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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질문하는 신앙인: 신부님, 시험관 아기는 안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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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1466

[박찬호 신부의 질문하는 신앙인] “신부님, 시험관 아기는 안 되는 건가요?”

 

 

제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초임 본당신부로 사목할 때의 일입니다. 토요일 오전 본당 청소가 끝나갈 무렵에 형제님 한 분이 쭈뼛쭈뼛 다가와 물었습니다. 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그 형제의 부부는 자녀를 갖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해왔지만 안타깝게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잘 들어서게 해주는 ‘용한(?)’ 신부님을 찾아가 기도와 안수도 받아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며 저에게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왔습니다. 그 형제님과 자매님은 본당의 단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부부였지요. 눈치를 보니 그 형제님도 교회에서 시험관 아기, 곧 인공수정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저를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 형제님의 눈을 보니, 제가 “그럼 어쩔 수 없지요.”라는 말만 하면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갈 기세였습니다. 윤리신학자이면서 동시에 본당신부로서 참 난처했지요. 한편으로는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그릇됨 없이 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에 처해 있는 신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인공수정은

 

자연스러운 부부관계가 아닌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임신을 유도하는 것으로 크게 체내(In vivo) 인공수정과 체외(In vitro) 인공수정으로 구별됩니다.

 

체내 인공수정은 말 그대로 체내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방법에 따라 ‘자궁 내 정자주입’이나 ‘생식세포 난관 내 이식’ 등으로 나뉩니다. 체외 인공수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말하는 것으로, ‘접합자 난관 내 이식술’과 ‘세포질 내 정자주입술’ 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인공수정에 의한 임신율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체내 인공수정은 보통 10-15%, 체외 인공수정은 25-30% 정도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시술의 난이도나 비용은 체외 인공수정이 훨씬 높습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출산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난임부부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국가에서 세금을 써가면서까지 지원하고 있는 인공수정을 교회에서는 왜 반대할까요?

 

우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공수정 시술의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냉동 보관되는  잔여 배아 때문입니다. 체외에서 수정된 다수의 배아들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선별되어 자궁에 이식되는데, 이때 활동성이 좋지 않아 선택되지 못한 배아들, 이른바 ‘잔여 배아’들은 냉동 보관되었다가 폐기되거나 실험용 재료로 쓰이고, 자궁에 이식된 배아들 중에서도  착상되지 않은 배아들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수정 순간부터 모든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교황청 훈령 『생명의 선물』 서론)고 굳게 믿고 가르치는 교회는 어떠한 명목으로든 인위적으로 인간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서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인공수정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임신과 출산이 오직 부부간의 인격적 상호 증여의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인공수정은 윤리적, 사회적, 의학적으로 심각한 문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한 과다한 호르몬 복용과 전신마취의 과정은 여성에게 지나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으며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그리고 의학계 내에서도 불임의 원인 치료보다는 돈 되는 인공수정을 권장하는 소위 ‘시험관 아기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공수정은 대리모라는 지극히 비윤리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남편이 아닌 타인의 정자가 개입되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AID)’은 선택적 출산의 문제, 곧 장바구니에 좋은 물건만 골라 담듯 정자은행에서 우생학적으로 우월한 유전적 형질을 지닌 정자를 선택하여 자녀를 가지려는 경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자녀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 인간이 만든 생산품의 수준으로 격하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는 인공수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난임부부들의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부부들의 고귀한 소망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자녀를 가지려는 소망이 생명의 존엄성과 부부간의 상호 증여라는 가치를 파괴하면서까지 성취되어야 할 만큼 고귀한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몸담고 있는 교육기관에서 이와 관련된 강의를 하던 중에 한 자매님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 교회의 가르침은 알고 있지만, 교회가 이런 문제에서는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닌가요? 우리 본당에서 제가 아는 사람은 시험관 아기 시술 문제로 냉담한 뒤 지금까지도 성당에 안 나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저는 교회의 입장과 그 근거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교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생명의 파괴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물론 질문을 한 자매님은 수긍할 수 없다는 눈치였지요. 그때 뒤에서 조용히 듣고만 계시던 한 자매님이 손을 들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생명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는 얼마나 큰 선물인지 모릅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 아이입니다.” 자매님의 이 증언으로 더 이상의 논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이 거의 없어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인간의 생명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아담이 범한 죄, 곧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 박찬호 - 수원교구 소속 사제로 수원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이며 수원가톨릭대 부설 하상신학원 원장으로 있다.

 

[생활성서, 2018년 1월호, 박찬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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