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3,1-12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2016. 12. 4. 대림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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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6-12-02 ㅣ No.2152

그때 세례자 요한이 유대아 광야로 와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습니다!” 요한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어떤 이가 광야에서 외치고 있다. ‘주님을 위하여 길을 닦고 그분이 오시도록 곧은길을 내어라.’ 요한은 낙타털로 지은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매었으며, 메뚜기와 들 꿀을 먹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아 전역과 요르단 강 부근의 모든 지역에서 그에게 왔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였고 그는 요르단 강에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광야는 상징적으로 자아의 내면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사람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회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죄의 상태에 있음을 알고 죄에서 돌아서는 일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다. 단순히 윤리적 잘못을 반성하는 정도를 회개라고 하지는 않는다. ‘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상황이며, 성령을 잃은 상황이며,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상황이다. 죄에 빠진 사람은 이성과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지니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겪는 삶의 모든 부조리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하늘나라는 바로 여기 에게 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광야로 나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을 뵐 것이다. 하느님을 뵙는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인용된 성서는 이사야서 40:3이다. 이사야서 40장은 사람의 덧없음과 하느님의 무궁한 권능을 대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할 것을 호소한다. 하느님께서 오실 곧은길은 회개하고 광야로 나선 자아(自我)이다.

 

낙타털 옷은 회개, ‘가죽 띠는 신덕, ‘메뚜기는 망덕, ‘들 꿀은 애덕을 상징한다. 요한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회개와 하늘나라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요한에게 오는 사람들의 범위는 예루살렘’, ‘유대아’, ‘요르단 강 부근의 모든 지역으로 점점 확대된다. 요한의 소식은 결국 온 인류를 향하고 있다.

 

는 회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죄를 고백하는 것이 곧 회개이다. ‘란 하느님의 부재로부터 오는 근본적인 부조리이다. 죄인의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하느님을 찾아 광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세례는 회개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물질적 표징으로서 세례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광야로 나아가 하느님을 뵙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사람은 죄의 자각 회개 광야 하늘나라의 순서로 영적 여정을 걷는다. ‘요르단 강은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상징한다. 회개는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사건이다.

 

요한의 삶이 보여주는 상징성을 좀 더 부연하겠다.

 

1) ‘낙타는 가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오직 주인을 믿고 용감하게 여행길에 오른다. - 회개

2) 신덕이란 사람의 지혜(=이성)가죽 띠로 묶어놓고 하느님의 지혜(=성령)를 따르는 일이다. “내 양들을 돌보시오.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합니다. 당신이 어릴 적에는 언제나 채비를 갖추고 어디든지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이를 먹으면 당신은 팔을 벌리고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묶어서 당신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데려갈 것입니다.”(요한복음 21:18) ‘나이를 먹으면은 성령의 지혜인 신덕(믿음)을 가리킨다. 신덕은 얼핏 이성을 속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성을 자유롭게 한다.

3) ‘메뚜기가 구미를 당긴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것을 잡으려면 전후좌우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음식으로서는 별로 신통치 않다. 우리가 겪는 삶의 현실이 이러하다. 망덕은 신통치 않은 삶의 현실을 영적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변화시킨다.

4) ‘들 꿀은 아무도 모르는 깊은 굴속에서 발견되며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단맛을 제공한다. 이것은 자아의 깊고 어두운 내면에서 샘솟는 하느님의 사랑과도 같다. - 애덕

 

 

요한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뱀과 같은 사람들이여!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누가 말해주었습니까? 여러분이 회개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들을 실천하시오. 아브라함이 여러분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죄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도끼가 나무를 뿌리째 자르려고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라져서 불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회개하였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나보다 뒤에 오는 사람은 성령과 불로 여러분에게 세례를 베풀 것입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합니다. 나는 그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는 곡식을 골라내는 키를 지니고 있어서 알곡은 곳간으로 모으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워버릴 것입니다.”

 

요한은 놀랍게도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을 거절한다. 마치 세례를 받는 일에 조건을 달거나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것 같다. 2:4절에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등장하였는데 대체로 수석사제들은 사두가이파,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에 속한다. 이들은 세례자 요한을 조사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가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것을 알고 세례를 받고자 하였던 것 같다. 요한은 이를 기회로 삼아 세례라는 형식적인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고 실질적으로 영적 활동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누가 말해주었습니까?’라는 질문은 그들의 상급자인 수석사제들와 율법학자들을 지칭한다.

 

은 창세기 3장에서 이브를 유혹한 바로 그 뱀이다. 권력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의 지혜를 하느님의 지혜인 양 가르치며 형식적인 예배에만 골몰한다. 후에 예수는 이들을 두고 이렇게 지적한다. “이 백성이 말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나를 예배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나의 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마태오복음 15:8-9) 예수가 말하는사람의 규정이 바로 선악과나무이며, 이에 대비되는 하느님의 법은 성령이며 생명나무이다. 사람은 회개하는가, 회개하지 않는가에 따라 생명나무가 되기도 하고 선악과나무가 되기도 한다. 뱀은 사람의 지혜(=오만)을 상징적으로 비유한다. ‘오만이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행위이다. 오만을 버리고 행동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세례라는 형식적 행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요한이 집어든 은 흙이 단단하게 굳어서 이루어진 광물질이되 성령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부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우월감을 지닌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자부심은 부서지는 흙처럼 덧없는 것이다. 사람은 어차피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아닌가? 사실 어떤 민족이라도 나름대로 혈통, 문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돌, 곧 자신이 증언하고 있는 성령에 주목하기를 촉구한다. 성령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을 낳는다. 예수는 혈통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마태오복음 1:1)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오만의 어리석음으로 하느님의 징벌을 자초한다. 사람은 누구나 선악과나무가 멸망하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과 재물에 재미를 붙이고 분명히 다가올 멸망의 운명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그래서 요한은 살상의 도구인 도끼를 들어 선악과나무는 반드시 죽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욕망에 뿌리를 둔 나무는 당장은 무성하지만 곧 하느님에 의해 잘려질 나무이다. 하느님께서 당장에 그 뿌리를 자르지 않으시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오직 성령에 뿌리를 내리는 생명나무만이 죽음의 운명에서 해방되어 살아있다.

 

마태오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결국 세례를 받았는지 여부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요한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마태오는 요한의 말을 알아듣는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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