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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뿌리: 마르케셀리 신부와 안젤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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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25 ㅣ No.563

[영성의 뿌리] 마르케셀리 신부와 안젤라 수녀


매일의 삶 안에서 사랑 실천 강조

 

 

“형제자매들이여, 하느님이신 주님께 대한 봉사를 시작합시다. 지금까지 정말 조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성인의 말은 지금껏 살아, 많은 이들을 이끌고 있다. 요셉 안토니오 마르케셀리(Guseppe Antonio Marcheselli) 신부 역시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아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길 원했다.

 

1676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 지방 카살마죠레에서 태어난 마르케셀리는 15세에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해 1699년 23세 나이에 사제로 서품됐다. 1701년 아씨시로 파견된 마르케셀리 신부는 설교에 전념했다. 그의 설교는 마음이 굳은 죄인도 회개하도록 이끌었고, 그가 보여준 금욕과 고행은 신자들을 감화시켰다.

 

안젤라 마리아 델 질리오(Angela Maria del Giglio)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658년 2월 7일 이탈리아 북부 비첸자에서 태어난 안젤라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양육했다. 동생들의 양육을 끝낸 그는 1689년 아씨시로 이주해 신심 깊은 여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방문하고,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마르케셀리 신부의 금욕적인 삶과 설교에 감동을 받았고, 자신의 지도를 부탁했다.

 

둘의 만남이 계기가 돼 1703년 1월 2일 ‘델 질리오의 3회’라는 공동체가 창설됐다. 마르케셀리 신부는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조화시키는 활동 수도회의 생활양식을 택하고, 회원들이 자신이 작성한 회헌과 교황이 인준한 프란치스코 제3회 회칙에 따라 살도록 했다.

 

마르케셀리 신부는 ‘매일 안의 성화’를 강조했다. 매일의 삶 안에서 작고 평범한 것들이 성화의 기회라 본 그는 수도회를 통해 교회와 세상에 그 기회를 알리고자 했다. 특히 공동체 생활 안에서 형제애를 귀중히 여기고, 이 사랑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나누는 애덕의 원동력으로 삼자고 권고했다.

 

공동 설립자 안젤라 수녀의 이름을 딴 ‘델 질리오의 3회’는 1977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수도회의 이름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로 바꿨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의 한국 진출은 부산교구의 초청을 받은 4명의 회원이 1980년 7월 13일 입국하면서 시작됐다. 이때 입국한 회원 중 한 명은 1968년 이탈리아 모원에 한국인 첫 지원자로 입회한 김숙녀 수녀였다. 한국 진출 후, 제대 초 제작과 나환우들의 자녀 교육 등을 해온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는 현재 100여 명의 수녀들이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본당과 공소, 사회복지, 교육, 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5년 9월 13일,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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