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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시간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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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20 ㅣ No.958

[영화 속 신앙 찾기] 시간의 종말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만 요란한, 인적이 드문 바닷가. 검은 수단을 입은 한 사내와 조선시대 상복 차림의 사내가 바닷가 양 끝에서 천천히 걸어와 마주하고, 첼로로 장엄하게 연주하는 올리비아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가운데 ‘예수의 영원에의 송가’가 울려 퍼진다.

 

예년에 없던 무더위가 맹위를 떨쳤던 한여름의 더위가 잦아든 8월의 마지막 날. 여름을 마무리하는 비가 내리고 서늘한 가을의 기운이 한 걸음 다가온 명동성당 대성전의 밤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아련한 선율로 가득 채워졌다.

 

1866년, 아홉 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비롯한 8천여 명의 천주교인이 이 땅에서 순교했다. 이른바 ‘병인박해’로 불리는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금부터 150년 전이다. 특히 올해는 우리가 프랑스와 수교를 맺은 지 1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이날 밤, 궂은 날씨에도 6백여 명이 대성전을 찾았다. 그들은 하느님과 복음을 전하고자 이 땅을 찾은 사제들과 믿음을 지키려고 피 흘린 순교자들의 숭고한 삶과 죽음을 화면에 펼쳐진 장엄한 영상과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클라리넷, 그리고 가톨릭합창단의 선율로 가슴에 담고 집으로 돌아갔다.

 

 

19세기 조선과 파리외방전교회

 

19세기 초, 멀리 프랑스에서 동양으로 선교를 떠났던 사제들이 있다. 특히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은 이 땅의 형제자매들의 요청에 따라 복음을 전하려고 처음으로 조선을 찾았고, 당시 천주교를 외세의 침입이라 여겼던 조정에 의해 박해받았다. 그 과정과 이야기를 찾아 화면에 담아낸 작품이 김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종말’이다.

 

연출자 김 감독은 첼리스트 양성원과 함께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를 찾아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을 찾고, 교회사 연구자와 우리나라에 와서 활동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사제를 만나 인터뷰하며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조선 선교와 순교에 대한 흔적을 찾아나선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전교회를 찾은 양성원은 한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파리외방전교회 원장으로 있는 홍세안 신부에게서 한국에서의 선교활동과 조선으로 파견되었던 사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복도 벽에 걸린 초상화 속의 사제들은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조선에서 순교했음을 알게 해준다.

 

 

자생적으로 움튼 한국 천주교회

 

선교사를 통해 복음이 전해진 것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서학을 통해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세계 유일의 사례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매우 특별한 교회사가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역사다.

 

1836년 1월 12일 파리외방전교회 모방 신부가 정하상 바오로의 도움을 받아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 중국에서 조선으로 입국한다. 이후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가 입국하며 조선의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양성원은 조선에서 9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샤스탕 신부의 고향을 찾아 후손에게서 그의 흔적을 만난다. 그리고 모방과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 이후 조선을 찾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의 이야기를 화면에 담았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천주교는 자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뒤에 신자들은 교황청에 사제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심한 박해에도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다.

 

영화 ‘시간의 종말’은 조선시대의 박해 과정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흔적과 이름 없이 사라져간 신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프랑스 현지에 남겨진 기록과 후손, 연구자, 사제들의 증언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조선에서 목숨을 바쳐 희생된 샤스탕 신부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모든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새남터에서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꼭 150년 전인 1866년, 베르뇌 주교와 볼리외 신부를 비롯해 당시 조선에서 활동하던 열두 명의 프랑스 사제 가운데 아홉 명의 사제와 8천여 명의 신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이 박해는 단순히 종교 탄압이 아니라 근대로 나아가는 중요한 변혁기라 하겠다.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고, 그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게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준 것이다.

 

당시 새남터에서 희생된 이들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하고 그곳에 묻혔다. 1898년 완공된 명동성당의 벽돌은 그곳 새남터의 모래로 만들어졌다. 새남터에서 희생된 수많은 분들의 기억과 유전자가 지금 명동성당 대성전에도 뜨겁게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 초반부에 수단을 입고 등장하는 조선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상복차림의 외국인 사제는 조선에서 온갖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 사제를 상징한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재현이나 영상에서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상징들을 만나게 된다.

 

 

음악과 영화로 다가온 조선 초기교회

 

이 작품은 특히 첼리스트 양성원의 제안으로 제작되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그가 자신의 기억 속의 파리외방전교회와 한국 천주교회의 흔적을 찾아가는 기록을 제안했다. 김대현 감독이 흔쾌히 받아들여 시작된 여정이 ‘시간의 종말’에 담긴 것이다.

 

양성원은 첼리스트로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 그는 조선시대 화가 오원 장승업에서 이름을 가져온 ‘트리오 오원’ 합주단을 결성해, 클라리넷 연주가 채재일과 함께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공연했다.

 

이 곡은 메시앙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며 느꼈던 죽음의 공포를 성경으로 묵상하며 요한 묵시록에서 영감을 받아 여덟 개로 작곡한 작품이다.

 

지난 6월 1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행사 ‘시간의 끝에서 세상의 희망을 노래하다!’에서는 트리오 오원의 연주와 함께 가톨릭합창단의 ‘무궁무진세에’와 ‘선교사를 위한 찬가’가 공연되었다.

 

함께 공연된 합창곡 두 곡은 19세기 프랑스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구스가 자신의 신학교 친구였던 다블뤼 주교를 포함해 한국의 초기교회를 이끌었던 앵베르 · 모방 · 샤스탕 사제의 순교 소식을 듣고 만든 작품이다.

 

당시 동양으로 파견되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바친 곡으로 작곡가의 격려와 추모가 담겨있다. 이 곡들은 영화 ‘시간의 종말’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여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행사에서 우리는 ‘시간의 종말’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명동성당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상영된 것은 아쉽게도 53분으로 요약, 편집한 것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만 감독이 만든 온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워할 것은 없다. 이번 가을 극장에서 67분 분량의 작품이 개봉될 예정이다. 더불어 트리오 오원이 6월 1일 공연한 실황 앨범이 발매되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음향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감상해야만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시간의 종말’을 제대로 만나는 법

 

이 작품을 만나 글을 준비하며 필자는 한국 천주교회가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성당을 비롯한 여러 곳에 갖춰진 각종 상영시설의 미흡함, 전국의 성지 가운데 일부의 무성의하고 비협조적인 태도, 천편일률적으로 꾸며놓은 사적들, 그리고 교회사에서 채 정리하지 못했거나 곳곳에 흩어져 학자들조차도 보기 힘든 사료들을 대하며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영화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료들과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선교를 떠나오기 전에 이미 저는 하느님을 위해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교님이 당신을 따라오라고 저를 불러주셨을 때 저는 순교의 영예를 받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 정지욱 이냐시오 - 영화평론가. 일본 리웍스(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과 푸드티비 푸드필름 페스티벌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심 심사위원과 일본 유바리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본심 심사위원, 영화 시민연대 대표를 맡았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정지욱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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