위배되는 미성숙함을 반영한다.

 

66) 서울대교구 시노드에 관해서는 박선용, <교구 시노드, 그후 - 서울대교구>, 《경향잡지》 2011년 1월 참조.

 

[교회사 연구 제40집, 201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오세일(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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