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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지내는 별난 풍습 나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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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0 ㅣ No.1419

[세상 속의 교회읽기] 성령 강림 대축일에 지내는 별난 풍습 ‘나골’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을 교회가 탄생한 날로 이해해 왔다. 성령께서 사도들과 성모 마리아에게 내려오신 날, 그리하여 사도들이 자기들을 적대시하던 군중 앞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주신 날이기에 말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또한 어느 면에서 ‘바벨탑 이야기’를 반전시킨 날이기도 하다. 저 옛날 인간이 자신의 기술을 사용해서 하늘에 오르겠노라고 야심만만하게 도전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각종 언어들을 동원하여 그 도전을 무산시키셨다. 그분께서는 탑 건설 현장의 근로자들이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소통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오늘에 이르도록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원흉 중 하나가 바로 외국어라고 하겠는데, 그 단초가 어쩌면 하느님의 이 특단의 조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분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사람들이 어느 모국어를 사용하든 간에 저마다 사도들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을 주셨다. 소위 ‘방언의 은사’라고 말하는 만능 번역 시스템을 제공하신 것이다. 그 덕분에, 사도들은 오순절 아침에 아람어로 말했는데, 그것이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자기네 모국어로 들린 것이다. 

 

이 놀라운 변화와 시작을 가져다준 사건이 일어난 날은 이스라엘의 명절인 오순절이었다. 구약성경에서 오순절은 과월절 후 50일이 되는 날에 지내는 일종의 수확 축제였다. 이를테면 수확의 보람과 기쁨을 경축하며 즐기는 축제였으며, 그러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둔 ‘맏물’ 먹거리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었으며, 한편으로는 집안을 꽃으로 장식하였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별난 행사들 생겨나 

 

이 전통은 그리스도교에도 이어졌다. 가령 이탈리아에서는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천장에서 장미 꽃잎을 뿌려댔고, 프랑스에서는 성령 강림을 알리는 신호로 트럼펫을 불었다. 또한 종교 개혁 이전의 영국에서는 사제들이 미사 중에 성당 안에서 비둘기들을 날려 보냈다. 물론 이렇듯 변형된 관습들은 하나같이 큰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밖에도 이 축일에 지내는 별난 행사들이 여럿 생겨났다. 그 중에는 영국의 한 지방에서 열리던 치즈 굴리기 대회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치즈를 언덕 위에서 아래로 굴리면서 달리는 경기였다. 이 경기의 승리자는 흙먼지 잔뜩 묻은 치즈를 기쁜 마음으로 먹었을 것이다. 또 어떤 곳에서는 이 축일 다음날에 빵과 치즈가 가득 담긴 바구니들을 성벽 위에서 아래로 집어던지고는 사람들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게 하는 경기가 열렸다. 

 

그러나 성령 강림 대축일과 관련된 행사들 중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의 펜테코스트 섬에서 지내는 행사가 아마도 가장 이색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섬은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특유의 적화(積貨) 숭배(조상들의 혼령이 현대 문명의 산물들을 가득 실은 배나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후손들을 백인의 지배에서 해방해 줄 것이라고 믿는 토속 신앙)의 본산이다. 그런데 가톨릭이 전파된 후, 이 섬의 원주민들은 성령 강림 대축일 즈음에 나골(Nagol)이라 불리는 위험한 행사를 감행한다. 번지 점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나골은 남성들이 높이 쌓은 나무 탑 위에 올라가 발목을 묶은 덩굴에 의지하여 뛰어내리는 것이다. 

 

이 섬에는 이 행사의 유래를 말해 주는 전설이 전해 온다. 성격이 괴팍한 한 사내가 살았다. 그에게는 나이 어린 아내가 있었다. 하루는 사내가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였고, 아내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쳤다. 아내는 나무 위에 몸을 숨겼으나 이내 들키고 말았다. 사내가 여러 차례 아내에게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남편의 매질이 두려운 아내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사내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내가 손을 뻗어 아내를 붙잡으려는 순간, 아내는 갑자기 아래로 몸을 던졌다. 사내도 뒤따라 뛰어내렸다. 자신의 강함을 과신하고 과시하려던 사내는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나 미리 덩굴로 자신의 발목을 묶어 놓았던(또는 우거진 식물들의 덩굴에 발목이 걸린) 아내는 살아남았다. 

 

그 뒤로 이 섬의 남성들은 높은 탑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이 뛰어내리기는 단순한 행사의 차원을 넘어서 그들의 주요 식량인 얌의 풍성한 수확을 비는 뜻을 담은 의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뛰어내리기는 얌의 풍성한 수확을 비는 의식 

 

얌은 우리나라의 참마 같은 덩굴 식물로,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그 뿌리가 식량 자원으로서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그들은 얌의 수확을 앞두고 숲에서 나무들을 잘라서 덩굴로 엮어 15~40미터 높이의 탑을 세운다. 그리고 정해진 때가 되면 7~8세 된 아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남자란 남자는 모두 그 탑 위로 올라가 발목을 덩굴로 묶고는 땅으로 뛰어내린다. 

 

이때 남자들은 자신들의 담대함과 강인함을 과시하면서 여성들에게 자기 속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를 보인다. 

 

그들은 이 뛰어내리기를 얌의 수확 시기에 맞춰서 5,6월에 진행한다. 그들이 높은 나무 탑에서 뛰어내리면, 발목을 묶은 덩굴이 팽팽하게 늘어지면서 머리를 가슴 쪽으로 숙인 자세로 그들의 어깨는 땅에 거의 닿게 된다. 이는 이듬해에 얌이 풍작을 이루기를 기원하는 의식이 된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해마다 얌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4월 초순에 마을마다 거대한 나무 탑을 적어도 한 개 이상 준비하는 것이다. 

 

그들은 얌의 수확 과정에 맞춰 나골을 3차례에 걸쳐 진행하기도 한다. 한 번은 얌의 덩굴이 말랐다는 것을 알리는 의식으로, 또 한 번은 그런 즉 얌을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의식으로, 끝으로 얌을 수확하고 드디어 시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의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의식들을 수 세기 동안 전통에 따라 진행해 왔다. 변변한 안전장치 없이 진행하는 이 뛰어내리기는 우리가 보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사요 의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마음을 담아서 이를 결행한다. 

 

마침 이 시기는 교회의 전례력상 성령 강림 대축일과 비슷하게 겹친다. 그래선지 선교사들은 이 섬의 사람들이 이렇게 뛰어내리는 것은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서 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잘 안다. 자칫하면 목숨이나 아니면 팔다리를 잃을 수도 있는 이 위험천만한 뛰어내리기가 다음해의 얌 수확을 보증하는 것임을. 왜냐하면 이 섬의 이름이 바로 ‘펜테코스트’, 곧 성령 강림이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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