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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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고해성사: 하느님을 향한 적극적인 사랑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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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3 ㅣ No.175

[빛과 소금] 고해성사 : 하느님을 향한 적극적인 사랑고백

 

 

냉담교우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주일미사 참례의 의무를 지키는 것과 고해성사를 볼 용기를 내기 어려운 것이 냉담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지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것이 계면쩍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조금 쉽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고해성사가 그 형식에 있어서 몇 번의 변화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의 공개적으로 하는 죄의 고백형식이 중세 이후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하는 고백으로 변화하였다. 그럼에도 범한 죄를 직접 사제에게 고백하는 양식이 생략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죄의 고백이 고해성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남녀가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아는 경우도 역시 그렇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랑을 용기있게 고백한 다음에 그 둘은 더욱 친밀해진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고백도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하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다. 적극적인 고백을 통해서 자신을 절절히 사랑하고 계신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이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봉쇄수도원에 사는 수도자들이 고해성사를 가장 자주한다. 

 

자신의 치부인 죄를 타인에게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해소 안에서의 사제는 그냥 타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죄를 사해주는 은총의 전달자,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따라서 죄를 고백할 때도 하느님을 만나 그분께 사랑을 고백하듯이 하면 된다. 이 고백을 통하여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해성사는 죄를 범했기에 징벌을 받을까 두려워 떨며 행하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용서를 확신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매우 분주하다.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참 많은데 경쟁은 또 얼마나 심한가? 슈퍼마켓에서 할인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하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저돌적으로 노력하는가? 순간에 불과한 이 세상의 삶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지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할테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려니 자주 계산적으로 살아가게 되고 그로인해 하느님을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주변에는 유혹의 손길이 참 많다. 그래서 죄에 떨어지는 경우도 더 많아졌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나쁜 일 만은 아니다. 은총도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더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고해성사를 통해서 그분과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될 때, 죄조차도 복된 것이 된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노래하지 않았던가? 오 복된 탓이여(O Culpa Beata)! 고해성사는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가득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2010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인천주보, 이완희 신부(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만수1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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