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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세 손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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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3 ㅣ No.304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세 손의 성모

 

 

그리스 아토스 성 힐란다르 수도원의 ‘세 손의 성모’.

 

 

이 형태의 이콘은 티츠빈의 성모성화 유형 중 하나로, 아기 예수님이 티츠빈의 성모님과는 반대 방향으로 위치하고 성모님의 머리와 손 또한 예수님을 향해 반대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이름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모님의 손이 세 개로 그려져 있다.

 

이 유형의 성모성화는 8세기 초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에 관한 기적 사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717년경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은 칼리프 알-왈리드 1세의 고위 관료(Vizier)로 일하고 있었는데, 거짓된 반역의 죄로 고발당해 손이 잘리는 형을 받았다.

 

당시 그는 비잔틴의 성화상 파괴론자 레오 이사우리안 황제의 정책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기에 고발당했던 것이다. 이에 요한은 자신의 잘린 손을 들고 성모님의 이콘 앞에서 기도를 바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만일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이제 남은 생은 세속이 아닌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즉시 그의 잘린 손은 다시 붙어 기적적으로 회복됐고, 팔목에는 붉은 선만이 흔적으로 남았다고 한다. 이후 요한은 이 기적적 치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으로 손 모양을 만들어 자신이 기도했던 성화에 붙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이콘은 세 손의 성모라 불리게 되었고, 이 기적의 역사에 따라 성모님의 손을 세 개로 그리게 되었다.

 

이 기적이 있은 후 요한은 예루살렘 외곽 성 사바 수도원의 수사가 됐고, 기도를 통해 기적을 얻었던 이 성모성화를 그 수도 공동체에 봉헌했다. 그리고 이 성모성화 앞에서 서약한 대로 자신의 뛰어난 문필력으로 성화상의 공경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작성해, 당시 비잔틴 제국 전역을 뒤흔들던 성화상 파괴주의자들과 대적했다.

 

그 후 이 성화는 다시금 그 수도원의 설립자 성 사바가 방문했을 때 누르시안 스타일의 다른 성모성화와 함께 선물로 증정됐고, 사바는 자신이 거주하던 그리스 아토스의 성 힐란다르 수도원에 이 성화를 가져갔다. 이후 성화는 성 사바의 지팡이와 함께 거룩하게 보존됐다.

 

1347년까지 보존되던 이 성화는 세르비아의 Du?an 왕(1308~1355)이 성 힐란다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세르비아로 가지고 가, 14세기 말 수투데니차 수도원 소유로 있었다가 15세기 다시 힐란다르 수도원으로 되돌아왔다. 가장 최근까지도 이 성모 이콘은 선출된 수사와 함께 힐란다르 수도원의 공식 원장으로 공경 받고 있다. 이 이콘의 축일은 7월 11일(구력 6월 28일)과 7월 25일(구력 7월 12일)에 두 번 지낸다.

 

*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16년 11월 13일,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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