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

가톨릭 사회교리서 두캣(Ducat) 제11장 자유와 비폭력의 삶 -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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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8 ㅣ No.1959

박신부와 함께 읽는 가톨릭 사회교리서 『두캣(Ducat)』


제11장 자유와 비폭력의 삶 : 평화

 


1. 우리가 평화를 바라는 데 있어 왜 하느님이 필요한가요?(『두캣』, 270항)

 

장학금을 타며 거의 전 과목에 만점을 받던 조지아 정교회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내 조국에 넘치게 하라!”고 시를 쓰던 이 신학생은 무신론과 반정부적 성향에 이끌린 나머지, 마지막 학년에서 신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신부가 되는 대신 신(神)과 같은 권력을 추구하게 됩니다. 훗날 인간 백정이라는 악명을 얻은 독재자요 학살자 이오시프 스탈린 이야기입니다. 역사 속에는 겉으로 평화나 정의, 더 나은 세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폭력과 억압의 화신이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회교리서 『두캣』은 평화가 하느님의 근본 속성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에페 2,14 참조)이심을 먼저 상기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사람들 사이의 장벽인 적개심도 허무셨습니다.(『두캣』, 271항)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선하신 질서 안에서 누리는 행복’(『두캣』, 275항)인 평화를 누리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신앙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타인을 향해 다가가는 새로운 길을 걸을 때 참 평화에 도달하게 된다고 알려줍니다. 진정한 평화는 그래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이웃과 함께 평화롭게 살려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준비(『두캣』, 274항)가 필요한 것입니다.

 

 

2. 평화를 지키려면 더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하지 않나요?

 

한편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옛 라틴어 경구처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물론 교회는 평화와 비폭력을 말하면서 무력에 대한 정당방위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더 강력한 무장이 평화를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력, 무장, 조직 등은 국가와 동맹국의 정당방위의 사명을 충당할 정도로, 또한 국제적 위기 극복의 범위에서 적합한 참여를 할 정도로 갖출 수 있으며 그 이상은 항상 악이라고 밝힙니다. 평화를 이루는 근본적인 방법은 더 많은 무기를 쌓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 배척과 불평등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59항 참조)

 

[2017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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