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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체리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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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5 ㅣ No.1002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체리향기

 

 

몇 년 전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던 중이었습니다. 발에 온통 물집이 잡혀 한 걸음 떼기조차 힘들었고 억수같이 내리던 비마저 어깨를 무겁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때 길 옆 나무에 달린 빨갛게 익은 체리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을 뻗어 체리를 따서 입에 넣은 순간, 입 안에 퍼지던 싱그러운 향기는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고단한 순례길을 이어준 체리향기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7년 작품, 「체리향기」(Taste of Cherry)입니다. 영화는 차를 몰고 인력시장을 돌며 누군가를 찾는 주인공 ‘바디’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자들은 차창 밖에서 계속해서 그를 부르지만 그는 일꾼을 구하는 게 아니라고 답하며 지나갑니다. 한 남자가 빚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며 통화하자 그제야 바디는 자신이 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 남자는 바디의 말을 믿지 않고 욕을 하며 떠나갑니다. 많은 돈을 제시하면서까지 주인공이 사람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는 계속되고 바디가 자살을 도와 줄 사람을 찾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는 약을 먹고 구덩이에 누워 잠들면 아침에 그곳으로 와서 죽음의 여부를 확인한 후에 꺼내 주거나 묻어줄 사람을 찾아 헤맵니다.

 

바디는 자신의 지프에서 내리지 않은 채 사람들을 차에 태워 자신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부탁을 듣게 되는 이는 모두 세 사람입니다. 쿠르드족 출신의 군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피해 이란으로 유학 온 이슬람 신학생, 그리고 터키 출신으로 보이는 박제사. 주인공은 봐 두었던 구덩이로 이들을 데리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영화 안에서 ‘바디’가 어떤 사람인지 제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은 그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좋은 집과 차를 가졌다는 정도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한 ‘성 제임스 병원’이라는 곡의 내용으로 미루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수줍음 많고 겁 많은 군인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바디는 이것이 단순한 일이며 총을 쏘는 군인이 하는 일에 비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득합니다. 자신의 부탁은 그저 죽은 시체 위로 흙을 몇 번 덮어주거나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꺼내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겁에 질린 군인은 도망칩니다. 이슬람 신학생은 바디에게 죽음 이외의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며 말리기 시작합니다. 자살은 꾸란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중죄라고 계속해서 충고하고 함께 식사나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지만 바디는 설교를 원했다면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부탁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한 바디는 시멘트를 채취하는 돌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생각에 잠깁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눈을 감고 석회석 더미를 내려놓는 포크레인 아래에서 마치 파묻히기를 기다리는 듯 앉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이제 마지막 사내, ‘바그헤디’가 그의 차에 오릅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박제사로 일하는 그는 바디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아들의 치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거래를 마치고 출근을 하기 위해 함께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도중 갈림길이 나오자 바그헤디는 자신이 아는 길로 갈 것을 권합니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편하고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지만 그 길은 전혀 아름답지도 편하지도 않습니다. 그 길 위에서 바그헤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도 바디처럼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목을 매러 올라간 나무에서 우연히 맛보게 된 체리의 맛, 그 순간 떠오른 태양의 아름다움,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를 다시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사소한 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자신이 안내한 이 길처럼 좋다고 생각한 것 역시 언제나 좋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디는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부탁만을 반복해서 확인합니다. 이제 모든 것은 준비되었습니다. 바디의 결심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황량한 광야와 버려진 땅만을 응시하던 바디의 눈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행기가 꼬리를 길게 내뿜으며 날아가는 모습, 아름다운 석양,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바디에게 다시 생의 의지가 생겨난 것일까요? 아니면 결국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까요? 영화는 결말을 분명히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가 구덩이에 누워 보름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에서 바디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테헤란 외곽의 버려진 땅입니다. 아이들은 버려진 집과 차에서 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폐품을 모으거나 일자리를 구하려 마냥 기다립니다.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겁쟁이 군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신학생, 버려진 공장을 지키는 경비원은 마치 우화 속 주인공들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단순히 우화 속 주인공이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이란과 그 주변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 선 개인들을 대표합니다. 감독은 오랜 전쟁으로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동포들에게 한 가닥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덩이 속 바디의 얼굴이 사라진 후 등장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촬영 현장을 담은 메이킹 필름입니다. 군인 역할을 맡은 무명의 조연들이 휴식시간이 되자 나무그늘로 모여들어 들꽃 다발을 만들며 즐거워합니다. 영화 「체리향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이러한 것에 있지 않을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박함 속에서도 희망은 존재합니다. 삶은 계속되며 내 주변에서 발견되는 소중한 가치가 희망의 징표가 됩니다. 길고도 유난히 추운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새로운 봄에는 달콤하고 싱그러운 체리 맛처럼 행복한 소식만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봄호(Vol. 37), 이창민 세례자 요한(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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