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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77: 존 필 마이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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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07 ㅣ No.44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7) 존 필 마이어 (중)

예언자 · 세례자 · 치유자 등 다양한 얼굴 지닌 ‘역사적 예수’



존 필 마이어 신부가 추구하는 역사적 예수는 역사 비평 방법으로 재구성된 학문적 결과이다. 그리하여 마이어는 역사적 예수의 학문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처음부터 신앙을 배제하고 순전히 역사적 방법으로 복음서를 분석해 예수의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마이어에 의하면 역사적 연구의 목표는 역사적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개연성을 확보하는 하는 것이다.


「주변부 유다인 1」 - 문제와 인물의 뿌리

마이어는 자신의 저서 「주변부 유다인」 제1권에서 예수의 생애를 1세기 팔레스티나의 나자렛을 배경으로 살펴본다. 예수는 헤로데 대왕(재위 기원전 37~4년) 말년인 기원전 4~7년 사이에 베들레헴보다는 나자렛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예수는 기원후 28년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요한 복음서의 연대기에 따라 해방절과 안식일이 겹쳤던 30년 4월 7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보인다.

마이어는 요셉이 다윗 가문의 후손이고 가족 구성원의 이름들이 과거 영광스러웠던 성조들, 이집트 탈출, 약속의 땅 정복 시기의 인물에게서 빌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예수 가족의 이름들이 이스라엘 재건에 대한 열망을 지닌 갈릴래아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본다. 그러나 마이어는 예수의 동정녀 잉태가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의 자료에만 등장할 뿐, 마르코 복음과 요한 복음 나아가 사도 바오로 서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본다. 마르코 복음 6장에 등장하는 요세와 야고보 등의 형제자매들이 예수의 사촌이라는 예로니모의 해석은 사촌(콜로 4,10)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요셉의 전처 소생이라는 에피파니아의 견해도 성경 자체에 근거한 것이 아닌 구전 전승에 근거한 것으로 보고 일찍이 제기된 헤제시푸스(Hegessipus, 2세기)와 헬비디우스 (helvidius, 4세기)의 해석 전통에 따라 예수의 형제들은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낳은 자식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한다.

예수의 직업인 목수(tekton)는 생계를 위해 힘들게 노동을 하는 요즘의 ‘블루칼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바오로처럼 전문적인 랍비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히브리 성경을 읽고 글을 쓸 줄 알았으며 이방인들을 만나고 생업에 필요한 기초적인 그리스어 지식을 습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는 당대의 유다교 전통과 달리 세례자 요한처럼 독신이었을 것이며, 사제 계급이 아닌 평신도 신분이었다.


「주변부 유다인 2」 - 멘토, 그리고 하느님 나라 말씀과 기적

마이어는 「주변부 유다인」 제2권에서 예수의 멘토(스승), 메시지, 기적을 주제로 예수의 말씀과 행위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예수는 한때 요한 세례자의 제자 그룹에 속해있었으며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루카 7,28)라고 칭할 만큼 요한을 위대한 예언자로 평가하였고 그에게서 세례 활동과 종말론적 전망을 이어받았다.

예수는 1세기 종말론적 유다인 예언자로서 하느님 나라가 임박한 미래에 다가오리라고 선포하였으며,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준비 예식으로 세례를 베풀었다(요한 3,23). 그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쳤고,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열두 사도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말론적인 재건이 이루어질 것이며 여기에 이방인들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루카 13,29). 동시에 예수의 구마 행위들과 기적적인 치유를 통해서 적어도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왔다고 선포됐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구원을 이미 중개해 주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구원 체험은 그가 세리 및 죄인들과 자유분방하게 식탁의 친교를 나누고, 제자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단식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예수가 누구였건,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이었건 간에 그는 하나의 신학적 제목이나 사회학적 모델로 쉽사리 담아낼 수 없는 복합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주변부 유다인’(A Marginal Jew)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종말론적인 예언자, 세례자, 구마사, 기적을 행하는 자(miracle-worker), 치유자,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적 스승의 면모 등이 예수라는 인물 안에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여러분에게 왔다(루카 11,20)는 예수의 말씀은 결국 그분의 기적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마이어는 기적 이야기가 복음서 모든 전승 층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다수적 증언의 기준, 설화와 토막 말씀(로기아)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는 양식비평의 관점, 나아가 그리스도교와 무관한 1세기의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예수를 놀라운 일들(paradoxa)을 행하는 이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기적 전승의 역사성은 매우 견고하다고 평가한다.

‘눈 먼 이를 고치는 예수’, 유스타쉬 르 쉬위르 작. 존 필 마이어 신부는 예수라는 인물 안에는 종말론적인 예언자, 세례자, 구마사, 기적을 행하는 자, 치유자,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 등 다양한 인물이 혼합돼 있다고 봤다.


마이어는 구마 행위 중에서도 특히 귀신 들린 소년 이야기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구마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으로 소급해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마이어에 의하면 치유 전승은 비록 후대에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점에서 다시금 편집되기는 하였지만, 중풍 병자 이야기(마르 2,1-12), 벳자타 못의 중풍 병자(요한 5,1-9),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마르 10,46-52), 벳사이다의 눈먼 사람(마르 8,22-26), 실로암 연못에서 씻은 눈먼 사람(요한 9,1-7), 귀먹은 반벙어리(마르 7, 31-37),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하는 이야기(마태 8,5-13;요한 4,46-54)는 역사의 예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어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희귀하지만 다수적 증언의 기준과 다양한 형태의 문학 양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야이로 딸의 소생이야기(마르 5,21-43), 나인의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 (루카 7,11-17), 라자로를 살리는 이야기(요한 11,1-46) 속에는 편집 이전의 초기 전승이 담겨 있다고 본다. 특히 어록 전승(마태 11,5)은 예수께서 공생활 중에 죽은 이를 살리셨음을 말해준다.

‘자연 기적’이라고 분류된 이야기 중에는 군중에게 빵을 먹인 이야기만을 제외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다양한 신학적 목적을 위해 초기 교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다수적 증언과 종말론적인 특별함이 있는 즐거운 식사를 하는 예수 습관에 대한 일관성의 기준으로 볼 때, 빵의 기적 이야기의 근저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본다. 마이어에 의하면 빵의 기적 이야기는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서 예수께서 많은 군중과 더불어 물고기가 곁들인 기억할 만한 식사를 했다는 역사적 사건에 기초하여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5년 2월 8일, 백
운철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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