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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구석구석 로마 구경: 피쉬눌라 안의 성 베네딕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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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1 ㅣ No.1774

[구석구석 로마 구경] 피쉬눌라 안의 성 베네딕도 성당

 

 

로마 신화에 따르면 로마(Roma)란 도시는 기원전 8세기(B.C. 753) 전쟁의 신 마르떼(Marte)와 무녀 레아 실비아(Rea Silvia)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 로몰로(Romolo)와 레모(Remo)에 의해 건설되었다. 도시의 태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 8백 년의 긴 역사를 이어온 로마는 도시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릴만하다. 실제로 내가 매일 학교를 오가며 걷는 아벤띠노(Aventino) 언덕길은 사도 바오로의 협조자였던 아퀼라와 프리스퀼라가 로마 선교를 위해 걸었던 선교의 길일지 모르며, 쟈니꼴로(Gianicolo) 언덕에 서서 바라본 바티칸과 로마의 전경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에게 문학적 영감을 준 풍경일지 모른다.

 

그러기에 로마는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오는 신비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도시이다. 비록 누군가에겐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많은 쓰레기와 애완견의 배설물, 그리고 악명 높은 소매치기로 인해 지저분하고 불쾌한 도시, 나쁜 인상의 도시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단지 이러한 이유만으로 로마를 저평가한다면 이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로마는 결코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 도시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수많은 성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사도좌 방문을 목적으로 이탈리아 순례를 와 로마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였다. 그들에게 로마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이룩된 거룩한 도시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베네딕도 성인은 다른 차원에서 로마를 느꼈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주(州)에 위치한 조그만 성읍 노르챠(Norcia) 출신인 성인은 학업을 위해 대도시인 로마로 왔다. 나이 어린 유학생, 베네딕도에게 로마는 수준 높은 학문과 함께 세상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 도시였다. 베네딕도의 눈에 로마는 요나서에 나오는 니네베와 같이 회개가 절실한 도시였을 것이다.

 

베네딕도 성인이 노르챠를 떠나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한 곳이 바로 ‘구석구석 로마 구경’의 첫 장을 열 ‘피쉬눌라 안의 성 베네딕도 성당’(Chiesa di San Benedetto in Piscinula)이다.

 

성당이 위치한 곳은 ‘피쉬눌라(Piazza in Piscinula) 안(內) 광장’이다. 성당 이름에도 붙어 있는 ‘피쉬눌라’는 수영장을 뜻하는 이태리어 ‘피쉬나’(piscina)의 축소형으로서 과거 이곳에서 세거했던 고대 로마의 부유한 가문 중 하나인 아니챠(Anicia) 가문 소유의 온천 시설에서 유래한다.

 

처음 이 광장을 찾는 사람들은 광장의 한 가운데에 서서 성당 입구를 찾기 위해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성당 입구에 성당이란 표시도 없을 뿐더러 성당 문이 여느 이탈리아의 건물 출입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올려보면 성당의 종탑이 시선에 들어온다. 사실 이곳은 베네딕도가 로마에서 살았던 집을 토대로 하여 1084년경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때에 지어진 중세시대 성당이다. 비록 로마의 다른 성당들처럼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성당이 지닌 소박한 모습은 오히려 사부가 추구한 수도승 정신과 더 잘 어울린다. 자신의 제자들이 겉멋이 잔뜩 든 수도승이 아니라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는 참된 수도승이 되길 바란 성인의 원의와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압시데(Abside, 제단 뒷면 사제석이 있는 장소, 둥근 천장 혹은 반달 모양 덮개처럼 생긴 회랑 구조)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사부와 관련된 성당답게 제대 바로 뒤, 핵심부에 사부 성 베네딕도의 그림이 있다. 한 손에 목장과 다른 한 손에 규칙서를 들고 계신 사부께서는 지금도 규칙서 머리말의 첫줄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듯하다. 사부의 그림 바로 위에 ‘아기 예수와 성모’의 그림이 놓여있다. 이 그림은 14세기 그려진 프레스코화로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얼굴과 표정이 생기있게 표현되었다. 어쩌면 성모는 자신의 친아들인 예수뿐 아니라 당신의 신앙을 본받고자 따르는 신앙의 아들인 수도자들, 베네딕도로 대표되는 그들 또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시며 지켜주시는 듯하다. 비록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압시데 위쪽 원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그분께로부터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시는 성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분들 곁에서 찬미와 찬송을 드리는 천사들의 모습이 우리가 천상에서 바라고 누려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대 중심의 사부 그림을 기준으로 양 옆에 두 주교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왼쪽엔 세바스테의 주교였던 성 블라시오(San Biagio di Sebaste)이고, 오른쪽엔 동방과 서방교회가 공통으로 추앙하는 성 니콜라오(San Nicola) 주교이다. 신자들에게 믿음을 통한 기적을 가르치고자 한편엔 기적을 베푸는 것으로 유명한 블라시오 성인의 그림을 두었고, 다른 편에는 11세기 성당이 지어질 당시 베네딕도 회원들이 성당을 니콜라오 성인에게 봉헌하며 그린 그림을 배치하였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베네딕도 성인은 실제로 생활했다고 추정되는 방은 다른 부분에 자리한다. 성당의 입구 왼편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 그곳인데, 성인은 그곳에서 기도와 고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남아있는 벽 가운데 왼쪽 편에 있는 것이 원래 성인이 살던 당시의 벽이다. 이 성당에서도 가장 협소한 곳에 자리한 방은 성인이 지닌 겸손과 소박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마치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두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증언했음과 같이, 사부께서는 주님께 중요한 자리를 내어 드리고 자신은 기꺼이 가장 작은 자리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계신 듯하다.

 

주님의 자비를 맛보고 즐기는 대신 세상이 주는 기쁨과 쾌락을 즐기던 로마시민들을 위해 작은 방에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주님을 찾았던 사부를 따르는 우리 수도승들의 여정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이곳 ‘피쉬눌라 안의 성 베네딕도 성당’은 오늘날 자신의 독방보다 세상 한가운데 서서 주목받길 원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회심의 장소가 아닐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봄호(Vol. 41), 글 · 사진제공 강찬규 포에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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