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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한국교회의 시복 운동: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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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5 ㅣ No.1579

[계속되는 한국교회의 시복 운동]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 전문).

 

시복시성은 한국 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고, 우리 신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성인이란 말을 떠올릴 때 드는 첫 생각은 역사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너무 다른 세상에서 다르게 산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너무 먼 존재들처럼, 마치 추억의 책장처럼 갈무리되었다는 느낌이다. 또 순교자성월에 성지를 순례할 때에만 기리는 분들, 그때 말고는 내 삶과 관계없는 분들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닌지?

 

서두에 시 한 편을 소개한 것은 순교 성인을 대할 때 우리가 시인의 시선과 마음을 닮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흔한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가고 눈길이 머무는, 그런 천천히 들여다보는 눈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순교자들의 시대와 신앙이란 보화로 연결되어 같은 시간과 하나의 공간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복시성을 추진한다는 것은 관행처럼 진행하는 교회의 사업(?)이 아니다. 기억되지 않는 성인의 명부에 더 많은 이름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 보이지 않던, 아니 보지 못하던 꽃과 별들을 우리 삶에서 다시 발견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시복시성을 진행하려면 우리 마음의 잡초를 뽑고, 땅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하늘로 돌릴 줄 아는 마음의 돌아섬이 필요하다. 찬찬히 그리고 조금은 느리게 우리와 같은 신앙의 길을 걸었던 그분들의 길을 돌아보며, 별처럼 빛나고 꽃처럼 아름다운 그분들의 신앙의 순수성과 열정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할 때 그분들은 이제 우리와 관계없는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우리에게 갈 길을 제시해주는 형제요 자매이며, 꽃과 별이 되어주신다.

 

그래서 시복시성은 어떤 절차적 행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 모두가 천천히 신앙의 길을 묵상하고 걷는 길이어야 한다.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특징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특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다.

 

첫째, 이분들은 대부분 조선 초기 순교자들, 다시 말해 한국에 천주교회가 전래하던 당시 활동하던 분들이다.

 

둘째, 이분들이 한국 천주교회의 주춧돌이라는 점이다. 이벽 요한 세례자와 이승훈 베드로, 그리고 김범우 토마스와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권철신 암브로시오 등은 강학회를 열어 천주 교리를 연구한 분들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고 천주교를 이 땅에 알렸던 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왕족과 평민, 장애인 등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왕족인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 시각장애인이었던 전 야고보 등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증언하신 분들이 바로 그분들이다. 이런 특징은 신앙의 보편성과 정수를 잘 드러낸다.

 

 

이벽과 전 야고보

 

이제 몇 분의 삶을 소개하겠다. 이분들의 신앙 전기는 순교자 약전을 통해 이미 정리되었고 우리가 글을 통해서도 만나보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소개할 분은 이벽 요한 세례자로 이 시복시성 안건의 대표적인 신앙의 증거자이다. 광암 이벽으로 잘 알고 있는 이벽 요한 세례자는 당대 유력 가문 출신으로 정약전 · 정약용 형제와 친분을 쌓으면서 천주교 서적을 접하게 되었고, 1779년 겨울부터 천주교 교리에 대한 토론회를 갖기 시작했다. 그분은 우정을 쌓던 이승훈에게, 북경의 선교사를 만나 천주교 서적을 구해다 줄 것을 청한다.

 

이승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례를 받아 명실공히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어 돌아온다. 그 뒤에도 이벽과 함께 천주교 진리를 연구하고 천주교를 알리는 일에 열중한다. 이런 과정에서 이벽은 언제나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이벽의 집이 있던 서울 수표교에서 이승훈 베드로는 북경에서 배운대로 동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이것이 조선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세례식이었다. 이때 이벽은 요한 세례자로, 권일신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로, 정약용은 요한 사도로 세례받게 된 것이다. 이벽은 동료들과 함께 교리를 전하는 데 더욱 열중하였고, 김범우 토마스와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그리고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등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신앙 공동체의 모임이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모임이 발각되는 을사추조 적발사건이 터지면서 그분들은 유배나 배교를 강요당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벽도 부친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집안에 갇힌 상태가 된다. 가족 모두가 배교를 강요했다. 이벽은 계속된 가족의 박해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분의 죽음에는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분이 조선 초기 교회의 기둥으로서 적극적으로 교리를 연구하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도 가르치고 배운 것을 흐트러짐 없이 실천하고 양반 가문의 자제로서 할 수 있는 자신의 방법으로 신앙을 지키다 목숨까지 내놓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 분을 더 소개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전 야고보라는 분이다. 전 야고보는 충북 청주 금봉지역에서 삼형제의 둘째로 태어난 시각장애인이다. 열세 살 되던 해에 천주교 신앙을 접하였고,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에게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박해의 손길이 그곳에 닿아 형과 동생이 먼저 청주 관영에 끌려갔고, 그분은 다음에 끌려간다. 관영에서는 “맹인이 천주교를 어떻게 알겠느냐?”며 그를 놓아주려 한다. 하지만, 그분은 형관에게 “제가 비록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지만, 마음으로는 한결같이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고 있습니다.” 하고 고백한다.

 

이처럼 전 야고보는 육체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의 어두운 삶이었지만, 마음은 신앙으로 눈뜬, 참으로 대낮과 같은 삶을 사셨으며, 그 은총을 잃지 않으려고 순교로 지켜내신 분이다.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는 우리 삶과 닮은 분들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의 고귀한 가치를 살았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목숨 바쳐 지켜내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하루하루 일하면서 매우 어렵게 사셨지만, 그 깊은 곳을 관통하는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알았기에 고난의 삶의 자리에서도 평온과 기쁨을 잊지 않았다. 우리도 오늘 그분들처럼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시복시성의 과정과 절차

 

1984년 103위 순교자들의 시성을 계기로 순교자 현양 의식이 더욱 고취되었고, 교회 공동체는 순교자들의 용기 있는 신앙의 증언을 본받아 그 후손답게 살고자 노력했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한 오늘의 교회는 다시 한번 우리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새로운 도전에 응답할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세우고자 했다.

 

그 첫 자리가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시복을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어둡고 두려운 시대를 신앙의 용기와 기쁨으로 견디며 드러내 보여주신 분들을 찾고 그분들의 삶을 다시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추진 과정은 이렇다. 먼저 교구마다 담당자들을 임명하여 조선 초기 교회 신앙의 모범을 보이신 수많은 순교자 가운데 지금도 기억하고 공경하는 분들을 선별하였다. 이 작업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전 평가를 거쳐 133위를 결정하였다.

 

2013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는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들을 임명함으로써 선별한 분들에 대한 역사가들의 본격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분들에 대한 연구는 빈틈없이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역사적인 인물들이고 삶의 굴곡에서 예외가 없으므로, 삶의 요소들을 여러 각도에서 자세히 검토하는 작업이었다. 논란과 이견의 소지가 있는 분들에 대해서는 교차해서 연구를 거듭하였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한 연구가 보고되는 과정을 거쳤다.

 

마침내 2015년 말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대한 간략한 삶과 신앙의 고백을 담은 ‘약전’ 집필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들이 연구한 개별 후보자들에 대한 보고서 제출을 마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교황청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대한 영문 약전이 제출되었고, ‘장애 없음’ 교령을 신청하였다.

 

교황청에서 ‘장애 없음’이라는 결정이 내려지면, 그것은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이분들의 시복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도 된다는 허가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더욱 자세히 그분들의 신앙의 증거를 찾고 판단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작업 또한 간단하지 않고 긴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먼저 예비심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분들의 저작물이 있다면, 출판 저작물 등에 대해 검열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한 분도 예외 없이 교회 법정에서 자세하게 검증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분들을 공경하는 이들과 학자들의 증언, 그리고 부정적인 증언까지 청취한 뒤 최종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교황청에 보고되며 교황청 시성성에서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에 이르게 된다. 아무 탈 없이 진행된다면 우리가 공경하는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는 시복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이런 시복시성의 과정은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분들의 삶이 별과 꽃이 되어 신자들의 삶에 말을 걸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에 신앙의 불꽃이 타오르고 그 열정이 온 세상으로 번져나갈 때, 그분들은 형식적인 공경이 아닌 삶의 공경 속에서 우리 곁에 살아계실 것이다.

 

시복시성은 그분들을 우리와 멀리 떨어진 분으로 우러르는 과정이 아니라 그분들을 다시금 우리 삶에 살아나게 하는 과정이다.

 

별과 꽃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분들이 드러내신 신앙의 용기와 기쁨을 우리도 실천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 김종강 시몬 - 청주교구 신부.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추진 안건 청원인.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교황청 성 바오로 신학원 부원장과 청주교구 청소년국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9월호, 김종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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