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한결 같아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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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11 ㅣ No.630

[레지오 영성] 한결 같아 지기를...

 

 

듣기에 좋은 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제게 있어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신부님은 한결 같으세요.”라는 말입니다. 사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 역시 많이 변했습니다. 외모도 많이 변했지요. 주름은 더 많아지고 또 깊어졌습니다. 배도 더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는 늘 한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느꼈던 처음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야 다음에 또 만났을 때에 이질감이 없을 테니까요.

 

인터넷에 처음 묵상 글을 쓰기 시작한지가 벌써 19년째입니다. 처음 글을 올릴 때 사람들은 얼마나 갈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처음에는 열심히 묵상 글을 쓰면서 적극성을 보이다가도 얼마 못가서 슬그머니 멈추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보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아직까지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

 

“신부님은 한결 같으세요.”

 

언제나 이 자리를 지키는 한결 같은 모습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습니다. 변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변해야 하겠지만, 변해서는 안 될 것은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또 하나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한결 같이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오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바로 사랑의 모습입니다. 특히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5월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다보면 주님 사랑이 얼마나 한결 같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절대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결 같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더 큰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게 되지요.

 

어렵고 힘들 때에도 또한 유혹에 넘어가서 죄에 물들어 있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이 모습은 우리 역시 주님처럼 한결 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언젠가 부부들 모임에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서 장사를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금슬이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이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던 한 형제님께서 묻습니다.

 

“함께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 함께하면서 싸우지 않으세요?”

 

이에 “저희는 거의 싸우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전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지요. 저는 ‘금슬이 좋아 보이는 이 부부도 싸우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셨던 형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럽네요.”

 

자기 부부는 툭 하면 싸운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싸우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하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하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면서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그래서 싸우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싸울 때의 이유들을 듣다보면 배우자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연애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한결 같은 모습, 한결 같은 사랑을 원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바로 갈등과 다툼의 원인은 한결 같지 못함에 있었습니다. 이는 부부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한결 같지 못함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상대방의 한결 같음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결 같음은 상대방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도 이 한결 같음을 간직하고 상대방에게 다가서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지요.

 

 

늘 한결 같음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은 ‘열정’

 

이 한결 같음을 간직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가 않습니다. 생활 안에서 때로는 한결 같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한결 같음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열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다가설 수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타인을 설득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로고스는 논리입니다. 주장이 이치에 맞아야 하는 것은 분명히 당연하고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러나 논리만으로 사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따르는 척할 뿐 전력을 다해 행동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에토스’, 윤리입니다. 도덕성에 의심을 품게 된다면 논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윤리가 채워져야 사람들은 공감을 하고 함께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파토스’, 즉 열정이 필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본인이 신념을 갖고 열정을 드러내며 말해야 상대방도 진심으로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만약 어떤 사람이 말을 하다가 상대방의 표정이 아닌 것 같아서, “아니면 말고…”라면서 꼬리를 내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람에 대해서 신뢰를 갖게 될까요? 아무리 논리적으로 뛰어나고 또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내 안에서 뿜어 나오기 위해서는 그래서 내 이웃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바로 이 열정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이 열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공감하고 세상에 주님의 사랑이 널리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한, 우리 안에서도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꽃 피울 수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의 글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은 잊겠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언제나 한결 같은 열정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처럼 말이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5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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