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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이 시대에도 완전한 전달자이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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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05 ㅣ No.1079

이 시대에도 완전한 전달자이신 그리스도

 

 

초고속 인터넷의 확산으로 엄청난 변화에 간신히 적응하나 싶더니 다양한 기기와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한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도 버겁지만, 기기를 통하지 않고는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가?

 

2017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트위터 계정(@Pontifax) 팔로워 수가 4천만 명을 넘어섰다. 서로 다른 9개 언어로 운영되는 교황의 트위터는 교황청 홍보처가 관리한다. 홍보처장으로 임명된 다리오 비가노(Dario Vigano)몬시뇰은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2017, 교황청 부서를 돌아보다[4], 2017년 10월 22일자 참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토대가 완전히 변화했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도구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는 “개혁을 위해서 현실에 변화를 주고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도전에 과거와는 다르게 대처해야 하는데, 이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했다. 오늘의 디지털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놀라운 기술의 발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라 할 정도로 인터넷망이 잘 구축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유무선 네트워크의 발달은 일상의 삶도 많이 바꿔놓았다. 이미 대부분의 공문서의 처리가 인터넷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생필품을 사는 데도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한다. 반면, 사이버 명예훼손, 인권침해, 유해정보유포, 인터넷 성폭력 등 여러 가지 부작용도 동시에 나타나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에 비해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의 재위 기간(1958~196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신학적이며 사목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대응인 셈이었다. 현재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1963년에 발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과 1991년에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가 발표한 「새로운 시대」가 바탕이 되고 있다. 교회는 이 ‘놀라운 기술의 발명’이 이미 인간의 요구를 상당히 만족시켜 왔으며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역사는 “오만한 바벨탑 계획과 그것이 일으킨 혼란과 상호 몰이해에서 온 붕괴로부터(창세 11,1-9 참조) 성령의 활동을 통한 예수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게 하는 회복의 여정”(제34차 홍보 주일 담화, 2000년)이라고 교회는 이해한다. 그렇기에 매체는 인간 정신을 넓히고 풍요롭게 하며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고 튼튼히 하는 데에 이바지 하는 역할을 한다. 1971년 발표된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관한 사목 훈령 「일치와 발전」은 “교회는 이러한 매체들을 ‘하느님의 선물’로 본다. 매체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사람들을 형제애로 일치시키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하도록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2항 참조).

 

매체와 관련하여 교회가 가진 두 가지 목표는 이러하다(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교회와 인터넷」, 2002년 참조). 하나는 인간 발전과 정의와 평화를 도모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연대의 정신을 갖고 매체의 올바른 발전을 장려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교회 안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교회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기술의 활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사이의 사랑의 친교”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을 통해 “단순히 그리스도교 메시지와 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려고 매체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성된 ‘새로운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통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스도교적인 가치

 

현대인들과 매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성당 활동을 하는데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공지가 날아온다. 하루에도 SNS를 통해 수십 명의 친구와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듯 개인화된 매체는 오히려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맺게 할 수 있다. 교회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더욱 많은 대화 소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바로 그 힘이 자기중심주의와 소외감을 증대시킬 수 있다”(제33차 홍보 주일 담화, 1999년). 즉,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일치될 수도 있지만 분열될 수도 있다. 이념, 정치, 재산, 인종, 민족성, 세대 차이, 종교 등으로 분열되어 서로를 공격하는 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0차 홍보 주일 담화(2016년 5월 8일)를 통해 강조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나눔을 의미합니다. 나눔에는 경청과 수용이 필요합니다. 경청은 단순한 청취 이상의 것입니다. (중략) 때로는 못 들은 척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경청으로 다른 이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를 이해하고 높이 평가하며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매체에 내포된 선과 악에 대한 가능을 분명히 알고, 그 기회들을 현명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인터넷에 대해 성찰할 때에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전달자”이시며,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교회가 전달하여야 할 내용의 본보기이심을 기억해야 한다(「교회와 인터넷」, 2002년 참조).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사도 2,7-8) 사도행전 2장에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다가 성령을 받고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각기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어 놀라워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하느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우리가 한마음 한몸이 되듯이 진정한 소통도 하느님 안에서 가능할 것이다. 매체의 발전에도 단지 자신의 삶 안에 갇혀 있다면 각자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을 열어 나눌 때 비로소 모든 장벽과 국경을 넘어 복음이 울려 퍼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화로 평화를 건설하고 모두를 살핀다”(프란치스코 교황의 트위터 중).

 

[외침, 2018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이지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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