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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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알프레드 델프 신부 (3) 처형대 앞에서 주님의 참자유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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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15 ㅣ No.1147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알프레드 델프 신부 (3) 처형대 앞에서 주님의 참자유 얻다

 

 

알프레드 델프 신부가 국민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1944년 11월 10일 크라이스아우어 동지 중 3명이 재판을 받았다. 재판장 프라이슬러는 이들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요식행위로 치러진 쇼에 불과한 재판이었지만 피고인들은 교활하고 거만한 국민재판소 소장에게 당당하게 맞섰다. 3일 후 그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느님은 숨도 내쉴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을 통해서 빛의 자녀를 훈육하시는 것일까? 델프 신부는 당시 심정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레-르터 하우스와 다른 동지들의 죽음 이후 최근 며칠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제 개인을 위해서 이 사태를 신앙을 가지고 하느님의 철저한 훈육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여기서 제가 하느님의 특별한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응답이 어렵습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자유로우면서도 희망을 안고 응답해야 하므로 그렇습니다.” 

 

고독, 죽음에 대한 두려움, 진리를 외치는 소리의 무력함 속에서 영원한 지평을 향한 신앙과 믿음은 밝게 드러나는 것일까? 하느님께서는 암흑의 긴 터널 너머의 빛으로 델프 신부에게 다시금 희망과 용기를 선사하신다. 1944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이 얼마나 오묘한 은총의 날인가. 어린 시절 성모님의 기사가 되겠다고 선서한 이 날에 델프 신부는 최종서원을 관구장을 대리한 그의 젊은 동료인 타텐바흐 신부 앞에서 하게 된다. 

 

델프 신부는 하느님이 그에게 승인의 표시나 위로의 표시와 같은 작은 빛을 이 축일에 보내주시도록 청하는 9일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 축일 저녁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8일 축일에 문자 그대로 나에게 자비의 손길과 소식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 그것은 한번에 너무 많았다. … 9일 기도의 8일째 되는 날 종일 나는 자비의 소식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최종적으로 나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외적인 사슬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의 사슬로 영광스럽게 했기 때문에.”

 

12월 8일 감옥에서의 최종서원은 델프 신부에게 의심할 여지 없는 하느님의 계시 사건이었다. 하느님은 델프 신부의 봉헌을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였으며 영광스럽게 해주었다. 이후 그의 편지와 글들을 보면 그가 안정되고 부드러워졌으며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음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곧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던 델프 신부와 다른 동료들의 재판은 국민재판소 소장의 사정으로 미뤄졌다. 델프 신부는 생애 마지막으로 보내게 되는 대림시기와 성탄절에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육화(incarnation)’의 의미를 깊이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그는 이 시기에 스스로 ‘대림하는 인간’의 전형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의 구원이 오시기를 기다려야(待臨) 하는 존재’가 아닌가. 델프 신부는 재판이 다음 해 1월 중순으로 연기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12월 22일 편지에서 성탄의 신비를 이렇게 적었다.

 

“진실로 비밀은 사라지고 인간은 오늘 마지막 진실 앞에 직접 서 있습니다. 우리를 비춘 번개는 목가적 정경을 불살라버렸습니다. 그것은 항상 그러해야 합니다. 한 교부는 성탄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이 고백에 피조물이 전율하게 된 ‘커다란 함성의 신비’라 부르지요. 우리가 순수한 하느님 백성이라는 사실 앞에서 이 전율에 더 이상 반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우선 한 번 더 무엇이 전율(충격받고, 뒤흔들린 세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우리는 아기 옆에서 깨어 있고 축복받은 시간을 갖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자만에 대한 거부, 우리의 모든 중요성에 대한 취소, 외줄 위에서의 무능함은 아기를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입니다. 제가 충분히 파악했다면 저는 이제 아래로 내려와도 좋을 것입니다.” 

 

어찌 알프레드 델프 신부라고 ‘자유롭게 한껏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 그가 생명체인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감옥 생활, 사형 선고를 향해 가는 재판, 그리고 교수대에서의 죽음에 어떤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였을까? 영적 평온을 얻고 대림과 성탄을 지내며 그가 유언으로 남긴 명상의 글을 통해 추적해 보자. 

 

예수회원인 알퐁스 마츠커 신부는 델프 신부의 유고문 「그리스도와 현대」의 셋째 권 「죽음에 직면하여」를 읽고 델프 신부의 생애를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위협받는 피조물을 위한 용기 있는 방어가 하나이고, 역사의 사건 안에서 인간을 자신에게 데려오려는, 즉 인간을 찾아오는 주님의 의지를 위한 봉사가 다른 하나다. 이 두 가지 소명은 델프 신부가 스스로 종이 돼 사슬에 묶이고 생명까지 바치는 ‘비움의 자유’로 이끌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인간은 자신의 환경에 다시 질서를 부여할 때만 신에게 다가갈 능력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인간 존엄성에 합당치 않게 비인간적으로 살아간다면, 대부분 사람은 관계를 단절하고, 기도하지도, 믿지도,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

 

“인간이 거리에 내동댕이쳐 있고, 피가 철철 흐르도록 두들겨 맞고 강탈당하고 있는 한, 그에게는 그를 자기 품에 안아 여관에 데려간 이가 이웃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성사’를 집행하러 지나쳐가는 이는 결코 이웃이 될 수 없다.” (「죽음에 직면하여」 중에서)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5일, 김용해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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