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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사로프의 성 세라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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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16 ㅣ No.456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사로프의 성 세라핌

 

 

- 사로프의 성 세라핌.

 

 

‘사로프의 성 세라핌’은 19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영적 스승 중 한 명이다. 그는 1759년 7월 19일 모스크바 남쪽 쿠르스크 지방의 부유한 상인이자 경건한 신자인 이시도로스와 아가티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세례명은 프로코로스였다.

 

그는 1776년 사로프(Sarov)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했는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나 최선을 다했다. 하루에 네 시간만 잠을 자고 음식도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엄격한 금식을 지켰다. 1786년 부제품을 받으며, ‘불꽃’ 또는 ‘불타는’의 뜻을 가진 ‘세라핌’으로 수도명을 받았다. 그 이름처럼 그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항상 불타올랐다.

 

1793년 사제품을 받고, 1794년부터는 완벽한 고독 속에서 외부의 어떤 방해도 없이 오직 하느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수도원에서 5㎞ 정도 떨어진 소나무 숲속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장작을 패고 채소를 기르는 일 외에 모든 시간은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고, 또 명상하며 보냈다. 축일이나 주일이면 수도원에 가서 성찬예식에 참례하고, 몇 조각의 빵을 들고 숲속으로 돌아와선 들짐승이나 새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늘 동물들이 모여와, ‘러시아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불리게 됐다. 

 

1804년 자신의 오두막에서 강도들에게 도끼와 몽둥이로 맞아 허리가 굽어진 불구가 돼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 걷게 됐다. 그는 1810년에 수도원으로 돌아왔지만 완전한 침묵과 기도, 명상의 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5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방문자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1825년에야 수도자들과 신자들에게 영적인 가르침들을 주기 시작했는데, 성인에게 축복과 영적 지도를 받으려고 수많은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병자들이 기적적으로 치유되고,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으며, 많은 죄인들도 회개했다. 그는 예언의 은사도 받아, 장차 있을 크림전쟁(Crimean War, 1853~1856)과 기근, 1917년 공산주의 혁명 등을 예언했다. 

 

그는 1833년 1월 1일 성체 · 성혈을 받아 모시고 난 뒤, 수도원의 모든 형제들을 축복하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그다음 날 동료 수도자들이 발견하였을 때, 그는 성모 성화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부활성가를 부르는 자세로 운명해 있었다.

 

1903년 7월 19일 러시아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세라핌 수도자를 성인으로 공표했다. 

 

세라핌은 하얀 수도복을 입고 십자가를 목에 두르고 손목에는 예수기도를 바치는 정교회의 묵주를 걸고 무릎을 꿇고 있거나, 혹은 자신이 세운 수도원 앞에서 묵주를 잡고 그에게 나타난 성모님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16일, 장긍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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