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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이버 폭력과 악플: 사이버 폭력과 한국 교회의 사목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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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2-17 ㅣ No.1709

[경향 돋보기 - 사이버 폭력과 악플] 사이버 폭력과 한국 교회의 사목 대책

 

 

사이버 시대에 잃어버린 양

 

지난해 말 두 명의 젊은 여성 연예인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비통한 소식이 보도되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이버상의 악성 댓글(악플)이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 뒤 청와대 게시판에는 ‘사이버 범죄 및 악플에 대한 처벌 강화’를 제안하는 국민 청원이 진행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사이버 따돌림(bullying, 왕따)으로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모욕적인 협박을 받던 초등학생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사이버 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럼에도 또다시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현실이 너무나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들이 도움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임에도 교회가 적극적으로 이들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사이버 폭력과 관련하여 사목적인 차원에서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는 작업이 시급하다.

 

 

언어폭력과 혐오 표현이 불러오는 증오의 소용돌이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터넷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속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위험성을 경고하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교황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를 통해서 인터넷과 디지털 공간에 만연한 언어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지적한다(115항 참조). 또 2019년 발표한 제53차 홍보 주일 담화문을 통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인터넷이 실제 만남을 보완하는 도구로 공동체의 친교를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불신을 조장하고 의도적인 왜곡과 허위 정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인터넷에서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집단을 대립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온갖 종류의 편견을 토대로 배척하는 경우에는 증오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폭력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사이버 언어폭력은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두 연예인의 경우, 그들에게 쏟아진 악플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고 왜곡하고 허위 정보를 게재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 표현은 수치심을 유발하는 저속한 욕설과 인격을 모독하는 조롱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수많은 악플의 폭력 앞에서 그들은 엄청난 수치심에 빠지고 감당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치심에 빠진 사람들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정서적 공감을 거부하며,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고 해도 오히려 그 손길에서 두려움과 분노, 비난만을 느낀다. 또한 강한 모멸감을 느낀 사람들은 분노와 치욕의 정서로 증오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러한 수치심과 모멸감의 정서적 에너지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에는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한 편견과 배척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혐오 표현으로 사이버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혐오 표현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욕설이나 나쁜 말과는 구별된다. 혐오 표현은 성별과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모욕하여 차별을 조장하거나 공고히 한다. 혐오 표현은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유발하며,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상 그러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표현이 혐오에 기반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 표현의 전염성이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저하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자신이 속한 집단이 혐오 표현에 전염된 상태에서는 자신의 사고나 표현이 정당하다고 쉽게 확신하게 된다. 두 연예인에 가해진 언어폭력도 일종의 혐오 표현의 속성을 갖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접근

 

한국 사회에서 이런 언어폭력과 혐오 표현을 포함한 사이버 폭력에 대항하기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사이버 폭력에 해당하는 표현들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어폭력의 대표적인 사례인 악플의 경우, 이것이 일종의 비판이며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악플에 대한 규제가 전체주의를 의미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더 나아가 연예인은 어떠한 악플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혐오 표현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어떤 한 집단이 소수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려고 혐오 표현을 한다고 해도 그 범위와 대상을 특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버 폭력이 이렇게 일종의 언어 표현이라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해악은 분명하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접근이 어렵다. 이에 대해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자신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망치와 메스의 비유를 들었다. 혐오 표현의 문제에 접근할 때 망치를 휘둘러서 규제하는 것이 그때마다 좋은 것은 아니며,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메스로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는 혐오 표현을 낳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고 사회의 내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개인적 실천, 사회적 대응과 범국가적 차원의 법적, 제도적 조치가 다각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톨릭 교회의 사목적 접근 가능성

 

홍성수 교수의 분석을 적용한다면, 사이버 폭력에 대해 교회가 사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이 어느 정도 분명해진다. 먼저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들은 엄청난 수치심과 모멸감 때문에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고려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막으려면 주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서 이러한 극단적 선택의 징후를 감지한 경우에는 중앙자살예방센터와 같은 전문 기관에 먼저 도움을 청해야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교회 내에서도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들이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종교 공동체만이 줄 수 있는 영적인 차원의 안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상담 시설이나 조직을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에 요청되는 사목적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교회는 사이버 폭력의 위험성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지금까지 주로 물리적인 폭력에 저항해왔다. 물리적 폭력의 해악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이버 폭력의 영향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더 강력함에도 그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자신이 이미 악플이나 혐오 표현을 통해 사이버 폭력을 행사함에도 스스로 가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화와 상생이라는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려면 사람들이 사이버 폭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스스로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53차 홍보 주일 담화문에 따르면 바티칸에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사이버 폭력을 방지하고자 ‘국제 사이버 폭력 예방 기구’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폭력 피해자들이 스스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수치심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수치심이 어디에서 촉발되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먼저 요구된다. 그리고 촉발된 수치심을 공고히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종교적인 수행 차원에서 적용해 본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118-121항)에서 지적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굴욕의 영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교황은 일상에서 굴욕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겸손하게 바라보고 이를 인정할 때 성덕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굴욕의 영성을 사이버  폭력에 따른 모멸감에 적용해 보자. 곧 사이버상에서 언어폭력이나 혐오 표현을 접하는 순간 모멸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모멸감이 상대방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하느님 안에서 뿌리내린다면 단순히 모멸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교황이 설명하는 굴욕의 영성을 사이버 폭력 피해자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이미 정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들이 사이버 폭력을 통해 겪게 되는 모멸감에 무너지지 않고 영적인 차원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들의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고 영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이버 폭력 피해자 영적 동반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이버 공간의 특수성을 잘 아는 전문가들과 영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목자들의 공동 작업이 요청된다.

 

* 한창현 모세 - 성바오로수도회 신부이며 현재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20년 2월호, 한창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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