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자료

[인물] 키레네 사람 시몬(마르 15,16-2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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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3 ㅣ No.387

[성서의 인물] 키레네 사람, 시몬(마르 15,16-26 참조)

 

 

빌라도 총독은 군중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예수를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병사들은 예수를 총독관저로 끌고 가서 전 부대원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서 예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웠다. 예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몇몇의 병사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의 왕 만세!" 하면서 조롱을 했다. 갈대로 머리를 치고 얼굴에 침을 뱉는 병사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도 마음 속에 깊이 숨겨둔 적개심을 예수께 쏟아 붓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예수의 옷을 다시 입혀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위해 밖으로 끌고 나왔다. 예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는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예수는 예루살렘 한복판에 있는 법정에서부터 처형 장소인 골고타 산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다. 보통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는 형 집행을 위해 십자가를 스스로 젊어져야 했다. 십자가형을 위해 걸어가는 동안 죄수는 보통 심한 채찍질과 모욕을 당해야 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 자체가 큰 형벌이었다.

 

이렇게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은 사형수에게 갖은 욕설과 희롱,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가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력한 사람을 더욱 짓누르려는 공격적인 태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힘없이 고통 당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 스스로는 강하다는 것을 즐기는 마음일까. 예수도 사람들의 모욕과 조롱을 피할 수 없었다.

 

예수는 몹시 지쳐 있는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 예수는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 쓰러졌다. 그러면 여지없이 예수의 얼굴이며 등에 채찍이 날아들었다. 채찍질에도 예수는 힘을 소진한 듯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그때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오다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군중 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다른 병사에게 군중 속에 있는 시몬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어이! 거기 흰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

 

병사의 손에 시몬이 억지로 끌려 나왔다.

 

"당신이 저 십자가를 지시오."

 

병사의 말에 시몬은 영문을 몰라 했다.

 

"당신 내 말 안 들려! 저 십자가를 죄인 대신 지란 말이요."

 

시몬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병사들은 예수의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덜어주려고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형집행을 끝내려는 것이 병사들의 마음이었다. 우연히 붙들린 시몬도 자발적인 동정심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억지로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강요에 의해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를 어쩔 수 없이 짊어졌다. 시몬은 속으로 생각했다.

 

"야, 오늘 일진이 정말 사나운 날이구나. 정말 재수가 없구나. 이렇게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으니…."

 

시몬의 머리 속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지 빨리 빠져 나갈 생각뿐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십자가 처형을 받는 죄수보다도 더 혹독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병사의 명령을 거부한다고 했다간 채찍질이 날아올 서슬 퍼런 기세였다. 시몬은 몸을 낮추어 쓰러져 있는 예수의 십자가를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얹었다. 순간 시몬은 힘이 들어 발걸음을 쉽게 옮길 수가 없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커다란 심리적 고통이었다. 마치 길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고 죄수와 한패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몬은 어쩔 수 없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형장으로 향했다.

 

시몬은 이 과정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체험하게 되었다. 사형수인 예수는 예사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예수에게서 증오나 분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몬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평화롭기조차 했다. 그는 시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시몬은 자기가 짊어진 십자가의 의미는 모르지만 이유 모를 신비감에 빠져있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고 예수의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 되었다. 시몬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험하게 된 골고타의 체험을 일생 동안 결코 잊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후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 또 그분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 체험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지금도 안티오키아 근처의 산 위에는 시몬의 교회의 유적이 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그곳에까지 와서 전도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그랬던 것처럼 이웃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선한 의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하겠다.

 

[평화신문, 2002년 7월 7일, 허영엽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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