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소공동체ㅣ구역반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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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12 ㅣ No.145

[특별기고]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8)



Ⅳ 친교의 교회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3.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다.

지난 호에서 공동체가 아니면 사람도 사회도 결코 존재할 수 없고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사람이 살고 이 세상이 진정으로 살려면 ‘함께’, ‘더불어’, 그리고 ‘같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만이 살 길이다.

최근 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지난 20일 대구 달서구 한 임대 아파트에서 송모(56세)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혼 후 혼자 살던 그는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영양부족 및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쓸쓸하게 세상과 작별했다. 앞서 17일에는 김모(56세) 씨가 자신의 집에서 숨져 있는 것을 사회복지공무원이 발견했다. 그 역시 혼자 살면서 병을 앓고 있었으나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웃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사회복지공무원이 달려갔을 땐 숨진 지 5일이 지난 뒤였다. 그날 같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온 또 다른 사람도 세상을 떠났다. 56세 김모 씨로 밝혀진 그 역시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혼자 쓸쓸히 지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최근에는 중년층으로 퍼지고 있다. 이혼과 실업으로 말미암은 가족해체가 늘면서 홀몸 중년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매일신문, 2014.1.24)

노인 고독사에 이어 중년층의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현상이 우리 주변의 현실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공동체를 살지 않으면 이 세상은 붕괴되고 망해버리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성의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필요성과 당위성을 우리는 신앙의 차원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도 찾게 된다. 신앙인으로서 공동체를 살아야 하는 아주 중대한 이유를 하느님의 모습과 성경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신비가 이 삼위일체의 신비 속에 다 들어 있다. 이것이 하느님의 모습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본질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좋으신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하느님의 본질과 모습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하느님은 사랑”(1요한 4,16)이시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11) 그리고 곧 이어서 성령을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6-17) 하느님께는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지만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니고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성부와 성자, 성령이 모두 완전한 하느님이시지만 결코 하느님은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그것을 일컬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신비는 바로 사랑의 신비이고 하느님이 공동체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을 살지 않고 공동체를 살지 않으면 이 신비를 절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홀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공동체를 살지 않고 ‘외톨박이’의 삶을 사는 사람은 절대로 하느님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공동체를 살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신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아주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공동체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차동엽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어떤 삶이 ‘인간의 완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홀로’의 길을 택합니다. 불가(佛家) 또는 도가(道家)에서 이 길을 택합니다. … 어떤 이들은 ‘더불어 함께’의 길을 택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 길을 택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지녔다고 얘기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성은 ‘삼위일체’로 드러납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풍요로운 나눔과 친교가 하느님의 본 모습입니다. 이들 세 위격(位格)이 각각 서로에게 ‘너’(=삼위)이면서 동시에 ‘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연대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 나눔, 친교, 사랑의 연대를 본성으로 하는 하느님의 모상을 인간이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너’를 필요로 하는 존재요, 너와 ‘더불어 함께’의 길입니다.”(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 차동엽, 117-119면)

이 삼위일체의 신비는 하느님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존재 방식이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 말은 우리 인간의 행복의 원리가 이 삼위일체의 신비 속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공동체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다른 말로 하면 ‘사귐의 신비’이며 ‘나눔의 신비’이며 ‘일치의 신비’ 이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의 신비는 ‘친교의 신비’ 이며 ‘사랑의 신비’이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고 공동체를 살아야 하는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함이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나기 위함이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부활 사화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 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28-31) 우리가 만일 ‘함께’, ‘더불어’, ‘같이’의 삶을 살지 않으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분을 만날 수도 없다. 또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만 체험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공동체를 살지 않으면 거기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공동체를 살지 않으면 거기에 하느님도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체험할 수도 하느님을 만날 수도 없다.

소공동체가 추구하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은 ‘친교의 교회’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 ‘친교의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며 이것은 교회가 혹은 신학자들이 고안해낸 방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의 존재 원리나 방식에 근거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에 근거를 둔 것이고 그 신비를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통해서 드러내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인 ‘친교의 교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 역시 복음적인 강력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성서학적인 관점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시대적 요구나 사회적 요구 때문만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월간빛, 2014년 3월호, 박성대 요한 신부(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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