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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탄핵과 대선: 대통령 탄핵,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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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7 ㅣ No.1395

[경향 돋보기 - 탄핵과 대선] 대통령 탄핵, 무엇을 남겼나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전원 일치 판결로 우리나라의 헌정사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탄핵 파면이 결정되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과 강요,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열세 가지 혐의로 구속되었다. 지난해 10월 4일 중앙미디어네트워크(JTBC)방송을 통해 ‘태블릿 피시’(tablet PC)가 폭로되어 비선 실세인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민주주의를 구해 낸 ‘명예 혁명’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는 엄청난 ‘촛불 시위.’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대국민 담화. 12월 9일의 국회 탄핵 결의. 90일간 진행된 특검 수사. 60일간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 과정과 탄핵 반대의 과열된 ‘태극기 집회.’ 그리고 3월 31일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지난 6개월 동안 실로 우리 정치사에 엄청난 격동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 결과,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파면되어 사법부의 심판을 받게 일단락되었으며,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고자 5월 9일에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는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물러나게 하였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 그 탄핵 결정이 이뤄진 과정이나 결과도 엄중한 의미를 남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은 그와 비선 실세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과 헌정 파괴로 발단이 되었다. 국회에서 탄핵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었으며, 검찰과 법원에 의해 구속됨으로써 헌법의 사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법 처리의 이면에는 헌법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농단해 온 사실에 분노하는 국민 대다수의 촛불 민심이 있었다. 그 민심이 잘못된 국가 권력에 대해 거대한 저항 행동으로 표출되어 국민의 힘으로 심판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값지게 새기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뽑아 주었던 보수적인 노년층에서부터 ‘헬(hell)조선’과 ‘이생망’(‘이번 생애 망했다.’의 줄임말)의 좌절감을 토해 내던 젊은 세대들, 그리고 고달픈 삶으로 각자도생에 몰두하던 수많은 국민이 하나 되어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서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엄청난 저력을 한껏 보여 주었다.

 

촛불 집회는 지난해 10월 29일 청계 광장에서 수만 명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퍼져 3월 말까지 5개월여의 기간 동안 1,600만이 넘는 남녀노소의 수많은 국민이 동참하였다.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대통령과 재벌 등의 국정 농단과 부정 비리에 대해서는 통렬한 분노의 함성을 토해 내었다. 그러면서도 촛불 집회는 평화로운 축제의 시위 문화를 보여 주어 국민 스스로 민주 시민의 자긍심을 북돋아 주었고, 해외에서 크나큰 감동으로 주목받기도 하였다.

 

대통령 탄핵을 이뤄 낸 촛불 시민의 아름다운 저항 행동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구해 낸 ‘명예 혁명’의 뜻깊은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민주 정치를 더욱 튼실하게 만들 크나큰 자산과 토대로 자리매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점이 2017 년의 대통령 탄핵에서 찾게 되는 첫 번째의 값진 의미로 삼을 만하다.

 

 

온갖 적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탄핵

 

대통령 탄핵이 안겨 준 두 번째 의미로,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곳곳에 존재해 온 온갖 적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통령 측근의 비선 실세(최순실)가 정부의 의사 결정과 청와대 인사권을 마음대로 하였을 뿐 아니라, ‘문화 창조 융성’ 등의 거창한 국책 사업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취하였다. 또한 이들을 위해 언론 탄압과 국가 기밀을 제공하는 등과 같은 국정 농단을 불러온 배경에는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됨을 제대로 드러내 주었다.

 

심지어, 청와대의 권부가 중심이 되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스르는 문화 예술계를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안 통치의 대상으로 통제하였다. 이들을 정부 지원에서 철저히 배제시키는 등 민주주의 원리를 무시하고 훼손하는 독단과 불통의 대통령에 애오라지 충성하여 보좌하려는 구시대적인 국정 방식이 현행 대통령제에서 버젓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삼성 등의 재벌 대기업들이 대통령과 비선 실세와의 부정한 뒷거래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사로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정경 비리의 공생 구조가 분명하게 밝혀졌다. 아울러, 교육 현장에서조차 대통령 권력에 기댄 비선 실세의 입김에 따라 대학의 총장과 관련 교수들이 입학부터 학점 관리까지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학사 비리를 공모하여 특혜 대우를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다른 사회 비리의 충격적인 단면이 되었다.

 

이처럼, 이번 탄핵 사태의 전말로 밝혀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는 땀 흘려 일하여 월급 받아, 성실히 세금 내고 생활하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청년들에게 크나큰 좌절감을 안겨 줌과 동시에 그들의 엄청난 촛불 운동을 촉발시킨 국민적 분노의 종합 선물 세트(?)가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비선 측근의 국정 농단과 반민주적 블랙리스트 전횡, 권력층과 재벌 간의 정경 유착, 그리고 특권층 대상의 학사 비리 등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그리고 최순실 등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의 재판으로 귀결되었다.

 

 

탄핵을 둘러싼 국론 분열과 과열된 사회 갈등

 

이 같은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집중 구조, 재벌 보호 중심의 정책 기조와 부정한 정경 유착, 비판 세력에 대한 이념적 재단과 통제, 그리고 금수저 계급의 특권과 특혜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 온존해 온 구시대적 적폐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번 탄핵 사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관련자들의 준엄한 심판과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 같은 일을 가능케 한 국가 권력과 사회 체제의 구조적 적폐에 대한 전면적 개조라는 큰 숙제를 안겨 준다. 우리 사회에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전횡 그리고 재벌 비리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또는 정당 정치를 통해 그리고 시민 사회 차원에서 정당한 견제와 비판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온전히 작동하였다면, 이 같은 불행한 탄핵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국가 권력 구조와 대의 정치 체제의 민주적 혁신, 재벌 개혁의 경제 민주화, 그리고 특권 신분 철폐를 위한 사회 민주화가 핵심적인 개혁 과제로 지적된다.

 

아울러, 대통령 탄핵은 그 진행 과정에서 첨예하게 불거진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을 치유하여 국민적 재통합을 이뤄 내야 하는 시급한 난제를 안겨 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 집회와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로 극명하게 국론이 나눠졌으며, 탄핵을 둘러싼 찬반의 진영 논리가 뜨겁게 표출되면서 두 집단 간에 매우 심각한 갈등 양상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특히, 태극기 집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의 음모와 조작을 주장하는 가짜 뉴스가 난무하면서 헌법재판소와 검찰 그리고 언론을 비난하며 몽둥이 처단을 선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계엄령 선포와 군부 개입’을 요구하는 반민주적인 구호가 공공연히 주장되었다.

 

또한,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각기 주장하며 분신과 투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행동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고 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은 침묵하거나 지지자들에게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일부 보수 정당의 지도층 인사들이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자 무책임한 선동을 일삼아 심각한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더욱이, 북한 정권의 연이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배치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마찰 등으로 국가 안보의 위협과 경제적 타격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또한 조선업 등 주력산업 부문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경제 성장 동력의 약화와 엄청난 가계부채 등으로 국가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맞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국론 분열과 과열된 사회 갈등은 우선적으로 치유해야 할 숙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려면

 

대통령 탄핵으로 말미암아 5월 9일 조기 선거로 선출되는 새로운 대통령은 이번 탄핵 사태가 남긴 역사적 교훈과 시대적 과제를 떠안고,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는 점에서 여느 정부보다 더욱 중차대한 책무를 지게 될 듯하다. 새 대통령은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우선적으로 탄핵의 찬반으로 나뉜 국론 분열을 수습하고자 국민적 화합을 이끌어 주는 대통합의 국정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의 어느 편에 나섰든 그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미국 · 중국의 국익 중심 대립과 마찰, 심각한 경제 침체 등과 같은 엄중한 난제에 직면한 국가적 위기 상황을 잘 대처하려면 국민의 단합된 역량 결집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점에서 새로운 대통령은 첫 과업으로 이번 탄핵 사태로 말미암은 국론 분열을 치유하고 민심 통합에 앞장서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 주길 고대한다.

 

또한, 조기 대선을 통해 선출된 새 정부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할 때  이번 탄핵 사태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무서움을 늘 잊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민주적인 견제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며 국민과의 열린 소통을 통해 다져진 민의에 기반하는 국정을 이끌어 가길 당부한다.

 

아울러, 새 정부는 이번 탄핵 사태로 밝혀진 우리 사회의 고질적 적폐인 제왕적 대통령제, 재벌과의 정경 유착, 특권 집단의 전횡과 특혜, 비판 세력의 공안적 통제 등을 온전히 척결될 수 있도록 국회의 여야 정당과 시민 사회 등과의 긴밀한 논의와 협력을 통해 관련 제도의 개선과 사회 경제적 관행의 개혁을 확실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새 정부가 대통령 탄핵 사태가 남긴 숙제인 국민 통합과 민주적 국정 수행, 그리고 적폐 개혁을 제대로 실천해 갈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희망과 번영의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 탄핵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탄핵 사태가 남긴 국가적 난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섬기고 소통하려는 민주적인 리더십의 대통령을 잘 검증하여 뽑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이병훈 -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이며 사회학과 교수로, 노동 시장 양극화와 비정규 노동문제 그리고 노동자 연대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노사관계학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노동위원회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에서 위원장직을 맡았다.

 

[경향잡지, 2017년 5월호, 이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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